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 서재 - 중국어문화학과 이승훈 교수

“자기 과시 욕망이 과연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궁금하다면”

『장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장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옹이가 많고 구불구불한 고목을 보고 말했다. “이 나무는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가다가 주막에서 주인이 잘 울지 못하는 닭을 쓸모가 없다고 목을 비트는 것을 보았다. 곧게 자란 멋진 나무들은 집을 짓는 재료로 사용돼 단명했지만, 쓸모없는 나무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천년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 잘 울지 못하는 닭은 쓸모가 없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삼계탕의 재료가 돼버렸다. 무용지물(無用之物)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쓸모없는 것에 주목한 사람이 또 있다.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유한계급론(The theory of the leisure class)』에서 ‘쓸모없는 것’에 몰두하는 사람들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문명의 초기에 우월적인 지위에 있던 지배자들은 일하지 않았다. 약탈적 문화가 지배하던 시절에 노동이란 용맹함이 부족한 허약함이나 열등함의 표시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한가롭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유한계급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아니라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것을 과시했다. 그들의 세련된 생활습관과 교양은 생산적인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어야 했다. 

인류 고대문명의 호화스러운 성전이나 거대 건축물도 이런 과시적인 낭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과도한 노동력을 투입하면서도 아무런 실용적인 가치를 갖지 않는 비효율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외딴 사막에 우뚝 솟아 자신의 권위를 보였다. 산악 지형이 많은 고대 중국에서는 높은 건물을 짓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유한계급의 낭비를 과시했다. 평범한 도자기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사용 그릇을 옥을 갈거나 청동기를 녹여 제조했다. 옥을 가공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고, 청동기를 채굴하고 주조하는 데 대규모 노동력이 동원됐다. 실용성과는 무관한 과시적 낭비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고대문명의 아름다운 예술품들은 그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지를 경쟁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여가와 낭비는 명예로운 것이었고, 또 비천한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높은 신분의 필수적 요소였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재화의 생산이 늘어나고 노동의 효율적인 배분이 가능해지면서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가보다는 과시적 소비가 더 효율적인 수단이 된다. 

‘현대 사회의 사람들은 신체적 안락에 필요한 것 이상의 소비를 한다’, ‘이것은 그들이 일부러 비싼 상품을 소비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소비된 제품의 수량과 등급에 있어 품위의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습적으로 소비되는 많은 물품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거의 낭비적이고 명예를 의식한 것들이 많다.’ 

100년 전 베블런의 이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명품 소비에 열광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이런 과시적 소비의 연장에 있다. 쓸모없는 무용지물은 누군가에는 시간이 남아돌고 돈이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그런데 비극은 다른 곳에 있다. 실제로는 노동해야만 하는 사람들마저 여유로운 사람들의 과시적 소비를 모방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받은 월급으로 구매한 명품은 유한계급의 쓸모없는 것과 같을 수 없다. 목재로 가치가 없었기에 오랫동안 수명을 유지할 수 있던 고목의 우아한 쓸모없음을 흉내 내다 오히려 가장 먼저 죽어버린 주막의 쓸모없는 닭의 운명을 대비해서 보여준 이천 년 전 장자의 이야기 역시 여전히 유효하다.


제목| 유한계급론
저자| 소스타인 베블런
출판| 문예, 2019
중앙도서관 청구기호| 332.6베221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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