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라.” 부분이 아닌 전체를 고려해야 한다는 뜻의 격언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만 해결하려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우리대학의 경우가 그렇다. 나무에 집중하느라 숲을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해결책이 새로운 골칫거리로 이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인도를 침범하는 오토바이를 막기 위해 캠퍼스 곳곳에 볼라드가 설치됐다. 이륜차 진입 문제를 해결하려던 실마리는 휠체어를 탄 학내 구성원을 가로막는 장벽이 됐다.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에 다행히 볼라드가 일부 제거되는 등 노력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 역시 나무에만 집중한 조치에 불과했다. 볼라드가 사라진 자리는 또 다른 불편을 낳았다. 시각장애를 가진 학내 구성원은 볼라드가 뽑힌 후 생긴 구멍에 발을 헛디디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문제가 닥칠 때마다 당장 눈앞에 불만 끄고자 하는 행동은 불씨를 남긴다. 남은 불씨는 금세 다른 화재를 야기한다. 

우리나라는 장애 유형을 15개로 구분한다. 그 정도도 중증과 경증으로 나뉘는 걸 보면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장애가 있는지 가늠가늠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항상 비장애인의 시각에서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런 근시안적 시각도 결국엔 장애인 인식 교육을 경시한 결과다. 

우리대학 교직원이라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장애인 인식 교육의 이수 시간은 1년에 고작 2시간에 불과하다. 장애 유형 개수가 몇 개인지 아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24시간도 넘게 관련 교육을 받았을 텐데도 말이다.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의 허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명목상, 형식상 교육에 그치지 말고 실질적으로 장애를 이해하는 교육이 모두에게 필요하다.

누군가는 당장 업무를 처리하기도 바쁜데 장애인 관련 교육에 왜 시간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나와 다른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야 숲을 볼 수 있다. 다양한 관점에서 넓게 보는 시야를 갖추자. 당장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한 모습에서 성장해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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