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세대, 이화여대 등 캠퍼스 내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이나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일이 잦다. 대학생이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지원군 역할을 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학내 시위를 둘러싸고 학생과 노동자 사이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학생의 학습권과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이 충돌하는 모습이다. 현장에서 시위 중인 노동자들의 입장과 학내 시위를 경험한 학생들의 입장을 들어보고 앞으로 이들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에 대해 알아봤다. 
 

▲ 덕성여대에서 청소노동자와 연대하는 사람들과 파업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 덕성여대에서 청소노동자와 연대하는 사람들과 파업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심화되는 노동자와 학생들의 갈등

지난달 31일 방문한 덕성여대에서는 청소노동자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이 집회를 벌이고 있었다.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이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소속 13개 대학 내 노동자들은 지난 3월부터 △시급 400원 인상 △휴게실 개선 △샤워실 설치 등을 요구했다. 연세대, 고려대 등 덕성여대를 제외한 나머지 12개 대학은 노동자와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덕성여대 측에서 청소노동자의 임금 동결을 고수하자 청소노동자들은 지난 9월부터 철야 농성에 돌입하고 파업에 나섰다. 

덕성여대 캠퍼스 게시판에는 학교를 규탄하며 청소노동자와 연대하는 대자보와 이들의 파업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동시에 붙어있었다. 덕성여대 측에서 입장을 굽히지 않고 버티는 사이 학생들의 불만은 대학 당국이 아닌 ‘약자’인 청소노동자에게 향했다. ‘학생 볼모 하청파업 반대한다 철회하라’, ‘학생 임금 9160원, 청소 근로자 임금 9390원’ 등 청소노동자의 임금인상에 반발하는 문구가 보였다. 청소노동자의 호소가 담긴 대자보에는 이들을 조롱하는 ‘지겹다’, ‘억지시위’, ‘인면수심’이라고 쓰인 메모지도 붙어있었다. 시위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작성한 대자보에서는 △학교에서는 최저시급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어 임금인상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 △시위가 정문의 미관을 해쳐 공공시설을 훼손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 △시위 과정에서 차별적 표현이 담긴 발언이 나왔다는 점 △시위가 객관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호소로 선동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반발을 표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학교에 대항한 시위가 학생과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윤경숙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덕성여대분회장은 “불편을 겪는 학생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며 “힘없는 노동자가 학교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 제한적이라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파업을 벌이게 된 배경을 먼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 덕성여대 캠퍼스 내에는 청소노동자와 연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있다.
▲ 덕성여대 캠퍼스 내에는 청소노동자와 연대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있다.

갈등 속 외면당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

캠퍼스 안팎에서 벌어지는 집회를 두고 학생과 노동자가 갈등을 빚은 대학은 덕성여대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 연세대에서는 재학생 3명이 학습권 침해로 인한 스트레스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을 근거로 집회 참가자에 대해 형사 고소와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언론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학생들의 조치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재학생의 고소로 언론의 관심을 받게 된 사건은 ‘학생’ 대 ‘청소노동자’의 단순 대결 구도로 소비돼 노동자 처우개선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윤 분회장은 이런 논쟁이 시위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노동강도나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노동자의 목소리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며 “노동강도는 점점 강화되고 있기에 임금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는 하루에 큰 쓰레기 봉지 4개 이상 분량을 치우는 것과 더불어 인당 평균 약 10개의 강의실과 약 20개의 변기를 맡아 청소한다. 윤 분회장은 “400원 시급 인상 요구는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기 위해 정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지부가 13개 사업장과 집단교섭을 벌이고 있어 덕성여대분회가 합의한 후에야 나머지 대학도 임금인상 소급분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임금인상과 함께 휴게실 개선과 샤워실 설치 등도 요구하고 있다. 덕성여대 방문 당시 노동자들의 휴게실은 계단 아래 지하에 있었고 환기를 시킬 창문 또한 없었다. 더불어 교내 학생과 교직원을 위한 샤워실이 여러 개 있었으나 이 중 청소노동자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시위에 항의하는 학생이 있는 한편 연대하는 학생도 있었다. 연세대, 한국외대, 고려대 일부 재학생은 노동자를 지지하는 문구를 덕성여대 정문 앞에 붙여 응원을 보탰다. 윤 분회장은 “서울지역대학 인권연합동아리에서 지지의 목소리를 보내거나 교내 일부 학생들이 돈을 모아 마사지기를 선물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멈추고 학생들이 학교 측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면 시위를 빨리 끝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덧붙여 “10년 이상 학내에서 일한 청소노동자는 외부인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의 일부”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사회의 소통이 필요한 문제

캠퍼스 내 시위를 경험한 적이 있는 이화여대 재학생 김아현(24) 씨는 “교내 노동자의 시위로 발생한 소음에 불편함을 겪은 적이 있지만 불쾌함보다는 안타까운 감정이 컸다”며 “지속적인 평화시위가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면 과격한 방식으로라도 목소리를 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반면 고려대학교 재학생 이중원(22) 씨는 “사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으니 노동계에서도 시위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씨는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면 변화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학생이 시위를 바라보는 시각은 변화하고 있다. 이 씨와 같이 기존 노조가 시끄럽고 과격하다는 인식이 늘어나는 추세다.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취업난과 경제 불황 속 대학생들이 경쟁 시장에 몰려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방식의 시위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젊은 세대가 개인적 이기주의에 따라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줄 수 있는 장기적인 관점보다는 단기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행동 패턴에만 몰두해 생긴 결과”라고 분석했다. 

고려대학교 노동대학원 이종선 교수는 “학생들과 융합하고 공감을 이끌며 시위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은 소통뿐”이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모르기 때문에 소모적인 갈등 양상이 발생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소통을 통해 학내 사건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문제의 본질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학생의 학습권과 노동자의 단체행동권 중 무엇이 더 우선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전개됐다. 이종선 교수는 “두 권리 모두 중요한 문제지만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중 하나”라며 “약자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같은 문제에 대해 이병훈 교수는 “학습권과 단체행동권 모두 중요하므로 학생과 노조가 대립할 이유가 없다”며 “학교 측에서 문제 해결을 지연시켜 두 가치가 충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시위의 본질이 흐려지지 않도록 학교 당국이 빠른 문제 해결을 위해 힘써야 한다는 점도 언급했다. 

그는 “지나친 개인 이익 추구보다는 사회 전체적인 합리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는 아직 민주적인 절차가 부족하므로 사회적 대화를 통해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접어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가연 수습기자 sn0wmarten@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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