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자위함에 달린 자위함기의 모습
▲ 일본 자위함에 달린 자위함기의 모습

“(자위함기는 욱일기와 달리) 약간 기울어져 있다. 형상은 비슷한 모습으로 느낄 수 있는데 두 개를 놓고 보면 차이는 있다.” 지난 6일 해상자위대 창설 70주년 국제관함식에서 우리나라 해군이 해상자위대기가 달린 호위함 ‘이즈모’에 경례했다. 군함에 탑승한 각 나라 해군은 일본 총리가 있는 함정에 경례해야 한다. 

그러나 해상자위대기와 욱일기의 형태가 비슷해 행사 전부터 참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욱일기와 자위함기가 다르다고 말하면서 관함식 참여를 결정해 논란을 가중시켰다. 많은 사람이 욱일기와 자위함기는 육안으로 봤을 때 비슷하다고 말한다. 대중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것처럼 욱일기와 자위함기는 정말 차이가 없는 것일까.

욱일기의 근간을 살피다 

국가의 깃발은 국가를 상징하는 수단이며 국가의 정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1969년 미국은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고 성조기를 꽂아 미국의 힘을 전 세계에 과시했다. 3·1 운동을 전개한 위인들 역시 태극기를 휘날리며 독립에 대한 굳은 의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한 국가의 이념과 긍지가 담긴 깃발에 그릇된 역사 인식이 담겨있다면 어떨까. 욱일기 디자인은 일장기에 근간을 두고 있다. 일장기 중심에는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원이 있다. 축복과 위풍당당함의 의미를 담고 있어 일본 사람들이 즐겨 쓰는 문양이다.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을 의미하는 ‘욱광’은 일본의 전통 문양으로서 널리 쓰여왔다. 욱광 문양이 담긴 깃발은 해안 지방에서 행운과 풍어를 기원하는 깃발로 사용됐고, 16세기 규슈 지역 영주 가문의 문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장기에 16개 욱광이 더해진 욱일기는 일본 군대에서 사용되면서 군사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일본은 1870년과 1889년에 각각 일본 육군과 해군의 군기로 욱일기를 채택했고 이를 앞세워 침략 전쟁에 나섰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우리나라와 중국, 인도차이나반도 등지가 욱일기를 단순한 깃발이 아닌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유다. 욱일기는 일본의 패전 후 군대가 해산되며 사용이 중단됐다. 그러다 1954년 자위대 창설과 함께 자위함기로 부활했다. 일본 외무성도 1954년 제정된 자위대법 시행령에 따라 해상자위대 자위함기는 욱일 모양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결국 자위함기는 욱일기를 계승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과거에 대한 반성의 부재 

일본에서는 여전히 욱일기가 사용되고 있다. 세계인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올림픽과 월드컵에서 일본은 욱일기가 활용된 응원 도구나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선보여 논란이 된 바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랑을 받은 애니메이션 [코난]에서도 벽면에 걸린 욱일기의 모습이 연출됐다. 일본 정부와 더불어 민간에서도 욱일기 사용에 대한 경각심이 부재한 실정이다. 

욱일기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대학 국사학과 박준형 교수는 “욱일기의 사용은 과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대학 도시사회학과 김지영 교수는 “일본 외무성은 지난해 도쿄올림픽 당시 욱일기 논란에 대해 민간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한 것이라 발표했다”며 “흔한 문양이라는 일본 정부의 인식과 맞물려 여러 분야에서 자유롭게 사용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욱일기는 1954년에 부활해 지속해서 쓰여왔지만 논란이 불거진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박 교수는 “한국에서는 1945년 해방 이후 냉전체제로 돌입해 역사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못했다”며 “1980년대부터 냉전체제가 점차 유화돼 역사문제가 부상했고 욱일기에 대한 논의도 오래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욱일기 사용에 대한 반발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대학을 졸업한 중국인 유학생 곽정문(국문 17) 씨는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은 침략 역사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지 못했다는 증거이자 피해국을 고려하지 못한 행동”이라며 “욱일기를 보면 일본이 중국 사람들에게 했던 잔인한 침략 행동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대학 일본인 유학생 A(20) 씨는 “3년 전쯤부터 일본에서 욱일기 사용에 경각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며 “하지만 여전히 전통 디자인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국가 전체에 책임을 물어야 

욱일기는 나치의 ‘하켄크로이츠기’와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하켄크로이츠기는 1935년부터 독일의 국기로 사용되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종적을 감췄다. 전쟁범죄와 인종학살의 의미를 담은 하켄크로이츠기는 이후 서양권에서 배척당했다. 독일에서는 형법 86조를 통해 사용 시 벌금 혹은 징역형에 처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켄크로이츠기와 욱일기는 전쟁범죄와 관련됐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관심의 정도와 법적 규제 여부에 차이가 존재한다. 박준형 교수는 “서구에서는 욱일기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은 유럽에서는 욱일기에 대한 관심이 덜하다는 것이다. 이어 “나치는 히틀러 부상과 집권에 이르는 과정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져 독일이라는 국가가 아닌 나치에게 전쟁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일본은 다르다”며 “욱일기는 국가를 지키는 해군이 사용한 깃발이기에 전쟁 책임은 국가에 물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결국 욱일기 문제에 대해 단순히 일본 해군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전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일본 전체의 책임에 집중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독일은 나치의 전범을 인정하고 자체적인 형법 제정을 통해 하켄크로이츠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침략 전쟁이나 식민 지배 등 과거사를 철저히 반성하지 않아 국가 내 욱일기 사용에 대한 법적 규제가 논의되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욱일기를 사용하는 일본에게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촉구해야 한다. 


이유진 기자 uzzin0813@uos.ac.kr
사진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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