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네 요리조리

여섯 번째로 돌아볼 동네인 영등포구 문래동은 섬유산업과 깊이 연관된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 문래동은 군소 방적공장이 들어오며 인구가 증가하자 경성부에 편입됐다. 일본인들에게 불리던 명칭인 실이 있는 동네를 의미하는 유실동과 실을 뽑는 마을을 의미하는 사옥정으로 불리다가 1946년 사옥동으로 통일됐다. 그러다 방적기계 ‘물레’를 개발한 문익점의 아들 ‘문래’와 물레 간 발음의 유사성을 살려 1952년 지금의 문래동으로 다시 바뀌었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오랜 세월을 간직한 문래동에서 △문래동, 멘 △문래철강골목 △문래창작촌 △강남 빠우 △러스트 베이커리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체험관을 차례로 돌아봤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동네라 그런지 주변에 일식당이 많았다. 그중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와 쭉 걷다 보면 보이는 ‘문래동, 멘’을 선택해 들어갔다. 대표 메뉴인 카라쿠치 돈코츠 라멘과 멘마제를 주문했다. 일반적인 마제소바와 달리 매콤했던 멘마제는 연신 감탄을 내뱉게 하는 맛이었다.
 

없던 입맛도 돌게 하는 멘마제와 카라쿠치 돈코츠 라멘, 애플망고 하이볼
없던 입맛도 돌게 하는 멘마제와 카라쿠치 돈코츠 라멘, 애플망고 하이볼

배를 채우고 본격적으로 문래동을 탐방했다. ‘문래창작촌’를 목적지로 설정하고 지도를 따라 걸어 도착하니 창작과 관련된 가게보다 실제 작업 중인 철공소가 많았다. 알고 보니 도착한 곳은 문래창작촌 건너편에 있는 ‘문래철강단지’였다. 1980년대 이전까지 문래철강단지는 우리나라 철강산업과 함께 국가 주도하에 번성했다. 그러나 1978년 「도심 부적격 시설 외곽 이전 계획」에 따른 1980년대 꾸준한 철거 압박으로 점차 쇠퇴했다. 더불어 주거 단지 형성과 저렴한 철강 제품의 수입, 청년 유출로 더욱 쇠락했다. 
 

세월을 보여주듯 철공소들이 줄지어 있다.
세월을 보여주듯 철공소들이 줄지어 있다.

결국 2001년 영등포 대규모 철강유통판매조합이 사라져 문래동에는 중소 철공소만이 남게 됐다. 일요일에 방문해 철강골목의 철공소 대부분은 문을 닫았지만 그 중 몇몇은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부식된 철공소 건물과 간판에서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쇠를 재단해 용접하는 위험한 일을 하는 곳임에도 작업환경은 너무나 열악했다. 불빛이 들어오지 않는 공장이 대부분이었고 작업자들은 위험한 물건에 쉽게 노출돼 있었다.

어두컴컴한 철강골목을 지나 과거 철공소 자리에 약 400명의 작가와 약 200개의 작업소가 모여 형성한 ‘문래창작촌’으로 이동했다. 문래동 우체국 옆 골목에는 ‘갤러리문래 골목 숲길’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예술공유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곳은 지난 2014년부터 이름 없는 예술가들의 벽화를 배경으로 여러 전시회와 소품샵이 어우러져 형성됐다. 창작촌에서 다양하게 열려 있는 무료 전시 중 ‘화담 초대전’을 감상했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문래창작촌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문래창작촌

작은 물고기 형상들이 모여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은 평소 미술을 잘 몰랐던 기자들에게도 큰 감동을 줬다. 전시회 골목에는 비누와 같은 생활에 필요한 소품을 만드는 작가 모임 ‘문래14’도 있었다. 더불어 은과 나무, 유리 등 여러 공방과 비누와 향수 만들기 같은 체험도 가능해 창작촌임을 실감할 수 있다. 더불어 골목마다 개성이 가득한 간판과 벽화들은 보는 사람이 예술가가 된 것 같은 착각까지 준다.

