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네 요리조리

요리조리 돌아볼 세 번째 동네는 노원구 공릉동이다. 공릉동은 조선왕릉과 육군사관학교가 위치하고 있어서 동 대부분이 군사지역이자 문화재보호구역이다. 서울 곳곳에서 재개발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공릉동은 태릉과 강릉, 육군사관학교 골프장, 불암산이 어우러진 녹색공간으로 남아왔다. 초록이 가득한 공릉동은 빽빽하게 아파트가 들어선 노원구에서 휴식과 안정을 주는 장소로 노원구민에게 사랑받고 있다.

공릉동은 서울 동북쪽 노원구에서도 동쪽 끝에 위치한다. ‘공릉동’이라는 이름은 공덕리와 태릉에서 유래했다. 1963년 공릉동이 경기도 양주군에서 서울시로 편입될 당시엔 태릉동으로 이름을 정했었다. 그러나 신설될 동에 본인들의 마을 이름을 넣고자 했던 공덕리 주민들이 반대했고 공덕리와 태릉에서 한 글자씩 따서 이름을 지어 공릉동으로 불리게 됐다. 공릉동 중앙에는 옛 경춘선 선로를 따라 만들어진 경춘선 숲길과 크고 작은 공원들이 조성돼있다. 동쪽 끝엔 조선왕릉인 태릉과 강릉이 자리하며 숲길 주변으론 다양한 전시 공간이 존재해 자연을 누리며 학술·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기자는 △공릉동닭한마리 △도깨비시장 △서울생활사박물관 △경춘선숲길 △에슬로우커피 △태릉을 방문해 소개하려 한다.
 

조리되는 닭한마리와 양념에 버무린 채소의 모습
조리되는 닭한마리와 양념에 버무린 채소의 모습

본격적인 탐방 전 식사를 위해 향한 곳은 닭요리 전문점 ‘공릉동닭한마리’다. 공릉동닭한마리는 태릉입구역 4번 출구에서 내려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식당에 들어가 닭 한 마리 반을 주문하자 약 10분 뒤 떡과 닭고기, 파가 냄비 속 육수에 팔팔 끓여진 채 식탁 위에 놓였다. 양념장과 마늘, 후추로 만든 양념에 버무린 채소를 다 익은 닭고기와 함께 먹어보니 쫄깃한 고기의 식감과 채소의 아삭함이 입안에서 느껴졌다. 고기를 다 먹은 후엔 칼국수를 추가해 얼큰한 국물과 함께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도깨비시장의 입구 모습
도깨비시장의 입구 모습

식사 후 식당 옆에 있는 ‘도깨비시장’을 방문했다. 도깨비시장은 1939년 경성과 춘천을 잇는 경춘선이 개통되자 화랑대역 인근에 노점상들이 열리며 생겨났다. 철도를 따라 만들어져 일자로 긴 것이 특징으로 도깨비라는 이름은 공무원들이 노점 단속을 나오면 상인들이 도깨비가 다녀간 듯 사라지고 단속이 끝나면 다시 철길에 모여 장터를 연 데서 유래했다. 과일과 채소, 해산물을 둘러보던 중 닭강정 집이 눈에 들어왔다. 컵에 가득 찬 닭강정을 한입 무니 땅콩과 호두, 닭고기살의 조합이 일품이었다. 도깨비시장은 공릉역과 가까워 잠시 들러 식사하거나 구경하기도 좋은 장소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의 외부 모습
서울생활사박물관의 외부 모습

