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정(도사 19)

이 글에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에올)>의 내용이 포함돼 있으니 참고해주길 바란다.

필자는 종종 강한 무력감과 분노에 시달린다. 자신의 일터에서 살해당한 여성노동자, 동료가 죽어도 천으로 덮어둔 채 일해야 하는 노동자, 서울 한복판에서 또래들이 목숨을 잃은 참사를 마주할 때 그렇다. ‘세상이 바뀔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다보면 무력해진다. 이런 사회적 재난이나 사건 이후 갈라져 싸우는 모습을 볼 때면 이 세상이 혐오로 가득 찬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사회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는 모두 무너지고 울컥 화가 난다. 그렇게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매다 한 영화를 보고 큰 위로를 받았다. 쉽지 않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분과 이 위로를 나누고 싶어졌다.

에에올은 마블 시리즈에서 사용해 유명해진 ‘멀티버스(다중우주론)’ 개념을 사용한다. 다양한 크고 작은 선택들이 쌓여 각 세계의 에블린들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남편 웨이몬드와 빨래방을 운영하며 딸 조이를 키워 낸 에블린은 우주 최악의 에블린이다. 다른 우주인 ‘알파버스’에서 온 웨이먼드는 악인 ‘조부 투파키’에 맞서 우주를 구해달라며 최악의 에블린을 찾아와 이렇게 말한다. 최악의 에블린이니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며 말이다. 세무조사를 받다 갑자기 우주를 구하게 된 에블린은 ‘버스 점프’를 하며 다른 세계에 있는 에블린들의 능력을 이용한다. 피자집 간판을 잘 돌리는 에블린, 유명배우가 돼 레드카펫을 밟는 에블린, 쿵푸 고수가 된 에블린, 소시지 손을 가진 세계의 에블린 등 여러 능력을 빌려 악과 맞서 싸운다.

그러나 에블린은 결코 우주의 악인 조부 투파키를 없앨 수 없다. 조부 투파키는 에블린의 하나뿐인 딸 조이였기 때문이다. 에블린의 세계에 있던 조이와는 다르다 하더라도 엄마인 에블린은 조이를 죽일 수 없다. 당신이라면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가겠는가. 이 혼란 속에서 에블린의 무능력하고 답답한 남편 웨이몬드는 말한다. “우리 그만 싸우면 안 될까?”라고. 그러면서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우리 모두 다정해야 한다는 거야. 다정함을 보여줘. 특히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야”라고 덧붙인다. 이후 에블린은 “나도 당신처럼 싸우는 법을 배우기로 했어”라고 말하며 웨이몬드에게서 배운 다정함으로 세계를 구한다. 

너무 많은 우주를 유영하며 허무에 빠진 조부 투파키에게 에블린은 말한다. 넓은 우주에서 상식이 통하는 건 한줌의 시간뿐이더라도 그 한줌을 소중히 하겠다고 말이다. 사실 이전까지 에블린은 웨이몬드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다정함의 힘은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이 사회를 지탱하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건 결국 다정함이다. 그러니 다시 한 번 바보 같은 믿음에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유한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그 한줌은 작지 않은 시간이지 않을까. 어쩌면 에블린이 우주를 구했듯, 다정함이 우리 세상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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