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생 김강현(가명) 씨는 코로나19 전과 달라진 강의실 모습에 깜짝 놀랐다. 김 씨는 휴학 전과 마찬가지로 학교 근처 인쇄소에서 수업자료를 인쇄한 후 강의실로 향했지만 절반 이상의 학생들이 태블릿PC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수업을 마친 김 씨는 태블릿PC를 사야 할 것만 같아 중고거래 어플로 태블릿PC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비단 김 씨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코로나19 이전 대면 수업을 경험한 19학번 대학생 한여름(23) 씨는 “코로나19 이후 교수님과 학생들이 모두 전자기기에 익숙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전자기기가 종이를 대체하는 현상은 학교를 벗어나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올리브영에서는 종이영수증 대신 ‘스마트영수증’이라 불리는 전자영수증을 발급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건강검진 검진표를 네이버 전자문서로 발송해 기관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쉽게 문서를 열람할 수 있게 한다. 금융권에서도 디지털 뱅킹 시대를 맞아 종이를 쓰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분위기다. KB국민은행의 종이 통장 줄이기 캠페인이나 은행에서 태블릿PC를 이용해 서류를 작성하는 등 종이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전자기기가 종이를 대체하는 현상과 앞으로 종이의 전망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봤다. 
 

▲ 태블릿 필기와 종이 필기 비교
▲ 태블릿 필기와 종이 필기 비교

검은 화면 속 담긴 종이

전자랜드가 지난해 1월 1일부터 3월 31일까지 가전 매출을 분석한 결과 태블릿PC의 매출은 전년 대비 31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로 인해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을 준비하며 디지털기기 구매 사례가 증가한 것이 원인이다. 한여름 씨는 “2년 동안 비대면 강의를 경험하며 교수는 수업을 진행하고 학생은 강의를 듣기 위해 태블릿PC가 필요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코로나19 전에는 강의 자료를 인쇄해오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태블릿PC로 필기를 많이 해서 신기했다”고 덧붙였다. 학생들 사이에서 꼽히는 태블릿PC의 장점 중 하나는 휴대성이다. 교과서와 노트북 두 가지의 역할을 대체해 편리하기 때문이다. 

한 씨는 “수업 중 모르는 것을 바로 찾아볼 수 있어 용이하다”고 말했다. 웹서핑이 쉽다는 특성은 학생이 수업과 관련 없는 영상을 시청하거나 게임을 할 수 있다는 문제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대학 A교수는 “학생들에게 강의 시간에 전자기기를 사용하지 말아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며 “수업과 무관한 문서를 열어두거나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어 제대로 집중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태블릿PC 영향을 받은 인쇄소 상황은 어떨까. 학생회관 지하 인쇄소를 운영하는 B 씨는 “최근 강의 자료를 인쇄하는 사람은 극소수고 있더라도 100원, 200원 매출로는 매장 유지가 어렵다”고 밝혔다. 덧붙여 “태블릿PC를 이용해 필기하는 학생들이 늘며 스캔 문의가 꽤 있었으나 스캔은 불법복제에 해당하므로 보통 취급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다른 인쇄소의 상황도 같았다. 우리대학 주변 인쇄소를 운영하는 C씨는 “주변 대학가만 봐도 폐업한 곳이 많고 제본 같은 건 10분의 1로 줄어든 상황”이라며 “매출이 줄었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고 전했다. 실제로 40년 가까이 고려대학교 앞을 지키던 인쇄소 보람문화사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10월 폐업했다. 경희대학교 인근에는 정문에서 30년 넘게 운영하던 경희문화사가 최근 폐업하면서 2곳의 인쇄소만 남았다. 대학가 주변 인쇄소는 학생들의 강의 자료 인쇄만으론 월세조차 감당할 수 없어 포스터와 팸플릿, 연구실 보고서 등 다른 수요로 매출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 종이 강의 자료와 교과서가 사라진 강의실의 모습
▲ 종이 강의 자료와 교과서가 사라진 강의실의 모습

