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이하 노조)’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빨간 띠를 두른 채 확성기를 들고 소리치는 격한 노동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존의 틀에서 탈피해 새로운 상을 제시하는 일명 ‘MZ노조’의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 9월 23일에는 MZ노조와 고용노동부 장관과의 간담회가 열리기도 했다. △LG전자 △LIG넥스원 △금호타이어 △네이버 △서울교통공사 등 다섯 기업의 청년 노조 위원장들이 참석했다. 그들은 각 사업장의 애로사항이나 노동구조에 있어 개선돼야 할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이들이 지향하는 목표와 사연에 대해 들어봤다.

출범 계기는 아니나 다를까 ‘공정’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기성 노조도 사측과 교섭하는 데 있어 난항을 겪는다. 인원이 적은 신생 노조는 사측과 대면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Z세대가 기성 노조에 가입하지 않고 신생 노조라는 가시밭길을 택한 계기는 다름 아닌 공정이었다. 서울교통공사 ALL바른노동조합은 사측의 불합리한 채용에 반발해 지난해 8월 새롭게 출범했다. ALL바른노동조합 송시영 위원장은 “공사의 적자 폭이 큰 상황에서 사기업 정규직인 콜센터 직원을 직고용하고 기존 공채직원을 구조조정하는 불공정한 상황이 출범 원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운영정상화나 처우개선보다 시위 참여와 정치 성향을 강요하는 기성 노조에 회의를 느껴 새로운 노조를 창설했다”고 설명했다.

임금체계에 대한 불공정에 반감을 갖고 출범한 노조도 있다.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동조합 유준환 위원장은 “지난 2020년 소속 부서의 영업이익이 약 8천억원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측에선 목표에 미달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액수의 성과급을 지급해 사원들의 불만이 컸다”고 전했다. 불투명한 성과급 지급 기준 외에도 성희롱이나 사내괴롭힘에 무심한 사측 등 사무직 내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다양했다. 그러나 10년간 자리를 지킨 기성 노조는 생산직 중심이었기에 사무직은 불만을 표할 창구가 부재했다. 이러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MZ세대를 주축으로 사무직 노조가 출범했다.

이게 시위라고? 편견 깨는 MZ노조

우리대학에서 <노사관계론> 과목을 가르치는 박진환 교수는 MZ노조의 특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경영상 비합리적인 부분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회사의 생산성을 높여줄 제3의 물결”이라고 평했다. 임금인상, 처우개선 등 단순한 요구를 반복하거나 정치성을 띠기도 하는 기성 노조보다 대중에게 더 설득력 있게 비춰질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실제로 이들은 다같이 모여 구호를 외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쟁의행위를 시도한다. 지난해 6월 ALL바른노동조합은 2030세대를 대상으로 공정문화제를 개최함으로써 첫 시위를 전개했다. 송시영 위원장은 “대부분이 청년세대인 취준생이 생각하는 공정과 상식은 무엇인지 의견을 나누고 서울교통공사의 상황을 비롯해 불공정한 채용 이슈에 대해 논하며 본사의 불합리함을 알렸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공정에 대한 논의 후에는 노조에 무지하거나 반감을 갖는 청년세대에게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취준생을 대상으로 취업 컨설팅을 진행했다”고 이야기했다.

적은 인원수와 부족한 단결성이 한계점

한편 이들에게도 한계점은 존재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 복수노조가 있을 시 일차적으로 과반수노조에 교섭권을 부여하는 교섭창구 단일화를 규정한다. 기성 노조에 비해 짧은 역사와 적은 조합원 수는 회사와의 직접적인 교섭을 가로막는 장벽이다. 유준환 위원장은 “노조의 가장 큰 존재 의미는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건데 제일 인원수가 많은 노조가 대표로 교섭을 들어가 자연스럽게 나머지 노조들은 소외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명목상 하나의 노조가 나머지를 대표한다고 해도 제2노조, 제3노조의 요구안이 사측에 전달됐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교섭과정에서 혼란을 막기 위한 취지는 이해하나 소수 노조의 의견도 사측에 실질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제도의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전했다.

개인단위로 행동하고 자율성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 역시 쟁의를 어렵게 하는 요소다. 송시영 위원장은 “다양성이 존중되는 세대다 보니 한 목소리를 내는 게 쉽지 않다”며 “기성세대에 비해 단결성이 부족한 것은 단점”이라고 답했다.

한계 타파하려면 기성 노조와도 소통해야

박진환 교수는 “고려 사람이 세운 게 조선이고 조선 사람이 세운 게 대한제국이라는 점을 되새기며 ‘기성 노조와 우리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성 노조는 타협의 대상이지 거부하고 단절할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박 교수는 “그들을 적대시하는 것은 전체적인 노조의 파이에서 스스로의 입지를 작게 만드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기성 노조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 새롭고 합리적인 주장을 얹어 함께 성숙한 노사 문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성 노조와 신생 노조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박 교수는 “이때 노조 간 서로의 의견을 들어줄 일은 만무하기 때문에 절차적으로 노사협의회 제도를 이용하거나 노조 가입률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동종 산업 종사자들이 모여 형성한 산업별 노조에 가입해 단체 단결권 행사에 있어 도움을 받는 것도 방법”이라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박 교수는 “MZ세대가 영원히 신세대가 아니다”라며 “향후 회사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이들의 의견을 듣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 사측과 기성 노조 모두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채효림 기자 chrim77@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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