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태풍이 무섭다’는 말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태풍발생통계」에 따르면 1991년부터 지난 2020년까지 태풍은 8~9월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이번해도 가을에 접어들자마자 태풍이 한반도를 위협했다. 특히 11호 태풍 ‘힌남노’는 한반도 상륙 전 950헥토파스칼(hPa)의 중심기압을 기록하며 매미와 맞먹는 역대급 태풍으로 예측돼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다. 

순식간에 방향 틀어 큰 피해 남긴 힌남노

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는 지난달 28일 일본 도쿄 남동쪽 약 1280km 부근에서 발생했다. 이어 지난 3일 일본 오키나와 남서쪽 약 320km 부근 해상에서 방향을 틀어 한반도를 향해 북상했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은 ‘후지와라 효과’ 때문이었다. 후지와라 효과는 열대성 저기압 2개가 1000km 거리 내에 있을 때 서로 이동 경로나 속도에 영향을 주는 현상이다. 강릉원주대 대기과학과 강성락 교수는 “수증기를 많이 포함한 공기일수록 가볍고 상승 속도가 빠르다”며 “상승 속도가 빨라질수록 대기 밑부분에 질량의 결손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벼워진 힌남노의 결손 부분에 상대적으로 무거운 열대 저기압이 흡수돼 규모와 기세가 강대해지며 급격히 방향이 틀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 2003년 제14호 태풍 ‘매미’가 한반도에 상륙한 모습(출처: 기상청 위성 사례영상 캡쳐)
▲ 2003년 제14호 태풍 ‘매미’가 한반도에 상륙한 모습(출처: 기상청 위성 사례영상 캡쳐)

힌남노는 급격한 방향 전환 후 우리나라 중심부를 관통할 예정이었으나 북상 중 동쪽으로 더욱 기울어졌다. 지난 6일 힌남노는 약 3시간 동안 위험반원의 최근접 지역이었던 △포항시 △경주시 △울산광역시 등의 영남 해안지역에 큰 피해를 줬다. 경주에 거주하는 최원준(20) 씨는 힌남노에 대해 “바람 소리에 창문이 깨지는 줄 알았다”며 “밖에 나갈 수 없을 정도로 폭우가 내렸다”고 말했다. 행정안전부가 8일 공개한 「제 11호 태풍 힌남노 대처상황 보고」에 따르면 힌남노로 인한 사망자는 11명이었고 실종자와 부상자는 4명이었다. 힌남노로 피해를 입은 포항제철소가 49년 만에 가동을 전면 중지하면서 막대한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 

해수면 온도 상승에서 태풍까지, '나비효과'

가을만 되면 태풍이 한반도로 날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성원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해수면 온도가 높은 곳의 공기는 하층 부근이 따뜻하고 습하다. 하층의 고온다습한 대기는 상층으로 들어 올려지는 순간 수증기로 응결한다. 이때 잠열이 방출돼 주위 대기보다 가벼워져 스스로 상승하는 기류가 된다. 여기서 잠열이란 어떤 물체가 온도의 변화 없이 상태가 변할 때 방출되거나 흡수되는 열이다. 강성락 교수는 “겨울에 따뜻한 물을 밖에 놔두면 김이 올라오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많은 수증기가 상승하면 적란운이 생성되고 집단을 이룬다. 적란운 집단 내에서 구름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상공의 일정 영역 내에 응결열이 축적된다. 축적된 열로 적란운 집단의 상공은 데워져 지상보다 높은 온도를 가진다. 

공기 기둥 상단과 하단의 온도 차로 인해 지상은 저기압이 되고 약한 저압부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저압부가 바로 태풍의 전신인 열대 저압부다. 일련의 현상은 일조량이 많아 해수면 온도가 평균적으로 높은 7~9월에 많이 발생한다. 여름인 7~8월에는 한반도 남동쪽 해양에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크게 발달해 태풍이 우리나라에 오는 것을 저지한다. 하지만 8월 말부터 북태평양 고기압이 약해지면서 가을에 태풍이 한반도로 접근할 가능성이 증가하게 된다. 

가을 태풍은 강력한 바람과 높은 강수량을 특징으로 한다. 강 교수는 “태풍은 해수면 온도가 높으면 이동하는 과정에서 수증기를 얻으면서 규모를 유지하거나 키운다”며 “가을은 해수면 온도가 높아 태풍이 폭풍을 만들어낼 연료인 수증기를 많이 공급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증기가 공급될수록 태풍 상공의 온도는 지상에 비해 높아지고 공기 기둥 상하부의 기압 차가 더욱 커진다. 강 교수는 “기압이 낮아질수록 공기의 기압이 빠르게 변하고 기압 변화가 빨라지면서 바람이 강해진다”고 전했다. 태풍이 많은 비를 수반하는 이유에 대해 강 교수는 “태풍 속 수증기는 작은 언덕 정도만 타고 올라도 비로 내린다”며 “우리나라는 산악 지형이 많아 태풍으로 인한 폭우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가을 태풍의 대명사, 매미와 루사

태풍 ‘매미’가 한반도를 강타했을 당시 부산에 거주하던 김화경(50) 씨는 “베란다 창문이 휘어지고 아파트가 흔들렸다”고 회상했다. 국가기록원 기록물 「매미」에 따르면 2003년 9월 12일 매미는 약 7시간가량 한반도 남부지역을 강타했다. 매미의 상륙 후 중심최저기압은 954hPa로 힌남노의 상륙 후 중심최저기압보다 낮았다. 낮은 중심기압으로 발생한 강력한 바람은 당시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 수월봉 기상대 풍속계에 초속 60m를 기록해 최대순간풍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태풍 피해로 인한 사망자만 119명이었고 실종자와 부상자는 약 400명에 달했다. 매미는 부산항에 설치된 크레인들을 쓰러뜨릴 정도로 강력해 전국적으로 약 4조 7810억원의 재산피해를 발생시켰다.

태풍 ‘루사’는 매미와 다르게 엄청난 양의 비로 전국적으로 피해를 줬다. 국가기록원 기록물 「루사」에 따르면 2002년 8월 31일 한반도는 약 22시간 동안 루사의 영향권에 있었다. 2002년은 남해상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 태풍이 수증기를 수급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강성락 교수는 “루사의 경우 생성 초기에는 수증기가 많지 않았지만 북상하는 과정에서 수증기를 계속해서 흡입하며 성장했다”고 말했다. 

강릉지방에는 연평균강수량의 62%인 870.5mm가 하루 만에 내리며 태풍으로 인한 강우 관측기록을 경신했다. 태풍 피해로 인한 사망자만 209명이었고 실종자와 부상자는 112명이었다. 폭우의 영향으로 하천이 범람하고 도심의 저지대가 침수돼 전국적으로 약 5조 1479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역대급 규모와 피해를 기록한 매미와 루사는 이후 발생한 태풍들과 꾸준히 비교되며 위험한 가을 태풍의 대명사로 남아있다. 강 교수는 “가을철 태풍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은 아직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며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해 변수가 많은 기상 현상”이라고 이야기했다.

참고도서_후루카와 다케히코, 오키 하야토, 『기상 구조 교과서』, 보누스, 2020.


정재현 수습기자 kai71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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