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은(가명) 씨는 10명으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 ‘NCT 127’의 팬이다. 그는 팬 사인회에 가기 위해 많은 앨범을 구매했다. 때로는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앨범을 샀다. 멤버 수가 많은 그룹을 좋아하다 보니 원하는 멤버의 포토카드가 나올 확률은 매우 적었다. 그럼에도 원하는 멤버의 포토카드를 얻을 때까지 앨범 구입을 멈출 수 없었다. 집에는 앨범들이 쌓여갔고 고민은 깊어졌다. “이 많은 앨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팬들이 앨범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 

‘에이핑크’의 팬인 양은우(24) 씨는 “최근 다양한 해외 음반 판매 사이트에서 특전 포토카드를 내세우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며 “포토카드를 얻기 위해 수십 장의 앨범을 사게 된다”고 말했다. 특전 포토카드는 앨범에 정식으로 포함된 포토카드가 아닌 소속사가 각 앨범 판매처에 미공개로 공급하는 굿즈다. 같은 맥락으로 기획사들은 똑같은 앨범을 다양화시키고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앨범 버전이 다양해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청소년들의 팬심을 이용해 비즈니스를 하는 게 적절한 건지, 팬들을 수익 수단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우려했다. 

쌓인 앨범은 사회복지기관에 기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앨범 처리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이연정 사회복지사는 “복지관 이용객에게 앨범을 드리고 있다”며 “요즘은 CD로 음악을 듣지 않고 이용객들이 선호하는 가수의 앨범이 아닌 경우가 있어 이런 방식으로 전달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상위기관으로 문의가 오면 무조건 받아야 할 때도 있고 후원자의 기부를 거절하기 곤란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기획사들이 내놓은 환경적 대안은? 

국내외 음악 서비스 플랫폼의 케이팝(K-POP) 데이터를 정식으로 공급받는 가온차트에 의하면 지난해 팔린 케이팝 가수들의 실물 앨범은 총 5708만 9160장이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40% 증가한 수치였다. 앨범 판매량이 급속도로 증가한 이유에 대해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최근 케이팝 아이돌이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는 데 높은 앨범 판매량이 기여했다”며 “다국적 그룹이 많아져 앨범 판매처가 늘어나게 된 것도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케이팝 앨범이 음악 감상 외 다른 목적으로 구매되는 경향이 짙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일부 기획사에서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새로운 형태의 앨범을 출시했다. CD, 포토북, 포토카드가 들어있는 기존 앨범과 달리 포토카드만 들어있는 ‘플랫폼 앨범’이 등장했다. ‘뉴진스’의 플랫폼 앨범을 구매한 여정연(21) 씨는 “부피가 작아 보관하기도 편하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며 “동봉된 QR 코드를 통해 콘셉트 사진을 디지털로 소장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YG는 지난해부터 앨범과 굿즈에 친환경 소재를 사용했다. 앨범 포장 비닐은 옥수수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친환경 수지를 썼고 환경 보호 실천의 의미를 담아 토트백과 멀티 파우치를 출시했다. ‘SF9’의 친환경 앨범을 구매한 윤세연(22) 씨는 “앨범에 콩기름 잉크가 사용됐고 친환경 소재가 80% 이상 활용됐다고 들었다”며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친환경 소재로 제작된 것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팬들의 움직임 

일각에서는 기획사들의 친환경 앨범 제작을 그린워싱*으로 보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양은우 씨는 “플랫폼 앨범을 추가로 발매해 더 많은 폐기물이 발생하고 팬들의 금전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반면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과거와 비교했을 때 케이팝의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며 “환경을 고려한 행보가 하나의 메시지가 돼 시도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3월 케이팝 팬들이 주도하는 기후 행동 단체 ‘케이팝포플래닛’이 창설됐다. 이 단체는 팬들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몇 차례 진행했다. 지난 3월에는 팬들로부터 처치 곤란한 앨범을 받았다. 총 8027장의 앨범이 전국 제로웨이스트 가게에서 수거됐다. 또한 지난 7월 ‘멜론은 탄소 맛’ 캠페인을 벌였다. 케이팝 팬들은 음원차트 순위를 올리기 위해 스트리밍을 하는데 이때 탄소가 배출된다. 해외 기업은 해당 과정에서의 탄소 저감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이다. 이 캠페인은 국내 최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 앱스토어에 스트리밍 방식의 변화를 요구하는 리뷰를 보내 기업이 탄소 저감의 필요성을 인지하도록 했다. 캠페인에 참여한 이어진(29) 씨는 “요즘 많은 사람이 기후 변화에 관심이 있는데 스트리밍이 엄청난 탄소 배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캠페인을 통해 이 사실을 알리고 기업들이 변화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그린워싱: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지만 마치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주의’를 가리킨다.
(사진 출처: 왼쪽부터 KTOWN4U, YG eshop)


이유진 기자 uzzin0813@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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