문래창작촌을 거닐면 1960~1970년대를 간접 체험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옛 서울의 모습을 간직한 골목을 걷다 ‘강남 빠우’에 발길이 닿았다. 문래창작촌 곳곳에서는 ‘빠우’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빠우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말로 금속이나 돌의 표면의 매끄럽게 마무리하는 기계나 그러한 작업을 일컫는다. 강남 빠우는 본래 철공소였던 곳의 간판을 바꾸지 않은 채 흑백 사진관을 연 듯 보였다. 가게 바깥에 뽑기 기계가 놓여있어 문방구처럼 보였으나 필름 카메라 자판기를 보고 사진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흑백 사진관 강남빠우 내 레트로 느낌의 열전사 사진기
흑백 사진관 강남빠우 내 레트로 느낌의 열전사 사진기

기자들도 작은 TV처럼 생긴 열전사 사진기 앞에 앉아 사진을 찍고 인화했다. 한 장당 가격은 500원 또는 자율이며 수익 전액은 문래창작촌 주변에 사는 동물을 돕는 데 사용된다고 한다. 요즘 유행하는 네 컷 사진은 아니었지만 한 컷만으로도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철공소를 모티브로 한 카페 러스트 베이커리의 외부 모습
철공소를 모티브로 한 카페 러스트 베이커리의 외부 모습

사진관을 나와 주변에 위치한 카페 ‘러스트 베이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벽돌 건물에 있는 가게는 별도의 간판 없이 시멘트 위에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빈티지한 분위기가 문래동과 잘 어우러졌다. 카페 내부 구조는 매우 독특했다. 루프탑을 포함해 3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건물의 모든 공간에 사람들이 앉을 수 있도록 다양한 좌석이 마련돼 있다. 3층 루프탑에서는 문래동의 전경이 보였다. 거의 모든 지붕이 슬레이트로 된 것이 눈길을 끌었는데 지붕 아래에서 매일 성실하게 일하는 공장 사람들이 생각나 뭉클했다. 바깥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패션후르츠에이드와 티라미수 푸딩, 카야잼 크루아상을 먹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풍경을 보며 먹으니 더욱 맛있었다. 
 

100분의 1로 축소한 독도의 모형이 전시돼있다.
100분의 1로 축소한 독도의 모형이 전시돼있다.

영등포역 근처인 문래동을 구경하다 지난달 25일 ‘독도체험관’이 이전 개관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게 됐다. 독도체험관은 동북아역사재단 건물 지하 1층에서 운영됐으나 최근 영등포 타임스퀘어 지하 1층으로 이전했다.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정영미 연구소장과의 인터뷰(▶관련기사: 제776호 4면 「대한민국의 영토, 독도를 지키다」)를 진행한 후 방문하게 돼 더욱 의미 있었다. 

독도체험관을 들어가면 가장 먼저 독도로 이행시를 짓는 체험 공간이 등장한다. ‘독하게 지켜온 우리 땅, 도저히 빼앗길 수 없다’ 등 수많은 사람의 이행시를 보며 독도의 의미를 되새겼다. 바닥의 화살표를 따라 자리를 옮겨 순서대로 관람했다.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수십 개의 문헌과 지도, 유물이 전시돼 있었다. 실시간으로 독도와 울릉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화면도 마련돼 생생함을 더했다. 전시의 끝에는 독도를 100분의 1 크기로 축소한 모형이 있어 독도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관람객들이 독도체험관에서 관람하는 모습을 보며 독도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을 볼 수 있었다. 

독도체험관은 독도가 대한민국 땅이라는 증거 그 자체이자 좋은 교육자료가 될 것 같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뿌듯했다. 겨울이 다가온 요즘, 문래동 골목 속의 옛 정취를 몸소 체험하며 따뜻함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최수빈 기자 csb@uos.ac.kr
이세나 기자 lsn030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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