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광주의 한 대학교 기숙사에서 새내기 대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회복지학과로 항상 주변인을 챙기곤 했던 청년은 방학 중에도 홀로 기숙사에 남았다. 그는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라고 적힌 쪽지 한 장을 남기고 떠났다. 그로부터 엿새 뒤인 24일 오전 한 아파트 화단에서 21세 대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청년은 장애가 있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었다. 그는 남은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힌 유서 한 장을 남겼다. 나이와 성별, 마지막 남긴 말까지 모두 달랐지만 같은 선택을 한 두 대학생. 이들의 공통점은 둘 다 ‘자립준비청년’이었다는 점이다.
 

▲ 아름다운재단 손자영 캠페이너가 미디어 속 고아 캐릭터에 관한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 아름다운재단 손자영 캠페이너가 미디어 속 고아 캐릭터에 관한 발제를 진행하고 있다.

500만원, 우울증, 고아의 공식

자립준비청년이란 아동양육시설, 공동생활가정, 가정위탁 등의 보호를 받다가 만 18세 이후 보호가 종료돼 홀로서기에 나서는 청년들을 말한다. 매년 약 2500명의 청년이 성인이 돼 보호기관을 떠난다. 통제와 규율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되지만 세상으로 나서는 청년들의 발길은 무겁다. 자립을 꿈꾸려는 이들에게 각종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을 기다리는 첫 번째 난관은 경제적 어려움이다. 보호시설에서 2년 이상 거주하고 퇴소 직전 6개월 이상 생활한 청년에겐 지역에 따라 약 500만원에서 700만원 정도의 자립정착금이 지급된다. 여기에 2년 이상 보호를 받으면 지급되는 월 30만원의 자립수당과 월 10만원 이내의 돈을 저축하면 정부가 2배를 지원하는 디딤씨앗통장, 그 외 후원금과 아르바이트 임금 등을 합해 약 수천만원 정도가 자립준비청년 손에 쥐어진다. 집세, 학비, 의료비 등 각종 비용을 부담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광주에서 사망한 대학생 역시 퇴소 후 받은 자립정착금 500만원을 1학기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으로 소진했다. 부족한 경제관념도 자립준비청년의 경제적 어려움을 유발하는 요소다. 장기간 보호시설에서 살아 경제활동에 대한 경험이 적은데다 퇴소 후 해방심리까지 맞물려 과소비를 벌이는 일도 잦다. 자립준비청년협회 주우진 회장은 자립준비청년의 과소비 현상에 대해 “한 달 용돈 3만원으로 생활하던 청년들이 수백, 수천만원의 돈을 쥐게 되면 억눌렸던 소비욕이 폭발하게 된다”며 “한 번쯤은 다 겪게 되는 일종의 성장통”이라고 밝혔다.

 

▲ 자립준비청년협회 주우진 회장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자립준비청년협회 주우진 회장이 업무를 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만큼이나 자립준비청년을 옭아매는 것은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고통이다.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 △낯선 환경 △독립 후 삶과 진로에 대한 두려움 등 다양한 요인이 자립준비청년을 심리적으로 몰아붙인다. 많은 자립준비청년이 우울증과 신경쇠약, 강박증세 등을 호소하지만 지원 절차가 복잡하고 담당 인원도 부족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울과 고독은 극단적인 선택의 불씨가 된다. 지난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실시한 「보호종료아동 자립 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 3104명 중 50%가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주우진 회장 역시 “우울증은 저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자립준비청년이 겪는다고 보면 된다”며 “신문 기사에 나온 이들보다 훨씬 많은 청년이 극단적 선택을 한다”고 전했다. 

직접적인 빈곤과 고통만이 자립준비청년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 또한 수익과 인기를 위해 상처를 안겨주기도 한다. 영화와 드라마 속 보호기관 출신 캐릭터들은 혐오의 대상 혹은 동정의 대상으로 소모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고아’들은 ‘보육원에서 자란 것 같다’, ‘역시 고아답다’ 같이 사람들이 실제 자립준비청년을 판단하는 기준이자 혐오의 이유가 된다. 자립준비청년 출신인 아름다운재단 손자영 캠페이너는 미디어와 사회에 존재하는 이러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고아의 공식’이라 칭했다. 손자영 캠페이너는 “미디어에선 캐릭터의 불안정한 모습이나 범죄 이유를 설명할 때 고아라는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가져다 쓴다”며 미디어 속 무분별한 고아 캐릭터 남용을 지적했다. 또한 “보호기관 출신인 걸 알게 되면 드라마 속에서처럼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봐 가짜 가족사진을 프로필에 올리기도 했다”며 자신 역시 고아의 공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음을 토로했다.

금전적 지원만큼 중요한 것들

두 자립준비청년의 죽음으로 세간의 이목이 쏠리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개선책을 내놓았다. 지난 8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자립수당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고 의료비 본인부담금을 신규 지원할 것을 발표했다. 서울시 역시 자립정착금을 1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인상하고 월 20만원의 동아리 활동비 지원을 약속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금전 지원 확대에 대해 자립준비청년과 전문가들은 환영하면서도 심리적 지원과 믿을 수 있는 어른과의 만남도 병행돼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코로나19와 취업난 등으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에게 심리검사와 일대일 상담을 지원하는 청년마음건강지원사업, 성인 후견인을 파견해 피보호인의 일상생활과 경제상황을 돕는 공공후견인 제도 같은 정책이 자립준비청년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운재단 김성식 팀장은 “자립준비청년의 어려움은 단순히 주거나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를 걱정해주고 기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가고 삶의 의지를 찾는다”며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관계망 형성과 믿을 수 있는 어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공적 지원이나 민간 지원 모두 일방적인 지원의 형식을 탈피해 당사자 관점의 지원이 필요하다”며 “증빙자료를 위해 남기는 기사 사진이나 공연 티켓에 쓰여진 보호시설 이름은 자립준비청년이 원치않는 정체 노출을 우려해 지원제도를 꺼리게 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스스로 바꿔나가는 그들을 위해

자립준비청년은 자신에 대한 인식과 처우를 바꿀 수 있는 건 스스로뿐이라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주우진 회장은 “과거에는 시설 출신이라고 하면 입대도, 취업도 안 되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점차 우리에 대한 인식이나 주목도가 많이 늘어난 상태”라며 “자립준비청년이 정말 열심히 사는 이미지로 바꿔나가는 건 우리만이 할 수 있다”고 답하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청년 세대가 많은 관심과 의견을 내놓아줄 것을 이야기했다. 손자영 캠페이너는 “캠페인을 진행하며 대중과 미디어 종사자에게 제 목소리가 제발 닿았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많이 했다”며 “고아의 공식에 대해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 이야기하지만 계속해서 재생산될 수밖에 없는 미디어 시스템의 한계점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었다”며 미디어 속 자립준비청년에 관한 대학생들의 면밀한 관심을 당부했다. 스스로 노력하는 자립준비청년이 노력에 걸맞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를 넘어 사회구성원 모두가 의무를 다해야 할 때다.


임호연 기자 20226300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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