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티넘 주빌리를 맞은 최초의 영국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가 지난 8일 향년 96세로 서거했다. 재위 70주년을 기념하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가 열린 지 3개월 만이다. 여왕의 장례는 밸모럴성에서부터 성 자일스 대성당 등을 거쳐 그가 대관식을 치렀던 버킹엄 궁전의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이뤄졌다. 열흘이 소요되는 장례식의 마지막 날 여왕은 윈저 왕조가 대대로 잠들어 있는 윈저성에 안치됐다. 
 

▲ 런던 시내 한복판에 걸린 엘리자베스 2세의 추모글(출처: 연합뉴스)
▲ 런던 시내 한복판에 걸린 엘리자베스 2세의 추모글(출처: 연합뉴스)

노블리스 오블리주, 진정한 ‘왕’이 되려면

엘리자베스 2세는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다. 차남인 조지 6세의 딸로 태어난 그는 왕위 승계자가 아닌 왕족이었다. 그러나 선왕 에드워드 8세는 이혼 경력이 있던 미국인 심프슨 부인과 스캔들을 일으키며 ‘사랑하는 여인 없이는 국정 불가능’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왕좌는 조지 6세에게 돌아갔고 엘리자베스 2세는 1936년 10살의 나이로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됐다. 그는 단순한 ‘공주’가 아니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온 영국의 ‘국민’이기도 했다. 여왕은 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공주의 신분으로 군에 입대한다. 335명의 전사자가 나오기도 한 영국 육군 여군 조직에서 군수품 트럭을 운전하고 엔진을 수리하며 영국 전장을 지켰다. 종전 후 병환으로 사망한 부친의 뒤를 이어 1952년 ‘왕’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영국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영국 왕실의 신조는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이다. 입헌군주제 국가에서 국왕은 실권을 쥐지 않고 국가를 형식적으로 대표한다. 총리 임명권자임에도 의회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며 의견을 직접적으로 표명해서도 안 된다. 영국 내에서 국왕은 모든 행위와 법률을 승인하는 주체지만 그 승인은 형식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실질적으로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국왕의 존재는 유지되기에 의회와 왕실 사이의 안정적인 국가 균형이 입헌군주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 국민 대다수는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통치를 이어온 엘리자베스 2세가 군주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평가한다. 엘리자베스 2세는 재임 기간 왕실의 권위와 국내 평화를 위해 노력했다. 여왕의 1965년 첫 서독 방문은 2차 대전 후 완전한 전쟁의 종결을 상징했다. 1997년에는 아편전쟁 당시 영국의 불평등 조약으로 할양받은 홍콩을 돌려주며 영국 역사상 최초로 ‘군주’로서 중국을 방문해 대영제국의 종말을 함께했다. 

더불어 지난 2011년 아일랜드 공화국을 방문해 과거 식민 지배에 유감을 표하며 이웃 국가와의 화해를 주도했다. 그 후 여왕은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 사태와 브렉시트 등 영국 사회를 크게 흔들었던 사건들을 함께했고 ‘영국인의 혼’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우리대학에서 <대학영어 S>를 가르치는 영국 국적의 Steven Moore 교수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평화로운 외교 관계와 국내 안정 도모에 힘썼다”고 평가했다. 이어 “팬데믹 기간에 사회적 거리 유지와 코로나19 방역지침을 따르길 격려해 영국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며 “영국의 사회와 문화에서 왕실을 빼놓을 수 없다”고 전했다.

왕실 유지, 득일까 실일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직후 왕실에 대한 지지율이 크게 증가했으나 찰스 3세가 즉위하자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영국 역사상 가장 왕좌를 오래 차지한 인물인 만큼 아들인 찰스 3세는 왕세자의 자리에 가장 오래 머무른 인물이다. 찰스 3세의 과거 스캔들과 더불어 공식 석상에서 보인 예민한 태도로 왕실 유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대두했다. 현대사회에서 공화제 국가에 비해 군주제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세론이 언제나 왕실 유지에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영국이 군주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대학 영어영문학과 전인한 교수는 “17세기에 크롬웰의 의회와 찰스 1세의 왕정이 충돌한 내전에서 의회가 승리하며 공화정이 열렸다”고 설명한다. 덧붙여 “크롬웰이 사망 후 왕정을 대체할 만한 좋은 제도를 찾아내지 못했기에 왕정으로 복고됐다”고 말했다. 이어 “찰스 3세의 개인적 태도 때문에 왕실 폐지가 언급될 수 있겠지만 영국의 역사와 경제적 손해를 고려했을 때 감정적인 비판으로 인한 폐지는 실현될 수 없다고 본다”고 밝혔다. 

영국 왕실은 경제적으로 국가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기도 하다. 왕실은 그 자체로 영국의 상징이다. 왕실과 관련된 행사는 관광 측면에서도 하나의 경제적 이득 원천으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에는 일반인의 조문이 허가됐으며 영국 국민뿐만 아니라 미국과 인도, 동남아 지역 등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방문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이 유지해 온 군주제가 최선의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로 이루어진 영연방의 행정과 경제 체제는 이미 통일돼 있다. 영연방에 속한 국가들을 하나로 묶는 것 또한 영국의 국왕이기에 영국 왕실이 사라진다면 많은 혼란이 야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인한 교수는 “영연방이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국가 간 무관세와 기술 이전 등 분명한 경제 공동체”라고 분석했다. 그는 “19세기적 제도인 군주제를 현대에 잘 적응시켜 20세기를 이끌어 온 엘리자베스 2세의 죽음으로 ‘제국의 영광’은 완전히 끝났다”며 “과거가 떠나간 지금 우리는 영국이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신연경 수습기자 yeonk48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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