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네 요리조리

다섯 번째로 돌아볼 동네는 종로구 창신동으로 서울의 중심부에 있음에도 구도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곳이다. 동대문 패션타운의 배후지로서 오래도록 기능해온 이곳에는 여전히 약 1천 개 이상의 봉제공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종로구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창신동은 조선시대 지명인 인창방과 숭신방의 가운데 글자를 각각 따와 지어진 이름이다. 예술가 백남준이 2살부터 18살까지 살았으며, 화가 박수근의 작업터가 있어 그림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다. 한국 최초의 영화 <아리랑>을 제작한 나운규의 ‘나운규 프로덕션’과 가수 김광석이 살던 집도 자리하고 있어 문화예술인들의 거주지로 꼽히기도 한다. 옛 서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창신동에서 기자들은 △돌산마을 조망점 △도넛 정수 △뭐든지 아트하우스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문구완구시장 △네팔음식거리를 돌아봤다.
 

조망점에서 바라본 창신동. 채석장과 빽빽이 들어선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망점에서 바라본 창신동. 채석장과 빽빽이 들어선 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찾은 ‘돌산마을 조망점’에선 빽빽한 다세대 주택과 더불어 과거 낙산 채석장으로 쓰였던 절개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조선은행과 경성역, 조선총독부는 모두 석조건물이었는데, 이때 쓰인 것이 창신동 낙산의 화강암이다. 한국전쟁을 거친 뒤 거주민이 급격히 늘어나며 주거 공간이 부족했던 탓에 한양도성 주변과 돌산 경사지에 판잣집이 물밀듯 들어서며 지금의 모습을 이뤘다.
 

도넛 정수에서 시킨 개성 도넛과 타락 도넛
도넛 정수에서 시킨 개성 도넛과 타락 도넛

가파른 경사를 따라 내려가다 보니 맛있는 도넛 사진이 있는 포스터 옆에 ‘도넛정수 가는 길’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화살표를 따라 골목 안을 걸어 들어가다 보면 마치 단독주택 가정집 같은 입구가 보인다. 1층 카운터가 있는 곳은 좁지만 2층으로 올라가면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하며 맛있는 도넛과 음료를 먹을 수 있다. 보기 좋게 진열된 8종류의 도넛 중 우유 크림이 들어간 타락 도넛을 먼저 시켰다. 다른 도넛을 더 주문할까 고민하던 찰나 SNS에 게시글을 올리면 기본 도넛인 개성 도넛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가 있어 두 가지 도넛을 맛볼 수 있었다. 타락 도넛은 크림이 가득 차서 달콤했고 개성 도넛은 담백해서 두 맛이 조화로웠다.
 

뭐든지 아트하우스의 뭐든지 책방에는 동화책을 비롯한 다양한 책이 있다.
뭐든지 아트하우스의 뭐든지 책방에는 동화책을 비롯한 다양한 책이 있다.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면 ‘뭐든지 아트하우스’가 나온다. 뭐든지 아트하우스는 문화예술사회적기업 아트브릿지가 만든 공간으로 소극장, 책방과 카페, 공유 오피스, 사회주택으로 구성돼있다. 창신동의 문화공간을 키우고 주민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 뭐든지 책방 내부에 들어서니 마침 북토크를 준비 중이었다. 작지만 아늑한 책방에는 기자들이 어렸을 때 재미있게 읽었던 그림책과 전공 수업에서 접했던 도시 계획과 관련된 책들이 있었다. 책방과 카페를 제외하고 외부인에게 상시 개방을 하고 있진 않지만, 지하에 있는 소극장에서 종종 공연이 올라간다고 한다.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뮤지컬 ‘창신, 공장의 불빛’이 진행된다고 하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양장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기획전시실
양장점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기획전시실

아트하우스에서 나와 봉제거리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옷을 잔뜩 실은 오토바이가 시도 때도 없이 골목길을 드나든다. 한 벌의 옷을 만들려면 부자재를 옮기는 오토바이가 15번은 오가야 할 만큼 봉제 제조에 딸린 산업들이 많다고 한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미싱 소리와 ‘구찌’, ‘시야기’ 등 간판에 적힌 뜻 모를 봉제 용어들이 거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거리 안쪽에서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을 만나볼 수 있다. 이음피움은 실과 바늘로 천을 이어 옷을 짓듯 서로를 잇는다는 의미와 꽃이 피듯 소통과 공감이 피어난다는 뜻이다.

지하 1층은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기념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있다. 기자들은 컴퓨터 자수기를 통한 이니셜 새기기를 체험했다. 컴퓨터 프로그램에 이름을 입력한 후 봉제 기계로 파일을 보내자 순식간에 흰 손수건에 이름 석 자가 수놓아졌다. 2층 상설전시실에서는 도슨트의 설명을 통해 우리나라 봉제산업의 역사와 창신동 봉제마을의 형성 과정 등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전시실 안쪽 계단을 통해 3층에 오르자 마치 1980년대 이전의 고급스러운 양장점에 온 것처럼 그 시절 느낌을 살린 기획전시실을 만나볼 수 있었다. 3층 테라스로 나가 보이는 풍경에선 패션의 중심지인 동대문과 배후지인 창신동 경계가 명확히 드러난다. 빽빽한 쪽방촌 구석구석에는 골무 모양을 본떠 만든 산마루 놀이터, 실이 바늘을 관통하는 듯한 모양의 전봇대 등 창신동의 특색을 살린 구조물들이 눈에 띄었다.
 

알록달록한 장남감과 문구 등을 만나볼 수 있는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
알록달록한 장남감과 문구 등을 만나볼 수 있는 창신동 문구완구 시장

봉제역사관에서 나와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걷다가 드디어 평지가 시작된다 싶으면 거기가 바로 동대문역이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조금 걷다 보면 창신동 문구완구시장이 나온다. 창신동 문구완구시장은 국내 최대의 문구·완구 시장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오후 6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서둘러 둘러봤다. 어릴 적 많이 보던 액체 괴물이나 스티커, 요즘 유행하는 ‘말랑이’가 한데 모여 있었다. 사장님이 “장사 끝났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아마 자리를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윤기가 흘러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탄두리 치킨과 양고기 커리, 난
윤기가 흘러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탄두리 치킨과 양고기 커리, 난

온종일 걷다 보니 슬슬 배가 고파져서 네팔음식거리로 들어섰다. ‘다르샨나마스테’는 동대문역 4번 출구 바로 앞 네팔음식거리 초입에 위치한 인도네팔식당이다. 푸른 조명 아래 코끼리 동상이 곳곳에 놓여있는 내부로 들어서자 마치 인도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메뉴판을 펼치자 낯선 이름의 음식들이 가득해 무엇을 시켜야 할지 고민이 됐다. 다행히도 인도 음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세트 메뉴가 있어 그걸 시켰다. 양과 맛도 훌륭한데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는 즐거움이 더해져 매우 만족스러웠다. 화려한 서울의 전경이 식상해질 즈음, 그늘에서 도심을 빛내주는 창신동을 방문해 옛 서울의 모습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절개지: 도로를 내거나 시설물을 건축하기 위하여 산을 깎아 놓아 비탈진 곳


이주현 기자 xuhyxxn@uos.ac.kr
채효림 기자 chrim7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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