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이태원에서 158명이 사망하고 196명이 부상한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좁은 장소나 길목에 인파가 운집해 수백명이 다친 압사 사고는 전세계적으로 매우 이례적이다. 지난 2010년 독일의 테크노 음악 축제장 주변에서 관객들이 서로 엉켜 21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이번 참사도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을 방문한 청년들이 좁은 골목에 한꺼번에 몰리며 일어났다는 점에서 유사하나 더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10.29 참사로부터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참사의 여파는 여전히 남아있다. 
 

▲ 추모 메시지와 국화가 놓인 이태원역 1번 출구
▲ 추모 메시지와 국화가 놓인 이태원역 1번 출구
▲ 인적이 끊긴 이태원 골목
▲ 인적이 끊긴 이태원 골목

참사가 남긴 흔적

10.29 참사는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사상 두 번째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하고 원인과 책임 소재 수사를 위해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이상민 장관 등 대표자가 책임을 회피하고 사과를 미룬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일부 시민들은 참사의 책임을 묻는 시위와 집회로 목소리를 냈다. 일례로 지난 19일 숭례문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정부에게 10.29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묻는 집회가 열렸다. 해당 집회는 10.29 참사 이전부터 진행됐지만 참사 이후에 두 배 이상 규모가 커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대국민 담화에서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하고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사고의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고 강조했다. 참사를 애도하기 위해 지정된 국가 애도 기간은 정계뿐 아니라 문화계의 분위기까지 바꿨다. 정부나 지자체가 주최하는 행사를 시작으로 각종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다. 부산광역시는 3년만에 개최될 예정이었던 ‘부산 원아시아페스티벌 케이팝 콘서트’를 취소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공연관광 축제 ‘웰컴 대학로’의 폐막파티도 사라졌다. 핼러윈 콘셉트였던 해당 파티는 10.29 참사의 영향으로 핼러윈 언급을 자제하는 추세를 따랐다. 

대한축구협회가 월드컵마다 개최한 거리 응원도 이번 카타르 월드컵 때는 볼 수 없다. 한편 정부가 국가 애도 기간을 정하고 문화 행사를 일괄적으로 취소한 것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비판도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문화연대는 ‘10.29 참사와 문화정치: 국가권력의 통치성, 애도의 방식, 예술의 자율성’ 토론회를 개최했다. 문화연대는 “정부가 예술인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한 가지 방식의 애도만을 강요했다”고 비판했다. 고려대 극회 소속 A(21) 씨는 “대학로에서 소규모 극을 준비했던 선배들도 참사 이후 공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이번 참사도 안타깝지만 정부가 이를 핑계로 모든 문화활동을 유흥과 쾌락으로만 취급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한편 참사 직후 불렸던 명칭인 ‘이태원 참사’는 ‘10.29 참사’로 대신하게 됐다. 부정적인 의미의 단어 ‘참사’와 지역명 ‘이태원’이 함께 언급되면 이태원 주민과 지역경제에 타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제안된 대체어다. 그러나 지난 13일 기자가 직접 방문했던 이태원은 여전히 참사로부터 회복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몇몇 상점은 ‘참사를 애도하며 잠시 휴점합니다’ 등이 적힌 종이가 붙은 채로 굳게 문이 닫혀있었다. 

이태원에서 의상점을 운영하는 B(65) 씨는 “젊은이들이 주요 손님이었는데 이번 참사로 죽은 사람들이 대부분 청년층이라 마음이 아프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큰일이 일어난 만큼 손님이 오기를 감히 기대하지는 못하겠다”면서도 “코로나19를 겨우 이겨냈는데 또다시 이런 일이 생겨 가게를 운영하기 참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기자가 이태원을 방문한 당시는 주말 저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간간이 추모하러 온 사람들만 보일 뿐 고요했다. 문을 연 클럽은 찾아볼 수 없었고 술집에도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 조용히 주말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참사로 떠나보낸 사람들 

참사 직후 이태원역 1번 출구에는 추모 공간이 형성됐다. 시민들은 이곳에 찾아와 추모 메시지와 국화, 음식과 음료 등을 두며 10.29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시민들이 남긴 추모의 흔적들은 1번 출구 주변을 넘어 참사가 발생한 골목까지 쌓였다.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태원을 찾은 이수안(28) 씨는 “가까운 친구 중에는 희생자가 없지만 지인의 지인까지 넘어가면 희생자와 목격자가 있다”며 “청년들에게는 이번 참사가 매우 아픈 상처로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 여행을 온 미국인 한나(24) 씨는 “이태원은 여행 중 꼭 들러야 하는 재미있는 곳이었는데 끔찍한 사고로 망가졌다”며 “이번 사고로 미국인이 사망하기도 해서 여행 중이지만 함께 슬퍼하고 기억하기 위해 들렀다”고 이야기했다. 

참사는 추모로만 끝나지 않았다. 시민들은 ‘지옥철’같이 일상적이었던 높은 인구 밀집도에 경각심을 가지는 한편 SNS에서 적나라한 참사 현장을 마주하고 심리적 문제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 씨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 이렇게 위험한지 미처 몰랐다”며 “사람이 몰린 곳에 가기를 꺼리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이 씨는 “다른 곳은 피해도 출퇴근 지옥철은 피할 수 없는데 서울시나 정부 차원에서 교통수단을 늘리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심리적 문제에 대해 우리대학 심리상담실 서유진 팀장은 “도심 한복판에서 수백명이 압사당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죽음이라 충격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라우마와 PTSD 언급이 늘어난 부분에 대해 “PTSD는 명확한 진단 기준이 존재해 본인과 가까운 사람이 이번 사건에 얽혀있지 않다면 PTSD로 진단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트라우마와 PTSD를 구별하고 각자 증상에 맞춰 대처해야 한다는 의미다. 10.29 참사 희생자, 생존자, 목격자와 유가족에게는 PTSD가 발생할 수 있고 간접적으로 사건을 접한 이들은 트라우마를 주의해야 한다.

재난 대책과 심리 상담 모두 필요 

10.29 참사는 사회 전반을 흔든 재난으로 기록됐다. 참사 이후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경찰과 소방 등 관련 기관은 재난 대응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한편 수사 방식의 문제와 대책의 허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우리대학 소방방재학과 이영주 교수는 “이번 재난은 원인을 명확하게 특징짓기 어려운 결과론적 재난”이라며 “누군가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이 좋은 해결방법인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10.29 참사에 대해 재난관리보다는 생활안전관리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최자가 없는 행사를 일일이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자발적으로 재난에 대비하는 개인과 기관에게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일상적 재난과 관련한 정보를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이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정부는 재난 대책뿐만 아니라 10.29 참사로 인해 심리적 타격을 입은 사람들에게 심리 치료를 지원하는 방책을 내놨다. 서유진 팀장은 “심리적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국가트라우마센터와 한국심리학회 등에서 제공하는 전화상담을 받기를 추천한다”며 심리상담 전문가와의 만남을 강조했다. 이어 상담을 꺼리는 학생들에게는 “감정이 요동치는 현상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며 “스스로 평화를 찾을 방법을 알아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우리는 새로운 재난 유형을 경험하게 됐다”며 “학생들이 시민으로서, 행사 참여자로서 안전의식과 위험에 대한 판단력을 스스로 키웠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정시연 기자 jsy434438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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