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이제 들어갈게.”, “점심 조금이라도 먹어, 문제 꼼꼼히 보고.” 지난 17일 오전 8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입장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자 청량고등학교 앞은 수험생과 그들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한가득 짐을 메고 입장하는 수험생, 선배들을 응원하는 후배와 멀어지는 자식들을 말없이 지켜보는 부모들. 매년 변하지 않는 광경 속에서 수능은 이번해 29돌을 맞았다. 수능은 1994년 도입된 이래 많은 일화를 남기고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탄생과 변천, 출제과정과 수능을 둘러싼 논쟁까지 수능의 면면을 소개한다.
 

▲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이 시험장인 청량고등학교 밖으로 나오고 있다.
▲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이 시험장인 청량고등학교 밖으로 나오고 있다.

‘더욱 좋은 시험’을 위해

수능은 기존 대학 입학(이하 대입)시험이 가진 문제점을 탈피하고 대학 교육을 위한 수험자의 적성과 사고력을 검증하기 위해 도입됐다. 1969년 도입된 대학입학예비고사와 이를 계승한 대학입학학력고사는 암기 위주 풀이와 고액 과외 등 여러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교육계는 미국 대입 시험인 SAT를 토대로 한 새로운 시험을 구상했고 실험평가 끝에 1994년 수능을 도입했다. 처음엔 대학 교육을 위한 적성을 검증한단 의미로 ‘적성시험’이라 명명했지만 타고난 능력을 측정한다고 오인할 것을 우려해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개칭했다.

수능은 도입 이후 많은 변천을 거치며 기존에 없던 새로운 영역이 개설되기도 했다. 1990년대 세계화 열풍으로 외국어 수요가 증가하자 2001학년도 수능부터 일본어와 중국어 등 6개 과목을 대상으로 한 제2외국어 영역이 신설됐다. 이후 한문, 아랍어와 베트남어가 추가돼 지금과 같은 9개 과목 체제가 됐다. 기존 과목의 평가방식과 입지가 달라지기도 했다. 상대평가였던 영어 과목은 영어 사대주의와 사교육 과열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일자 2018학년도 수능부터 절대평가로 전환됐고 문항도 축소됐다. 반면 사회탐구영역 선택과목이었던 한국사는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정서가 대두되자 2017학년도 수능부터 필수과목으로 격상됐다. 또한 2022학년도 수능부터 문·이과가 통합되면서 가형과 나형으로 나뉘었던 수학 역시 △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 중 하나를 택하도록 바뀌었다.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라

대입의 중요성이 큰 만큼 교육 당국과 수능 출제자들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총력을 기울인다. 수능 출제진은 대학교수들과 고등학교 교사들로 구성된 출제위원과 고등학교 교사로만 구성된 검토위원으로 나뉜다. 출제진은 정해진 시설로 들어가 출제 및 검토과정을 거치는데 수능이 완료될 때까지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사회탐구 영역 출제위원을 맡았던 교사 A씨는 “수능 문제는 기존 문항과 겹치면 안 되기 때문에 역대 모의고사나 수능은 물론 시중에 있는 모든 참고서와 비교 작업을 거친다”며 “외출을 할 수 없으니 가장 기다려지던 게 운동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수능 당일에도 시험 외 요소가 개입하는 것을 막고자 다양한 조치가 이뤄진다. 수험생들이 제시간에 시험장에 갈 수 있도록 경찰과 소방본부는 수험생 운송에 동원된다. 출근 시간과 증권 시장 개장 또한 연기되고 열차·비행기 운행은 영어듣기평가가 진행되는 25분 동안 중단된다. 부정행위에 대한 조치도 엄격히 이뤄진다. 커닝이나 대리시험은 물론 실수로 반입 금지 물건을 가져왔을 때도 성적 전체가 무효 처리된다. 지난해 수능에 응시했던 이종현(21) 씨는 “한 응시생의 휴대전화 진동음이 울려 가방 검사를 했는데 다른 응시생 가방에서 LED시계가 나왔다”며 “그 응시생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고 시험 때 다른 시계를 썼는데도 휴대폰 소지자와 함께 부정행위로 처리됐다”고 회상했다.

비정상적인 교육 조장 vs 학생 검증 본분 망각

출제과정부터 시험일까지 국가와 교육 당국이 가용역량을 총동원하는 수능이지만 시민단체와 학계에선 그 실효성과 개정 방향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교육·인권단체들은 수능이 사교육을 조장하고 바람직한 교육 환경 조성을 방해한다고 지적한다. 수학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객관식 문제다 보니 개념이해나 탐구보단 문제 풀이법 암기로 교육이 치우친다는 것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수학교육혁신센터 최수일 센터장은 “오지선다로 평가하니 변별력은 약해졌고 학교 교육만으론 풀 수 없는 ‘킬러문항’으로 성적이 갈리는 이상한 시험이 됐다”고 수능을 평가했다. 이어 “1년에 단 하루 시험을 치르고 그 결과로 모든 것을 변별하는 것은 교육이라 부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학계에선 수능이 대학 교육을 위한 역량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학생 부담 완화라는 여론에 밀려 무리하게 출제범위를 줄이다 보니 기하나 물리처럼 대학에서 요구하는 학문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학생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는 지난 2018년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들이 기하와 벡터를 필수과목화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분석 자료를 토대로 국제적인 흐름과 동떨어진 수능 수학 학습 범위 축소를 비판했다. 또한 기하와 벡터가 이공계를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필수기초과목임을 강조하며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게 할 책임이 기성세대에게 있다고 교육 당국의 책임을 역설했다.

믿을 수 있는 수능이 되려면

교육 관계자들은 수능이 살아남기 위해선 본 목적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최수일 센터장은 “수능이 본래 취지처럼 창의적 사고 능력을 측정하고자 한다면 오지선다형에서 서·논술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한국수학관련단체총연합회 역시 기초학습 역량을 위한 교육이 고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올바로 이뤄질 수 있도록 수능이 역할을 다해줄 것을 당부했다. 12년간의 노력과 열망이 담긴 수능이 또 한 번 마무리된 가운데 앞으로 수능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 주목된다.


임호연 기자 20226300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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