유령 신부와 결혼한 남자, 크리스마스를 동경하는 해골, 손에 가위가 달린 로봇 등 기괴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그리는 예술가가 있다. 바로 팀 버튼이다. [유령 신부], [크리스마스의 악몽], [가위손] 등 인기 영화를 제작한 감독으로 잘 알려진 팀 버튼의 특별전 ‘The World of Tim Burton’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2012년 12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이후 10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 전시회 포토존
▲ 전시회 포토존

이번 전시는 한 도시에서 두 번 이상 전시를 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그가 서울에서 여는 두 번째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녀와 함께 전시에 방문한 오주연(34) 씨는 “예전에 봤던 전시가 다시 열린다는 소식에 왔다”며 “굉장히 인상 깊던 전시라 이번에 또 왔다”고 전했다. 기자도 팀 버튼의 세계를 엿보기 위해 DDP로 향했다.

고독한 유년 시절, 팀 버튼의 세계 속으로

전시장 앞에 다다르자 가장 먼저 큰 눈알이 달린 외계인 세 마리가 눈에 띄었다. DDP에서의 전시를 위해 팀 버튼이 특별히 제작한 조형물로 10년 전 한국을 처음 방문한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그는 과거 한국에 방문했을 때 자신을 외계인이라 느꼈던 경험과 외계 우주선 같은 DDP에서 작품을 전시한다는 기쁨을 해당 작품에 모두 녹여냈다고 소개했다. 세 마리의 외계인 조형물을 지나 전시장에 들어서면 초기 드로잉과 스케치가 전시돼 있다. 창백한 아이들과 죽음, 공포를 연상케 하는 스케치에서 기괴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혼란스러웠던 작가의 유년 시절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시골에서 태어나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공상하며 시간을 보냈던 팀 버튼은 공포 영화나 SF, 괴물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세계에 영향을 준 대표적 인물로는 빈센트 프라이스가 있다. 빈센트 프라이스는 1930년대 미국에서 ‘호러의 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영향력 있던 배우다. 전시장 한 편에서는 빈센트 프라이스를 향한 존경을 담은 단편 영화 [Vincent]가 영사되고 있었다. 우울과 공포를 동경하며 스스로를 고립시킨 소년 빈센트의 모습과 배우 빈센트 프라이스의 내레이션, 암울한 음악이 어우러지며 고독했던 팀 버튼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고독했던 그의 유년 시절을 잘 드러내는 소재 중 하나는 괴물이다. 전시된 초기 습작 중 많은 작품이 기괴하지만 익살스러운 괴물 캐릭터를 다루고 있다. 주목할만한 작품은 어린 팀 버튼이 직접 그린 후 월트 디즈니에 출판을 제안한 동화 ‘거인 즐리그’다. 이는 괴물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동화로 괴물을 향한 그의 애정이 담겨 있다. 기괴한 외형을 갖고 있지만 세상과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하려고 하는 괴물들의 모습에서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불완전하기에 사랑스러운 존재들

팀 버튼은 작품 전반에서 소외당하는 존재, 즉 아웃사이더를 다루고 있다. 그가 창작한 캐릭터 대부분은 평범하지 않고 어딘가 결핍돼 있다. 전시의 ‘오해받는 낙오자’ 테마에서는 아웃사이더를 향한 남다른 관심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대표적 작품은 직접 쓴 시와 단편을 모아 1997년 출간한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으로, 굴로 태어나 부모와 또래에게 소외당하다 아버지의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위해 아버지에게 잡아먹히며 죽음을 맞는 소년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이다. 해당 작품에서는 눈에 못이 박힌 소년, 성냥을 사랑하는 마른 가지, 유독한 물질을 내뿜는 소년 등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담아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아이들의 불행에 특별히 과장된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블랙 유머를 곁들여 냉소적이고도 재치 있게 그려낼 뿐이다. 

무언가를 항상 노려보는 소녀가 자신의 두 눈을 쉬게 해 준다며 눈알을 뽑아 튜브에 태우는 장면 등이 그 예다. 그래서 ‘오해받는 낙오자’ 테마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낙오자의 결핍이나 불행을 다루며 불공정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거나 개선의 필요성을 설파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을 보며 독특한 상상력과 아웃사이더를 향한 작가의 애정을 느꼈다. 또한 전시에서는 원작 단편집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을 영상화해 영사하고 있었다. 굴 소년의 불행을 무심하고 덤덤하게 그려냈는데 어두운 방 속에서 그들을 마주하니 소년의 우울이 기억에 남았다.

팀 버튼의 세계를 나서며

이번 전시는 영화감독으로 더 잘 알려진 그의 습작과 스케치, 드로잉을 볼 수 있어 의미 있었다. 스케치를 스크린으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마모된 날것의 세계를 마주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전시에서 가장 마지막 공간에 해당하는 작업실이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팀 버튼의 개인 작업실을 재구성해 전시했는데 빽빽이 적힌 아이디어와 피규어, 널브러진 채색 도구가 눈에 들어왔다. 차기작 [Wednesday]의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코로나19를 다루는 드로잉에서도 그의 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The World of Tim Burton’, 팀 버튼의 세계 속 창작물은 사회에 특별한 메시지를 던지거나 가치 판단을 요구하기보다는 작가 본연의 내면과 우울을 있는 그대로 조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이 어린 시절 이불 속에서 느꼈던 공포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전시에 흠뻑 빠져들어 편견 없이 탐험하다 보면 잠시나마 팀 버튼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DDP를 나올 무렵 피를 뚝뚝 흘리고 얼굴을 꿰맨 캐릭터들을 어느새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

▶위치: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81
▶입장료: 2만원
▶운영 시간: 10시~20시


글·사진_ 안가현 기자
worldisred0528@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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