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고 있는 전화번호가 3개 이하다’, ‘평소 손글씨를 쓰지 않는다’, ‘내비게이션 없이는 스스로 길을 못 찾는다’. 일본 고노 임상의학 연구소가 제시한 영츠하이머 자가진단 문항의 일부다. 8개의 자가진단 문항 중 3가지 이상에 해당된다면 영츠하이머를 의심할 만하다. 영츠하이머는 ‘Young’과 ‘Alzheimer’를 합친 단어로 20~30대 청년이 건망증 또는 치매 증상을 겪는 경우를 지칭한다. 지난 2020년 취업 지원 기업 잡코리아가 시행한 설문조사에서 청년 649명 중 43.9%가 자신을 영츠하이머라고 생각한다고 나타났다. 청년들의 일상과 학업에 방해물로 떠오른 영츠하이머에 대해 알아보자. 

영츠하이머, 증상 정의도 불명확해 

영츠하이머는 어원인 알츠하이머와 달리 공식적인 질병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공식 치매로 진단받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벼운 건망증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알츠하이머가 기존의 65세 이상 노년기에 발생하던 패턴에서 벗어나 65세 미만에 발생하는 초로기 치매 유병률이 증가했다. 초로기 치매와 더불어 영츠하이머에 대한 학계의 관심도 늘고 있다. 

영츠하이머의 원인으로는 △과도한 디지털 기기 사용 △정신적 피로와 스트레스 △과도한 음주 △불규칙한 생활 습관 등이 지목된다. 그러나 공식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은 만큼 의학계에서 관련 연구가 진척되지 않고 있다. 전주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김연수 교수는 “디지털 기기의 사용 증가가 영츠하이머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다”면서도 “디지털 기기에 의한 영향은 개인 차가 크고 다른 요인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연구가 이뤄지지는 않았고 최근 들어 종종 보고되는 정도라 아직 결정적 원인이 무엇인지는 불명확하다”고 덧붙였다. 

영츠하이머는 다른 증상과 혼동되며 아직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실정이다. 영츠하이머의 대표적 증상 3가지는 디지털 치매, 알코올성 치매, 가성 치매로 명명된다. 첫 번째 디지털 치매 증상은 디지털 기기에 의존해 뇌의 자체 기억 능력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청년 대부분은 전화번호 기억부터 일정 확인, 간단한 계산, 길 찾기까지 일상 전반에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다. 이러한 청년의 생활 습관이 건망증을 유발하고 뇌가 스스로 정보를 기억하고 저장하는 능력은 퇴화하게 된다. 뇌에서 기억을 관장하는 기관인 해마는 기억하는 게 많을수록 커지는데 항상 디지털 기기를 갖고 다니는 청년들은 굳이 스스로 기억할 필요가 없게 됐다. 이러한 이유로 디지털 기기 사용량의 증가는 기억력 감퇴라는 결과를 낳는다. 

두 번째 증상은 술을 마신 후 기억을 잃는 알코올성 치매 증상이다. 음주 직후 기억을 망각하는 ‘블랙아웃’은 단기기억 상실의 일종으로 해마가 기능을 하지 못해 나타난다. 알코올에 의해 해마가 마비돼 새로운 기억을 입력하지 못하고 뇌세포가 파괴된다. 잦은 음주와 블랙아웃은 뇌세포의 회복을 막아 알코올성 치매로 연결될 수 있다. 마지막은 우울증 등 정신 질환으로 인한 가성 치매 증상이다. 가성 치매는 검사 결과 치매로 판단할 수 없지만 치매 증상을 보이는 가짜 치매에 해당한다. 우울증 발생 시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세로토닌 분비량이 줄어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는 증가하는데 이는 인지 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디지털 기기 멀리하고 스스로 생각해야 

영츠하이머 자가진단 모든 항목에 해당한다는 청년 박서연(21) 씨는 “타인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다가도 매번 특정 어휘가 생각이 안 나 말이 끊기곤 한다”며 “가끔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도 잊어버린다”고 증상을 설명했다. 박 씨는 “중요한 일정이라도 일일이 기록하고 알람을 맞춰놓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다”라며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의 증상은 영츠하이머의 기본적인 증상에 해당한다. 전주대 카운슬링센터장이기도 한 김연수 교수는 “성적이 낮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하는 경우 학생들이 기억 자체를 잘 못해 학업에 지장이 있다고 호소하곤 한다”고 말했다. 영츠하이머를 앓는 청년은 일상생활과 학업 이행에 불편을 겪게 된다. 

한편 박 씨는 “영츠하이머임을 자각한 이후 오히려 기억이 더 안 난다”며 “내 두뇌에 한계가 있다고 단정 짓게 돼 의지도 노력도 줄어들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개선을 위해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한 후 성인 ADHD 판정을 받았다고 전했다. 우울증과 ADHD 등 다른 정신 질환을 동반하는 것 역시 영츠하이머의 증상 중 하나다. 김 교수도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청년이 건망증을 겪을 때의 고충을 설명했다. 이어 “중요한 기술 습득과 학업 이행이 어려워지면 성취감도 효능감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결국 자신감과 자존감이 없어지는 방향으로 청년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관련 질병이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영츠하이머 예방을 위해서는 △디지털 기기 의존도 축소 △충분한 수면과 휴식 시간 △규칙적 생활 등이 필요하다. 지난해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가 발표한 「스마트폰·PC 이용행태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스마트폰 전체이용시간은 월평균 8044.74분으로 전년 동월 대비 783.33분 증가했다. 하루 평균 약 4시간 20분 스마트폰을 사용한다는 의미다.

김 교수는 “심리학에서는 언어적 심리치료와 의학적 약물치료를 병행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지향한다”며 “디지털 기기 의존도가 원인이라면 그 의존도를 낮추고 살아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대가 가면 갈수록 사람들의 평균 지능이 높아지는 플린 효과의 반대인 역플린 효과가 발생하고 있는데 영츠하이머도 비슷한 흐름으로 볼 수 있다”며 “영츠하이머에 관한 국내 본격적인 의학 연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의식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고 뇌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마음을 비우는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시연 기자 jsy434438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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