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연 사회부장
정시연 사회부장

어떤 장르든 ‘인생작’이 있다는 건 행운임을 느끼는 요즘이다. 기자는 인생작으로 여기는 콘텐츠가 적은 편인데, 책 부분에서는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최후의 라이오니』를 인생작으로 내세울 수 있다.  

김 작가의 대표작인 단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인류의 거주 범위가 지구에서 전 은하로 넓어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은하에서 은하로, 행성에서 행성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빛의 속도만큼 빠른 이동수단을 타야 한다. 다만 우주에서도 현재와 동일하게 적용되는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논리는 행성별로 이동 빈도와 속도에 차등을 둔다. 

주인공이 가려는 행성으로의 이동은 아예 중단됐다. 주인공은 이에 대해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같은 우주라는 개념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는 인류는 같은 우주 내에서 심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과 물리적으로 가까워질 수 없다. 그렇게 매번 어딘가에 홀로 남겨지는 사람들이 생겨난다면 인류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갈 뿐이다. 때문에 주인공은 실제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목적지로 향한다. 비록 도달할 수는 없더라도 가야 할 곳과 만나야 할 사람을 정확히 알고 있는 그는 우주 어딘가에서 자신의 장소에 도착할 수도 있을 테다. 

김초엽 작가의 장편 『지구 끝의 온실』도 큰 틀에서 비슷한 흐름으로 전개된다. ‘더스트’로 불리는 먼지 폭풍에 의해 인류가 멸종을 겪은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생존을 위해 배타적인 행동을 자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프림 빌리지’라는 마을이 생겨난다. 무리에서 내쫓긴 여성과 아이로 이뤄진 마을은 식물을 변형한 ‘모스바나’를 해독제로 이용해 더스트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외압에 의해 마을이 해체되는 순간에도 그들은 모스바나를 각자가 가는 길에 뿌리자는 마지막 약속을 한다. 모두가 약속을 지켰고 이는 인류 재건에 큰 도움이 됐다. “버려진 이들이 왜 세계를 구하는 일을 이야기할까”로 요약되는 『지구 끝의 온실』은 각자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 지킨 작은 약속이 커다란 세계를 되살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기자는 인간 관계와 지구 환경 등에 무관심한 사람이었으나 최근 위와 같은 SF 소설을 접하고 인류애를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김초엽 작가를 포함한 SF 작가들의 글을 읽다보면 자신이 광활한 우주 속 먼지밖에 안 되는 존재같이 느껴지곤 한다. 그러나 작가들은 독자에게 우주와 동시에 인류애와 사랑을 말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는 온 세상만큼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말이다.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 속 작고 작은 존재인 우리가, 특별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자신과 곁에 있는 타인이라는 것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각종 사건들이 발생하며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에도 사람들이 유일하고 독특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 나가기를 바란다. 


정시연 기자 jsy434438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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