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원(경영 21)

바쁜 나날을 보냈다. 눈뜨면 학교에 가고, 일을 한 뒤, 집에 돌아오면 게임을 하다가 어느새 잠들고 다시 학교에 가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4일을 학교에 등교하고 3일은 출근하는 고정된 일주일의 스케줄이 마냥 싫은 건 아니었다. 반복되고 예측 가능한 일상은 지루하지만 안정감을 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안정된 생활이 알게 모르게 답답하고 견딜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좋아하던 게임을 해도 지겹고 내일을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부터 든다. 즐겁지 않은 일상이 계속되니 스트레스가 쌓이는 게 느껴졌다. 얼마 전 월급이 입금되는 날에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을 했는데 나를 위한 소비를 해야겠다”는 보상심리에 사고 싶은 것을 마음껏 사기 시작했다. 그렇게 3일 동안 나를 위한 소비를 마구잡이로 했다. 고생한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다시 힘을 내기 위해 돈을 썼다. 

그러나 돈을 써서 나를 위로해도, 가슴 속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았다. 분명 옛날에는 사고 싶은 것을 사면 기분이 좋아지며 다시 힘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이번에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결국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라며 고민을 토로했다.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던 친구는 뜬금없이 “단풍은 구경했어?”라고 물어왔다. 나는 그제서야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길가에 단풍나무와 은행나무가 그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 가을이 온 걸까. 날이 덥다며 동기들과 툴툴거린 게 얼마 전 같은데 어느새 낙엽이 지고 겨울이 코 앞에 있었다. 단풍은 고사하고, 어느새 11월이라는 것도 몰랐던 나는 “단풍을 구경하지 않았다”는 대답을 전했다. 

이후 친구는 제철 과일은 챙겨 먹었는지, 친구를 만나서 수다는 떨었는지, 노래방에 갔는지 등을 계속 질문했고 나는 대부분 아니라는 대답을 했다. 친구는 “네가 바빠서 자기자신을 제대로 돌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아”라며 “제대로 너의 상태를 살피고 휴식을 취해야지”라고 우려했다. 심리학 강의에서 들었던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계절감을 잘 느낀다’는 말이 생각났다. 가을이 온 지도 모른 채 반팔에 외투만 걸치고 다녔던 나는 그제야 내가 지쳐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이후 풍경을 찍기 위해 밖으로 산책을 나갔다. 출퇴근 길에 보이는 은행나무와 단풍나무를 보며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제철인 군고구마와 감을 사먹고, 규칙적으로 식사했다. 부모님께 오랜만에 전화로 안부를 물었고 동기를 만나 가을이 와서 좋다며 소리내 웃었다. 혼자 있을 때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자 답답함이 가시고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기계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일상을 하나하나 복구하고 자신을 돌볼 때마다 새삼 스스로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깨달았다. 이번 일은 나를 돌보고 아낀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돌아보게 해줬다. 힘들고 지칠 때, 자극을 주는 대신 왜 힘들었는지 제대로 마주하고 심신에 휴식을 취해야 다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가을이 끝나가고 겨울이 다가온다. 또 다시 지친 나는, 내가 겨울을 얼마나 즐기고 느꼈는지를 통해 내 마음이 건강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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