닭강정을 맛본 후 남쪽에 있는 ‘서울생활사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난 2019년 개관한 서울생활사박물관은 광복 이후부터 현재까지 서울 시민들의 생활 면면을 보여주는 근현대 박물관이다. 3층으로 구성된 전시관 중 1층에선 서울 풍경이란 주제로 △식량배급표 △영화 <택시운전사>에 등장한 녹색 브리사 택시 △금성전자 20주년 할인 홍보지 △서울월드컵 당시 쓰인 부부젤라 등 근현대 서울을 보여주는 다양한 용품들이 전시돼있다. 2층에선 서울살이라는 주제로 육아용품과 문제집, 웨딩드레스 등 생활용품들을 볼 수 있으며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유행했던 음반과 영화를 보고 들을 수 있다. 이외에도 MT, 라디오, 놀이터 등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시를 진행해 평소 역사에 관심이 적더라도 재밌게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철도를 따라 조성된 경춘선 숲길의 모습
철도를 따라 조성된 경춘선 숲길의 모습

박물관에서 나와 공릉동 중심가로 들어가자 노원구를 관통하는 경춘선 숲길이 나타났다. 2006년 경춘선 일부 구간이 직선화되며 공릉동을 지나던 경춘선 철도는 폐선됐다. 폐선된 경춘선 철길에 쓰레기가 쌓이고 슬럼화되자 서울시는 경춘선 폐선 부지를 공원화하기로 결정했다. 6년에 걸친 공사 끝에 지난 2019년 공릉동에서 구리시 경계까지 6km에 이르는 경춘선 숲길이 개통됐다. 철도를 따라 한적한 숲길을 걸으니 기자의 마음도 높고 푸른 가을 하늘처럼 청명해졌다. 철길을 따라 좀 더 걸으면 구 화랑대역사에 조성된 ‘화랑대 철도공원’이 나타난다. 이곳엔 일제강점기 사용된 미카 증기기관차나 광산용 협궤열차 등 국내에서 사용됐던 열차들과 역무원 소품들이 전시돼있다. 해가 진 후 공원은 열차와 조형물 불빛들로 아름다운 야경을 뽐내는 노원 불빛정원으로 변한다. 휴무일인 월요일을 제외하면 무료로 개방하는 만큼 철도나 야경을 좋아한다면 추천할만한 곳이다.
 

더치커피 전문점 카페 에슬로우 1층의 모습
더치커피 전문점 카페 에슬로우 1층의 모습

두 시간 동안 걸어 지친 몸을 잠시 달래고자 ‘에슬로우커피’로 들어갔다. 회갈색 벽돌과 갈색 나무로 디자인된 카페는 정적이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냈다. 2층에 자리를 잡으니 차가운 물을 사용해 추출한 원두 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커피를 마시자 더치커피만의 진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다. 장시간 보행으로 노곤해진 몸과 머리에 활력이 돌게 하는 맛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창밖을 보면 방금까지 걷던 경춘선 숲길이 저 멀리 노을에 반사돼 주황색으로 비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은은한 가을 오후를 여유롭게 느끼고 싶었지만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문정왕후가 묻혀있는 태릉의 전경
문정왕후가 묻혀있는 태릉의 전경

여섯 번째 장소는 문정왕후가 묻힌 태릉이다. 태릉은 어떤 왕비의 능보다도 크지만 다른 왕릉과 달리 왕비 홀로 묻혀있는데 여기엔 사연이 있다. 문정왕후는 조선 11대 왕인 중종의 세 번째 왕비로 12살인 자신의 아들 명종이 즉위하자 8년간 수렴청정해 아들 대신 조선을 다스렸다. 문정왕후는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교를 중흥하는 등 거침없는 성격과 행보로 여제, 여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또한 자신이 죽으면 남편과 같이 묻을 것을 당부하며 고양에 있던 중종의 능을 오늘날 강남구 삼성동 정릉위치로 이장했다. 그러나 문정왕후가 사후 묻히기로 한 정릉 묘역에 물웅덩이가 발견되자 명종과 신하들은 문정왕후의 능을 오늘날 태릉 자리에 조성했다. 태릉을 끝으로 길고 긴 공릉동 탐방을 마무리했다. 밖에 나가기 좋은 상쾌한 가을, 공릉동을 걸으며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오늘날까지 자연 속에 숨어있는 문화와 역사를 만나보면 어떨까.


임호연 기자 20226300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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