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라가겠습니다

▲ 아차산 4보루에서 바라 본 서울
▲ 아차산 4보루에서 바라 본 서울

‘서울, 올라가겠습니다’에서 첫 번째로 올라갈 산은 아차산입니다. 아차산은 서울시 광진구와 중랑구 그리고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산입니다. 그래서 서울시와 경기도를 구분 짓는 자연 경계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빠른 산행을 원한다면 구리시 방향에서, 느긋한 산행을 원한다면 광진구 방향에서 출발하기를 추천합니다.

과거 아차산은 아차산과 산맥이 이어진 용마산과 망우산을 함께 부르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세 산을 구분해 각각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하나의 뿌리를 가진 세 산은 서로의 기억을 품고 있습니다. 먼저 망우산은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서울시민과 독립운동가의 묘지로 널리 사용됐습니다. 현재 그 모습은 ‘망우리역사문화공원’의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용마산은 1961년부터 27년간 서울의 개발과 함께한 채석장으로 사용됐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흔적을 채석장 부지를 활용한 용마폭포공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차산에서는 그보다도 더 오래된 삼국시대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흔적이 백제가 현 송파구 풍납토성에 도읍했을 때 고구려가 백제를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시설인 보루입니다. 아차산 보루는 남한 지역 고구려 유적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정상부에 위치한 아차산 4보루에 오르자 끝없이 펼쳐진 산과 강 그리고 끝없는 서울 시가지가 보였습니다. 저 멀리 눈을 돌리자 미끄럼틀 모양을 한 ‘씨티극동아파트’와 함께 한강과 풍납토성이 보였습니다. 중국과 해상교역의 거점이자 백제의 수도인 한강 유역을 노리던 고구려에게 풍납토성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차산이 최고의 군사적 요충지였다는 사실이 와닿았습니다.

광진구 쪽 등산로 초입에 있는 아차산성에는 삼국시대와 관련한 2개의 비극이 전해집니다. 먼저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한성이 함락당하자 당시 백제의 왕인 개로왕은 사로잡힌 후 아차산성으로 끌려가 참혹한 최후를 맞습니다. 이는 백제의 공격으로 전사한 고구려 고국원왕에 대한 통쾌한 복수이자 한성백제 시대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아차산성은 ‘바보온달과 평강공주’ 설화로 유명한 온달이 590년 신라에 빼앗긴 한강 유역을 되찾으려다 신라군에게 전사한 아단성이라고 추정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설화의 영향으로 아차산 입구에는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두 비극을 통해 삼국의 치열한 경쟁의 무대였던 아차산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습니다.

아차산은 해발고도 295.7m로 서울 외곽의 도봉산과 관악산 같은 높은 산에 비해 부담 없이 오를 수 있고 비슷한 높이의 남산에 비해 흙으로 된 등산로가 많아 자연의 아름다움 역시 만끽할 수 있습니다. 가을의 초입에서 등산의 재미와 역사 이야기가 어우러진 아차산을 올라가 보는 건 어떨까요?


최윤상 기자 uoschoi@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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