전자기기, 장점만 존재하는 건 아냐

일각에서는 전자기기에 종이가 대체되더라도 종이가 가진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강원대학교 종이소재과학전공 유정용 교수는 첫째로 사고력을 언급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실제 해외 실험사례를 통해 태블릿PC가 사고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증명됐다. 성적이 낮은 학생에게 태블릿PC는 학습에 대한 흥미를 부여하는 효과가 있었으나 수동적인 자세로 학습에 임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반면 성적이 높은 학생에게는 심화 학습을 하거나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유 교수는 “생각하는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 눈으로 보고 소리로 얻는 자극도 중요하지만 골똘히 사고해서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현란하게 바뀌는 모니터 화면은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그저 불필요한 자극이 될 뿐이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로 환경적인 측면이다. 태블릿PC는 전기가 없으면 가동되지 않는다. 풍력에너지를 비롯한 각종 친환경에너지도 전기를 생산하나 현재로서는 적은 양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전기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만들어진다. 더불어 전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태블릿PC 소프트웨어 속 수많은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서버를 유지하는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발생한다. 이메일을 삭제하지 않고 계속 놔두면 탄소가 배출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유 교수는 “종이와 태블릿PC 제조 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태블릿PC가 더욱 친환경적이라고 하기엔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태블릿PC 사용자 증가에 따른 정보 소외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미디어패널조사가 실시한 「월평균 소득에 따른 태블릿PC 보유율 통계」에 따르면 ‘소득 50만원 이상 100만원 미만’의 응답자 중 92.9%가 태블릿PC가 ‘없다’고 응답했다. 반면 고소득에 해당하는 ‘소득 400만원 이상 500만원 미만’ 응답자가 ‘없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65.8%였다. 통계는 소득이 낮을수록 태블릿PC의 보유율이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중에 판매되는 아이패드 9세대 출고가는 44만 9천원이다. 시세를 고려해 흑백 인쇄 1장당 50원으로 계산하면 8980장의 흑백 종이를 인쇄할 수 있는 가격이다.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은 계층은 아이패드 가격이 인쇄 가격을 압도하기 때문에 정보통신의 발달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있다. 한여름 씨는 “태블릿PC가 교육받기 위한 필수품이 된다면 사기 어려운 학생들의 소외문제가 걱정된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제지업계 변화의 바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전자기기 사용자 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IT 강국이라 불리는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종이의 미래는 어떨까. 놀랍게도 종이의 생산량은 줄지 않고 증가하는 추세다. 필기와 인쇄 용도로 쓰이는 문화용지의 수요는 10년 전 사용량의 약 30%에 불과할 정도로 감소했다. 하지만 종이가 플라스틱을 대체하는 포장 용기로 사용되며 산업용지의 소비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인쇄업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전에는 대량생산에 중점을 뒀다면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에 발맞춰 특화하는 회사가 늘었다. 수요가 많은 아이돌 포토카드나 아이돌 포토북만 만드는 회사로 바뀌거나 문화용지를 취급하던 회사는 종이 포장 용기를 제작하는 회사로 재탄생한다.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종이 수요가 몰리는 곳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태블릿PC가 종이를 대체하는 움직임에 제지업 종사자들은 변화를 받아들이자는 목소리를 냈다. 인쇄소를 운영하는 B씨는 “인쇄업계 자체가 사양산업이라서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시대가 변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대학가 인쇄소가 사라지는 건 아쉬운 현상”이라며 “학생들이 많이 이용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유정용 교수는 “문명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기에 종이도 계속 변신하고 결점을 보완하도록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환경단체 환경운동연합 백나윤 활동가는 “새로운 목재 자원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종이를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은 태블릿PC를 사용하는 게 좋다”는 의견을 표했다. 종이의 전망에 대해서는 “종이 사용 문화가 없어진다기보다 태블릿PC로 대체하는 현상이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예견했다. 기술 발달과 전염병으로 인한 비대면 생활 양식의 확산이 종이를 사용하던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최수빈 기자 csb@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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