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LAW 말할 것 같으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재난이나 그 밖의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 신체 및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가지며 피해 발생 시 소관 업무와 관련된 안전관리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위 문장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 제4조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의 의무를 제시한다. 하지만 재난안전법은 지난달 29일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다친 10·29 참사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재난안전법에 의거하면 국가와 지자체는 핼러윈에 사람이 몰리는 이태원의 문화적 특성을 파악해 안전관리 활동을 진행할 의무가 있다. 우리대학 소방방재학과 함승희 교수는 “핼러윈 시기 이태원에 인파가 많아질 것을 사전에 예상했으나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지자체의 안전관리 업무에 공백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의 눈물로 만들어진 법

재난안전법은 크게 3단계를 거쳐 제정되고 보완됐다. 1994년 이전 1단계에서는 안전보다는 국토개발과 경제발전이 정책적으로 우선시됐다. 그에 따라 정부는 사후 복구에 집중해 재난 대책을 세웠다. 이후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건과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자연재해에 국한됐던 재난관리 업무가 2단계로 발전돼 인적 재난까지 확대됐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이후 현재 재난안전법의 근간이 되는 『재난관리법』이 제정됐으며 정부와 지자체의 재난관리총괄기구 설치가 약속됐다. 재난관리법은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을 거쳐 지금의 재난안전법으로 개편됐다. 당시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소방방재청이 신설돼 자연재해와 인적재난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통합재난관리시스템이 형성됐다. 3단계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안전법의 대대적인 개정으로 나타났다. 재난 담당 부처인 국민안전처가 신설됐으며 소방방재청은 국민안전처 산하의 중앙소방본부로 흡수됐다. 

또한 재난통신망을 구축함으로써 경찰과 소방 등 관련 기관이 하나의 통신망을 사용해 빠른 시간 내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함승희 교수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행정안전부가 재난안전대책본부와 사고수습본부를 구성해 회의를 운영하는 것은 재난안전법에 근거한 대응”이라고 밝혔다. 덧붙여 “재난지역을 선포하고 피해 수습을 위한 중앙정부의 지원 규모를 결정하는 것도 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난안전법은 재난을 자연재난과 사회재난, 해외재난 등으로 폭넓게 정의한다. 감염병과 가축 전염병 확산은 물론 최근에는 폭염과 미세먼지로 인한 피해도 재난으로 분류됐다. 재난안전법은 대부분 국가의 의무에 관한 조항을 명시한다. 재난안전법 제20조에 따르면 기초단체장과 같이 재난관리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의 장은 관할구역 내 재난이 발생하거나 발생 우려가 있을 시 지체 없이 상위기관인 시·도지사나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 덧붙여 제41조에 따르면 시장·군수·구청장과 지역통제단장은 재난 우려가 있는 경우 사람의 생명과 질서유지를 위해 위험구역을 설정하고 출입 행위를 제한해야 한다. 

재난안전법에서는 국가의 의무만이 아니라 국민의 의무도 나타나 있다. 재난안전법 제5조에 따르면 국민 또한 재난관리업무에 협조해야 하며 자기 소유 또는 사용 건물로부터 재난이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한 재난의 발생이나 발생 징후를 발견한다면 즉시 그 사실을 신고해야 하는 재난 신고의 의무가 있다. 이 외의 재난안전법 내용은 △재난대비훈련 △긴급안전점검 △대피명령 △특별재난지역 선포 △재난복구 등이 있다.

재난안전법, 법적 빈틈 메워야

함승희 교수는 “한국의 재난안전관리 수준은 급격한 경제 성장을 거쳐 안정된 이후 여타 선진국과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높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10·29 참사의 경우 안전관리의 공백에 의한 참사라는 점에서 해외에서도 유사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10·29 참사와 관련해 정부는 기자 간담회에서 ‘주최자가 없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재난안전법 제66조의 11항은 주최자가 있는 지역축제 개최 시 안전관리를 규정한다. 산업재해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박혜원 변호사는 “10·29 참사처럼 주최자가 없는 축제나 행사에서 발생할 사고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명시적 규정은 없는 셈”이라고 법률상 허점을 지적했다. 

10·29 참사를 계기로 주최자 없는 대중축제의 안전관리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은 주최자가 없거나 불분명한 지역축제 관리 주체를 중앙행정기관장 또는 지자체장으로 한다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지역축제에 다중운집 행사 포함 △재난 발생 시 긴급구조활동과 응급대책 복구 등에 참여한 봉사자에 대한 치료에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응을 위한 상담 지원이 포함됐다. 

한편 현재 행안부 장관이나 자치단체장 외 재난안전관리 책임이 있는 기관장은 재난 문자 발송 권한이 없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따라서 대규모 인명 피해 발생 시 행안부 장관이나 자치단체장이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재난 발생 예보를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에 행안부에서는 기존 안전안내문자 시스템에서 인파 사고 위험이 있을 때도 재난 문자를 발송하는 ‘현장 인파 관리 시스템’을 검토 중이다. 박 변호사는 “모든 국민의 안전 보장과 일선에서 힘겹게 대응하는 실무자를 위한 실효성 있는 재난안전법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최수빈 기자 csb@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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