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개최된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였던 ‘수호랑’이자 동서남북의 방위를 지키는 사신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백호’는 동물원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상상의 동물로 여겨질 만큼 자연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백호가 어렵지 않게 관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동물원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백호는 대부분 근친교배를 통해 태어난다. 근친교배란 혈연끼리 교배를 하는 것으로 원하는 형질의 출현을 높이기 위해 시행된다. 그러나 근친교배는 자칫 유전병과 같은 질환을 만들어내기 십상이다. 다른 요소는 고려하지 않은 채 순수혈통에만 초점을 맞춘 번식이 유전자의 동형성을 높여 문제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백호 역시 과도한 근친교배로 안면기형, 사시, 면역체계 결핍 등의 질병이 나타나 동물윤리 측면에서 논란이 된 바 있다. 
 

▲ 학대 후 유기된 고양이 ‘하늘이’, 여러 유전병을 앓고있다. (출처: 인스타그램 @help_sky_0613)
▲ 학대 후 유기된 고양이 ‘하늘이’, 여러 유전병을 앓고있다.
(출처: 인스타그램 @help_sky_0613)

유전병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대학 생명과학과 이동희 교수는 “근친교배를 통한 품종육성 과정은 열성동형접합자*의 누적으로 인해 경쟁력과 생존성을 떨어뜨리고 결국 멸종의 길을 걷게 한다”고 답했다. 

앞서 언급한 백호의 안면기형과는 달리 건강 결함을 가진 유전자는 육안으로 판단이 어렵다. 근친교배를 반복하다 보면 문제를 가진 인자가 조용히 전달되다가 치명적인 문제로 발현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대를 거듭할수록 근친교배의 결과 열성동형접합의 확률이 커져 부정적 특성을 가진 개체가 출현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 근친교배를 지양하고 나아가 유사 변종(variety)과의 적절한 교배를 통해 품종 개량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의견을 전했다. 

근친교배로 인해 빈발하는 유전병의 대표적인 예로 ‘말티즈’의 슬개골 탈구, ‘스코티시폴드’의 골연골 이형성증 등이 있다. 사람의 경우에도 근친혼으로 인해 유전병이 발생할 수 있는데 유럽 왕가의 혈우병,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걱턱이 대표적인 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동성동본끼리의 결혼을 막았던 이유 중 하나도 이렇게 언급된다. 

잡종강세, 섞이면 튼튼할 가능성 높아져

언젠가 한번쯤 혼혈견이 비혼혈견인 품종견보다 똑똑하고 건강하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른바 ‘똥개’로 불리는 혼혈견이 더욱 강하고 영리한 지능을 가진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이동희 교수는 “혼혈견이 건강하다는 것은 일리 있는 말”이라며 “유전적 배경이 다양해져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잡종강세’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잡종강세(hybrid vigor)란 다양한 유전자가 섞여 더 건강하고 우월한 유전자가 발현되는 것을 말한다. 외부의 여러 위협에 강한 방향으로 유전자가 형성되고 유연한 유전적 조합으로 훨씬 생존력이 높은 개체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잡종강세는 우리가 흔히 먹는 돼지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중앙대학교 동물생명공학과 김준모 교수는 “현재 길러지는 돼지는 삼원교잡종”이라며 “세 개의 종을 합친 것으로 각각의 품종이 갖고 있는 고유의 좋은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 혼혈견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 혼혈견이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한편 스코티시폴드 ‘돔이’와 함께하고 있는 A(24) 씨는 “골연골 이형성증을 앓는 돔이가 항상 걱정”이라고 밝혔다. 그가 돔이를 키우게 된 계기도 골연골 이형성증의 발현으로 인한 파양 때문이었다. 스코티시폴드의 작은 귀는 연골 없이 접혀있다. 귀여운 귀를 만들어내기 위해 무분별하게 진행된 근친교배로 귀 뿐 아니라 다른 곳의 뼈까지 녹는 등의 문제가 생겼다. 그는 “진통제 외에 고통을 해결해줄 방법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며 “품종묘를 키우게 된다면 유전병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덧붙여 “외관에 홀려 펫샵에서 구매를 하고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에 파양을 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역설했다. 

‘백도어 브리더’, 무분별한 근친교배가 문제

근친교배의 문제를 줄이고 건강한 개체를 생산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브리더(breeder)는 가축이나 식물의 교배, 사육, 생산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브리더는 번식업자와의 경계가 모호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앞서나온 예와 같이 유전학과 육종학에 대한 지식 없이 근친교배를 해 유전병과 예상치 못한 변이를 초래하는 브리더는 ‘백도어 브리더(backdoor breeder)’로 펫샵의 번식업자가 종종 해당한다. 개체관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분별한 근친교배는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

김준모 교수는 “일정 수준의 근친교배를 하되 유전병 등이 전달되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브리더”라며 “특정 종이 갖고 있는 고유의 특징을 유지시키거나 발달시키는 측면에 있어 브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브리더들은 근친교배를 함과 동시에 이종교배 등을 통해 종이 가진 특징을 잘 살리면서도 유전적 결함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서러브레드(thoroughbred)’는 현재 경주마로 잘 알려진 말의 한 종류로 브리더의 품종개량을 통해 탄생했다. 그는 “근친교배를 얼마나 했는지 나타내는 근친계수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외부에서 유입되는 유전자를 섞어 탄생한 결과물이 서러브레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혈통정보와 개체수 관리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근친도를 조절해 건강하게 교배시키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근친교배로 인한 문제가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순종’에 대한 인기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순종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이동희 교수는 “선호하는 외관과 지적 능력이 유전적으로 고정되면 본인의 기대에 쉽게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순종이 우월하다는 인식 또한 인간이 선호하는 분야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켜줄 확률이 높기 때문일 것”이라며 “동물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의견을 냈다. 인간의 욕심에 의해 유전병을 앓고 나아가 원인 모를 변이로 고통받기도 하는 품종묘와 품종견, 백호의 사례에 비춰봤을 때 순종 선호는 과시에 초점이 맞춰진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열성동형접합자: 부계와 모계에서 온 두 개의 생식세포가 이루는 한 쌍의 대립 유전자가 서로 같은 특수한 경우를 동형접합자라고 하며, 열성을 띠는 유전자가 동형접합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글_ 유은수 기자 silveraqua@uos.ac.kr
사진_ 이주현 기자 xuhyxxn@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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