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포켓몬 마스터는 노동착취 기업의 스티커를 사 모으지 않아”. ‘포켓몬 빵’으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던 SPC그룹 사옥 앞 임종린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하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지회장 단식 투쟁 현장에 적혀 있던 문구다. 임 지회장은 지난 3월 28일 SPC그룹의 부당노동행위 인정과 노조파괴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단식 투쟁은 53일간 지속됐으나 지난달 19일 건강상의 이유로 중단됐다. 임 지회장의 단식 투쟁은 끝났지만 화섬식품노조 조합원, 시민단체, 시민 개인 등이 하루에서 하루 이상 단식을 진행하며 농성장을 지키는 릴레이 단식이 이어지고 있다. 임 지회장은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주면 여러분이 사 먹는 빵을 만드는 제빵 기사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이야기했다.
 

▲ 단식 52일차에 들어선 임종린 지회장의 모습
▲ 단식 52일차에 들어선 임종린 지회장의 모습

53일간 밥을 먹지 않은 이유

임종린 지회장이 SPC그룹에 요구한 사항은 크게 △부당노동행위 인정 후 사과하고 피해직원 구제 △연차·보건휴가의 자유로운 사용을 통한 휴식권 보장 △개별교섭 △사회적 합의 이행 검증이다. 임 지회장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과 회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월 7회 휴무 이상부터 연차와 보건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문제는 월 7회 휴무가 보장되고 있지 않다”며 “또한 모든 논의구조에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 도시사회학과 신인철 교수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에는 △근로시간이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줘야 함 △근로자에게 1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보장해야 함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에 걸리면 사용자는 그 비용으로 필요한 요양을 행하거나 필요한 요양비를 부담해야 함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 농성장 천막은 시민들이 쓴 연대의 문구로 가득 덮여 있었다.
▲ 농성장 천막은 시민들이 쓴 연대의 문구로 가득 덮여 있었다.

노사갈등이 노노갈등으로

신인철 교수는 “지금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SPC그룹의 제빵기사 불법파견 문제를 되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SPC그룹이 가맹점에서 근무하는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협력업체와의 업무협정을 통해 파견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신 교수는 “업무지시가 협력업체가 아닌 SPC그룹을 통해 실질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업무지시의 직접성은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지휘와 감독이 SPC그룹에서 직접적으로 이뤄졌다면 사용존속관계가 성립되고 제빵기사는 협력업체가 아닌 SPC그룹의 근로자로 봐야 한다. 지속된 갈등을 해결하고자 정부와 정당까지 나선 결과 SPC그룹은 지난 2018년 고용 및 임금인상, 처우개선 등을 골자로 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고 이행할 것을 약속했다. ‘피비파트너즈’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지금까지 파견업체 소속이던 제빵기사를 포함한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가 설립됐다.

하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신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SPC그룹은 민주노총 파리바게뜨지회가 아닌 한국노총 피비파트너즈와 단체 협약을 체결해 이들하고만 노사협의를 진행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참여했던 노조를 배제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종린 지회장은 “지난 2017년 불법파견 직고용 투쟁을 할 당시 관리자를 앞세워 직접고용을 반대하는 노동조합인 한국노총 피비파트너즈를 만들었다”며 “지난해 퇴사한 한국노총 관리자의 제보에 따르면 매주 정기회의 목표가 민주노총 조합원 0% 만들기로 집중됐다”고 말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교섭을 요구한 모든 노동조합과 성실히 교섭해야 하고, 차별적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 이행과 관련된 단체교섭 과정에서 이러한 절차가 제대로 지켜졌는지 확인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임 지회장은 “회사가 이 사태를 노조간 경쟁, 노노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진전 없는 노사 간 대화

SPC그룹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을까. SPC그룹 커뮤니케이션실 측에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응답은 없었다. 기존에 보도된 기사에 따르면 “매년 노조와 단체협약을 통해 근로 환경과 처우 개선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SPC그룹의 입장이다. SPC그룹과의 협의는 어느 정도로 진행됐냐는 물음에 임 지회장은 “부당노동행위 인정과 사과, 피해자 구제에 대해 의견을 좁혀 가는 중이었으나 휴식권 보장, 개별교섭, 사회적 합의는 아예 진척이 없다”고 답했다.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는 SPC그룹의 주장과 그 증거가 없다는 임 지회장의 말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임 지회장은 “단식 투쟁 13일 차쯤 회사 상무가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이 농성 왜 하는거냐, 지회장의 속마음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며 “지금 개인적인 요구를 위해 단식을 하는 걸로 보이냐고 항의하자 ‘말을 좀 이쁘게 해라’라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이후 약 12차례 만났지만, SPC그룹은 계속 이 상황이 억울하다는 입장을 고수해 대화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게 임 지회장의 주장이다.

언론의 공론화 역할 중요해

SPC의 부당노동행위와 단식 투쟁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예원(환조 22) 씨는 “단식 투쟁에 대해 알고 있지만 SPC 브랜드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아 불매가 어렵다”며 “주변 친구들은 SPC 브랜드를 불매하는 움직임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뉴스빅데이터 분석서비스 빅카인즈에 ‘SPC’와 ‘단식’ 키워드를 넣어 검색하면 총 24건의 뉴스가 나온다. 기사 수는 한겨레 9건, 경향신문 5건, 한국일보 3건, 조선일보 1건 등의 순으로 많았다. 신인철 교수는 “대선과 지방선거로 인해 SPC그룹 문제에 대해 정치권에서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 언론에서도 이 문제를 조명하지 않았다”고 역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여러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NS에서는 #빵빵_맛있는_동네빵집_응원_챌린지(#동네빵집_챌린지)를 통해 파리바게뜨를 대신하는 지역 빵집을 소개하는 챌린지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또한 SPC 브랜드를 공유하며 불매를 통해 임 지회장을 비롯한 파리바게뜨 노동자들과 연대하기도 한다. 임 지회장이 단식 투쟁을 한 농성장 ‘SPC그룹에 전하는 시민들의 한마디’ 현수막과 천막 앞뒤로는 시민들이 적은 응원 메시지가 가득했다.

신 교수는 “과거 SPC그룹 불법파견 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가 나섰던 것처럼 이번에도 고용노동부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법률 위반이나 불법성은 없었는지 확인함과 동시에 양자를 중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SPC그룹은 사회적 합의의 당사자였던 민주노총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임금인상 등의 근거자료를 명확히 제시하고 설명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결국 정당이 나서고 언론이 받아 공론화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글·사진_ 이주현 기자 
xuhyxxn@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