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 정기학술대회

우리는 근대와 현대를 가르는 사상가 중 하나로 프로이트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의식이 무의식의 바다에 있는 아주 작은 섬에 불과하다고 강조함으로써, 근대적 주체 관념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어 자끄 라깡은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는 구호 아래, 전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구조주의 언어학을 접목시켜 프로이트를 새롭게 재해석하여, 임상 수단에 머물렀던 정신분석학을 철학적 사유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놓았다.

프로이트가 생물학적인 관점에 입각해서 무의식을 원시적이며 동물적인 충동의 저장고로서 이해했다면, 라깡은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고 봄으로써, 무의식이 더 이상 기술할 수 없는 ‘이드’가 아니라 잠재적인 말의 은유와 환유의 사슬, ‘구조’로서 파악된다고 설명하였다.

또 라깡에 의해, 무의식은 어느 한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로서 개개인의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선험적 장으로 이해되었다. 라깡의 영향력은 정신분석학계뿐만 아니라 문학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철학, 사회학,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문화 전반에 광범위하게 스며들었다.

라깡이 죽은 지 2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이론은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1월 27일 우리대학에서는 <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가 주최한 ‘2004년 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 후기 정기학술대회’가 열렸다. 대회는 ‘정신분석과 임상, 문학 및 사회’라는 절차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Session1. 라깡과 프로이트, 그리고 클라인’에서 권택영(경희대)교수는, “프로이트가 말한 애정성향은 라깡에 오면 사랑이요, 감각성향은 증오다”라고 말하면서, 애정성향과 감각성향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아무리 분리하려고 해도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에 대해 논평자로 나선 고원(서울대)교수는, “선과 악이 공존하듯, 어느 한 곳에 비중을 두기보다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고 평하였다.

이어서 박선영(이화여대)교수는, ‘우울적 위치’는 인간이 상상계적 자아에서 온전한 상징계적 주체로 탄생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지나야만 하는 발달적 관문이자 구조적 자리라고 설명하고, “우울적 위치와 함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극복과정에서 어머니(원초적 대상)의 포기는 유아로 하여금 상상적 자아에서 상징적 주체로의 탄생을 추동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논평자였던 이만우(성공회대)교수는 “‘우울적 위치’는 인지 태도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만든 독특한 개념으로 보인다”고 지적하였다.

이어 진행된, ‘Session2. 라깡 정신분석과 텍스트 분석’에서는 김영민(동국대) 교수가 홉킨스(G.M. Hopkins)의 시(詩)를, 홍선미(전북대) 교수가 베를렌느(P. Verlaine)의 시를 라깡의 이론적 개념 안에서 분석하는 흥미로운 시도를 보여주었다.

‘Session3. 라깡 정신분석과 임상실제’에서 이유섭(명지전문대) 교수는, “마약 중독자는 거세 공포의 시련 속에서 소외와 고독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므로 죄책감을 벗어버리고, 삶의 여정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간은 단순히 신체·물질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정신분석의 상징화 작업을 통해 마약 중독과 같은 문제의 해결에도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다는 관점이 이목을 끌었다.

마지막 발표자로 나선 박시성(고신대) 교수는, “오스트레일리아 디킨 대학 정신분석학과와 멜버른 라깡 학회에 참여함으로써 임상에서 정신분석의 중요성을 훨씬 더 비중 있게 인식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결과를 중시하는 약물치료와 병행하여 정신분석을 통해 원인을 재구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든가 “성관계는 없다”와 같은 라깡의 흥미로운 명제들은 여전히 연구 대상으로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라깡의 이론은 한국에서 아직도 개론 수준의 소개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라깡과 현대정신분석학회>의 활동을 통해 이제는 ‘라깡으로 돌아가서’ 라깡의 이론에 대한 창조적인 재생산이 가능해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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