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상 학술문화부장
최윤상 학술문화부장

독설도 밉지 않은 매력. 배우 이서진을 수식하는 말이다. 우리 집은 드라마보다는 예능을 자주 봐 지난 2013년 [꽃보다 할배]에서 ‘예능인으로’ 이서진을 처음 알게 됐다. [꽃보다 할배]를 봤으면 알듯이 나영석 PD는 소녀시대 써니와 유럽여행을 간다는 거짓말로 이서진을 프로그램에 섭외했다. 출국 당일 공항에서 하늘 같은 대선배님 4명과 함께 여행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지만 말이다. 막상 유럽에 도착하니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어 결국 이서진은 통역부터 관광지 예약까지 여행지에서 가이드와 짐꾼 역할을 맡게 된다. 그의 활약 덕에 ‘할배’들은 그 험난한 상황에서도 낙오되는 사람 없이 성공적으로 여행을 마쳤다.

화가 나고 짜증이 날 상황에서도 항상 여유를 갖고 대처하고 어른에게 깍듯한 이서진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짜증과 화를 안으로 숨기지 않았다. 모든 일정이 마무리되고 대선배들이 휴식을 취해 자신의 역할이 끝났거나 홀로 인터뷰 영상을 찍을 때는 누구보다 짜증을 잘 냈다. 특히 [꽃보다 할배]를 기획한 나영석 PD에게 말이다. 그렇지만 이서진의 짜증은 묘하게 짜증 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진솔한 의견을 전달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의 흥행을 걱정하며 제작진이 고생한다고 툭 말을 던졌다. 물론 짜증을 섞어서 말이다. 이후 이서진은 나영석 PD의 페르소나로 그가 기획한 프로그램들에 출연하며 제2의 전성기를 연기가 아닌 예능에서 열게 된다. 

이서진 배우를 볼 때마다 ‘건강한 짜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국어사전에서 짜증은 ‘마음에 꼭 맞지 아니하여 발칵 역정을 내는 짓’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짜증은 자신에 대한 비관이나 남을 향한 핀잔처럼 부정적인 행위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서진의 짜증은 다르다. 현재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한 다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또 남의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을 전한다. 그에게 짜증은 ‘자기 비하’와 ‘분노’가 아닌 ‘솔직함’과 ‘관심’의 표현으로 상호 발전적인 관계로 나아가는 수단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보면 ‘불건강하게’ 짜증 내거나 ‘전혀’ 짜증을 내지 않는 사람들로 양극화되고 있다고 느낀다. 전자는 감정적으로 자신이나 타인을 공격해 발전과 개선이 아닌 우울과 관계 악화로 이어진다. 전자 못지않게 후자는 짜증으로 정당하게 문제점을 제기하지 못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남에게 종속돼 살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기자 스스로는 후자 그 자체의 인간 유형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동료 기자들에게 신문사 업무를 볼 때 짜증이 늘었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얼마 전부터 꼭 필요한 상황에서는 꼭 짜증을 내자는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 같아 뿌듯하다. 짜증을 내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니 짜증을 ‘건강하게’ 낼 수 있게 노력하겠다, ‘독설도 밉지 않은 매력’의 이서진처럼.


최윤상 학술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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