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에 대한 리뷰 SI:REVIEW

‘와~’ 술독을 여는 순간 같이 있던 친구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적당히 달콤하고 적절히 시큼한 향이 코를 찔렀기 때문이다. 일주일동안 자취방 한쪽에 모셔놨던 술이 잘 익었다는 뜻이었다. 전통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직접 자취방에서 술을 빚어보며 새로운 취미로 부상하고 있는 가양주를 리뷰해 봤다.

그 옛날 한양에는 집집마다 술이 익어갔다. 술은 된장, 간장, 김치처럼 당연히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음식으로 집안마다 고유의 제조법이 있는 요리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주세법을 통해 가양주를 금지하며 우리나라의 가양주 문화는 맥이 끊겼다. 명맥이 끊겼던 가양주가 요즘 들어 스멀스멀 취미의 영역으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지만 술을 빚는 데 있어서는 그 정도가 더하다. 조금만 잘못하더라도 잡균이 번식해 금세 술이 상하거나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완성된 술을 병에 따르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에 정성을 들여야 좋은 술을 얻을 수 있다. 막걸리를 만드는 재료는 누룩, 쌀, 물 이렇게 세 가지다. 누룩은 하루 전에 미리 햇빛에 말려 잡내를 최대한 제거한다. 쌀을 씻을 때도 씻은 물이 투명하게 될 때까지 꼼꼼하게 씻어야 한다. 
 

▲ 완성된 막걸리를 삼베 주머니에 넣어 거르고 있다.
▲ 완성된 막걸리를 삼베 주머니에 넣어 거르고 있다.

이 쌀을 8시간 정도 물에 불려 두어야 비로소 술을 만들 재료들이 준비된다. 술을 담는 과정에도 마음이 담겨야 한다. 고두밥은 밥솥보다는 찜기에 푹 쪄서 만드는 것이 더 좋다. 그 뒤 고두밥과 누룩, 물을 섞어 술덧을 만든다. 이때 고두밥이 뭉쳐 있는 부분이 없도록 고두밥과 누룩을 꼼꼼히 섞는다. 술덧을 잘 소독한 병에 담으면 술이 될 준비는 끝났다.

술덧을 병에 담고 처음 이틀은 반나절마다 한 번씩 술을 뒤섞어줬다. 이때가 술을 빚을 때 가장 재밌는 순간이다. 술병을 열 때마다 술의 향기가 바뀌기 때문이다. 첫 번째 술독을 열었을 때는 달콤한 식혜 향기가 올라왔다. 누룩곰팡이의 효소 때문에 밥의 전분이 당으로 변하고 있는 과정이다. 두 번째로 열 때는 식혜 향기와 더불어 새콤한 알코올 향기가 올라왔다. 슬슬 효모가 활동하기 시작하며 당분을 알코올로 발효하고 있다는 뜻이다. 
 

▲ 누룩을 볕에 말려 잡내를 제거하고 있다.
▲ 누룩을 볕에 말려 잡내를 제거하고 있다.

본격적인 발효 전 마지막으로 뚜껑을 열었을 때는 제법 막걸리다운 향기가 올라왔다. 술을 섞는 과정을 마치면 이제 남은 건 온전히 시간의 몫이다. 남은 5일간은 인내심을 가지고 뚜껑을 꼭 닫고 그대로 둔다. 술이 잘 익어가는지 궁금하다고 뚜껑을 자주 열다간 산소가 들어가 술이 쉴 수 있다.

5일이 지나고 드디어 술을 걸렀다. 막 걸러진 술을 맛본 친구는 감탄을 연발했다. 시중의 막걸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하고 독한 술이었기 때문이다. 시중 막걸리는 물을 타서 도수를 낮추지만, 직접 막걸리를 만들면 술 그대로의 진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거기에 살아있는 효모가 만들어 둔 다양한 향들이 곡향과 섞여 깊고 감미로운 향을 내고 있었다. 술을 짜고 남은 술지게미도 버릴 수 없다. 계피, 생강, 대추 등과 같이 끓여 모주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술을 못하는 친구도 같이 즐길 수 있었다.

자신이 정성을 들여 빚은 술만큼 맛있는 술은 없다. 추가로 넣는 재료, 술을 담는 방법 등에 따라 수많은 종류의 술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같은 술이더라도 위에 뜬 맑은 술만 마시면 청주, 술지게미까지 같이 짜내면 탁주, 한번 증류시키면 소주가 된다. 좋은 취미로 손색이 없는 가양주 빚기, 다음 주 주말엔 직접 빚은 술을 마셔보는 건 어떨까.


최강록 객원기자 rkdfhr123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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