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기상관측 이래 최대 폭우’, ‘사망 14명과 실종자 2명’. 수도권을 중심으로 지난달 8~10일 쏟아진 폭우가 남긴 기록이다. 저지대 반지하주택 거주민은 이재민이 됐고 서울의 심장 강남역이 침수돼 많은 시민의 발이 묶였다. 이번 폭우는 우면산 산사태를 포함해 69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지난 2011년 폭우의 공포를 되새기기에 충분했다.
 

역대급 수증기… 뉴노말 될 수도

한반도 상공에 비의 원료인 수증기가 폭발적으로 공급된 것이 이번 폭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한반도 남동 북태평양고기압이 만든 시계방향 기류와 중국 남부 열대저기압이 만든 반시계 방향 기류로 수증기가 유입됐다. 이때 한반도 상공의 수증기가 만주의 북극권 찬 공기와 정체전선을 형성하며 폭우가 내렸다. 설상가상으로 한반도 해수면이 예년보다 3~4°C 이상 높아지자 더 많은 수증기가 증발해 기록적인 폭우에 일조했다.

역대 최고 강우를 두고 ‘기후변화로 일어난 인재’와 ‘일어날 수 있는 기상 상황’이라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렸다. 그렇지만 앞으로 한반도에서 지난달과 같은 비를 자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지난해 발간한 「한반도 기후변화 전망보고서 2020」에 따르면 21세기 말(2081~2100년)의 강수일수는 과거(1995~2014년) 대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5일 최대 강수량은 약 29% 증가하며 상위 5%의 극한강수일수*는 5일에서 8일로 증가 경향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결국 기후변화로 미래에는 이번과 같은 폭우를 더 자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10년 만에 다시 잠긴 강남역 왜?

이번 호우는 과거 서울시에서 지난 2011년 재설정한 치수 기준을 넘어섰다. 「자연재해대책법」에서는 지역별 방재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처리할 수 있는 시간당 강우량 및 연속 강우량 목표를 방재성능목표로 정해둔다. 서울시는 2011년 폭우 이후 방재성능목표를 시간당 95mm 강우로 30년 빈도의 강우강도**로 설정했고 침수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시설물을 개선했다. 하지만 기상청 AWS 강우관측자료에 의하면 지난달 8일 폭우는 시간당 141.5mm로 방재 성능 목표를 50%에 가깝게 넘겼다. 결국 2011년에 설정한 30년 빈도 이상의 폭우가 10년 만에 쏟아져 또다시 폭우에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도시는 폭우에 더욱 취약해 방재성능목표를 넘어갈 경우 도시홍수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대학 도시수해연구소 문영일 소장은 “도시를 개발하며 빗물이 침투하고 저류할 수 있는 녹지공간은 적어졌고 도로포장이 늘어났다”며 “지표면 강우 유출량이 증가하고 저지대의 지하주택은 폭우 시 생명을 위협받는 공간이 된 실정”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홍수 때 발생한 가장 큰 피해는 강남역이 다시 물에 잠긴 것이다. 계속되는 강남역 침수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한 결과다. 문 소장은 “강남역은 동쪽인 역삼역과 서쪽의 서초역보다 10m 이상 낮아 빗물이 모이는 깔때기 모양 지형”이라며 “기록적인 폭우로 강남역 인근 반포천 수위가 올라가 빗물이 반포천으로 원활하게 빠지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 소장은 “빗물을 일시 저장했다 내보내는 저류 시설 용량이 강남역은 1만 5천t으로 신월동배수시설의 용량인 32만t에 비해 적다”고 덧붙였다.
 

“남편이나 아내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

세계적 도시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곳인 강남역이 폭우로 침수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로 다가온다. 특히 청년 세대에게 이번 폭우의 장면은 충격적으로 느껴진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그러나 서울 역사에서 홍수를 일상이 아닌 재난으로 여기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책 『강남의 탄생』에 따르면 현재 마포구, 여의도와 뚝섬이 위치한 광진구는 홍수가 나면 상습적으로 물에 잠기고 강물이 마르면 백사장으로 변화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특히 현재 강남 지역은 예전부터 “남편이나 아내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대대적인 수방 대책 없이는 도시로 기능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강남 개발 당시 반포동과 서초동 일대는 강변도로보다도 낮은 지대로 매립해야 했지만 막대한 비용에 서울시는 이를 포기했다. 대신 지대별로 하수관을 따로 설치하고 저지대에 유수지와 배수펌프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폭우로 배수펌프장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 저지대에 물이 차게 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에 당시 서울시장 양택식은 저지대 지역은 모두 3층 이상 아파트를 짓도록 고안했다. 오늘날 한강을 따라선 아파트 지구는 이렇게 탄생했다고 전해진다. 제방으로 건설된 올림픽대교와 강변북로, 홍수 방지를 위한 소양강댐이 서울 치수를 위한 당시 노력의 산물이다.

문영일 소장은 “1970~1980년대 도시 영세민 주거 공간으로 보급한 반지하주택 35만 가구 중 4만 가구가 침수취약 지역에 위치했다”며 “이 지역에 대한 체계적인 방재 대책 수립에 미흡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대학 국사학과 염복규 교수 역시 이번 피해에 대해 “당시 개발에서는 도시화로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시대적 맥락이 있었다”면서도 “그 당시 눈앞의 개발에 몰두해 미래를 내다본 배수 체계 설계에 소홀했던 대가”라고 분석했다. 

“중장기적 대책만큼…안전한 곳으로 대피가 최우선”

현재의 방재성능목표에 대해 문영일 소장은 “향후 이상기후에 의한 폭우 발생 가능성을 본다면 지금의 배수시설은 침수 피해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며 “기후변화에 따른 강우증가율을 고려해 중장기적인 수해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도심지역은 빗물 배제 불량에 따른 침수가 대부분이므로 배수시설 성능 개선이 꼭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상습 침수 구역이었던 양천구 신월동은 지난 2020년부터 운영되기 시작한 배수시설로 이번 폭우에 큰 피해를 겪지 않았다. 지난달 23일 환경부는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하는 ‘도시침수 및 하천홍수 방지대책’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서울시와 강남역과 광화문 대심도 터널과 도림천 지하방수로 등 3곳의 선도사업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로 우선 추진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AI 기술 도입과 하수도 개량이 포함됐다. 

문 소장은 철저한 수해 대책을 강조하면서도 “과학과 기술이 발전해도 자연재해를 100% 막을 수는 없고 이를 시도하는 것 역시 최선이 아니”라며 “사회적으로 합의된 수방시설 능력을 초과해 발생한 경우 수해를 일부 감수할 수 있는 시민의 인식변화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문 소장은 “물을 물로 봤다간 큰코다친다”며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것이 최우선”임을 강조하고 안전 행동 요령을 당부했다.


*상위 5%의 극한강수일: 일 강수량이 기준기간의 상위 5%보다 많은 날의 연중 일수
**N년 빈도의 강우강도: N년에 한번 올 수 있을 것이라 예측되는 비의 양


최윤상 기자 uoschoi@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