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관에 열린 전시를 보려고 사람들이 늘어섰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에 약탈당했던 외규장각 의궤 반환 10주년을 기념해서 열렸다. 전시에서는 외규장각 의궤와 더불어 각종 그림과 전통 복장 등 외규장각 의궤 반환 이후 10년간 쌓인 연구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 좌우로 어람용 의궤와 분상용 의궤가 전시돼있다.
▲ 좌우로 어람용 의궤와 분상용 의궤가 전시돼있다.

‘외규장각 의궤’, 그 굴곡의 역사

의궤는 ‘의식의 궤범’을 뜻하며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이다. 조선시대 관혼상제나 연회 등 국가나 왕실의 중요한 의식과 행사를 개최한 후 준비과정이나 의례 절차 전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일종의 종합 보고서이기도 하다. 같은 행사를 기록한 의궤라도 성격과 품질이 조금씩 다르다. 왕이 보는 어람용 의궤와 일반 관청에서 보는 분상용 의궤로 나뉜다. 특히 어람용 의궤에는 화려한 초록색 비단 표지와 고급 종이가 사용됐다. 조선 초기부터 제작된 의궤는 임진왜란을 거치며 모두 소실됐다. 현재 남아있는 의궤는 모두 17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정조는 1782년 강화도에 외규장각이 완공되자 창덕궁 규장각에 있던 어람용 의궤를 외규장각으로 옮기도록 명했다. 그렇게 어람용 의궤는 바다를 건너 외규장각에 보관된다. 

하지만 1866년 병인양요가 일어나 프랑스군이 외규장각을 약탈해가면서 의궤는 조선을 떠났다. 그렇게 외규장각 의궤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100년 넘게 보관되며 잊히는 듯했다. 그러다 1975년 고 박병선 박사가 도서관에서 외규장각 소장 의궤 297책을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도서관 사서였던 박 박사는 연구 과정에서 도서관의 관리 미흡 문제를 제기하다 해고됐다. 하지만 어려움 속 사서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10년 넘게 의궤의 내용을 정리했고, 의궤 반환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국과 프랑스 정부 간 기나긴 협상 끝에 지난 2011년 외규장각 의궤는 5년마다 임대가 갱신되는 사실상 영구임대 방식으로 14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 전시에서는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했다.
▲ 전시에서는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활용했다.

10년 만의 전시, 고귀함을 만나다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는 의궤 반환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전시다. 297책에 달하는 외규장각 의궤 전체뿐 아니라 『서궐도안』과 『효종상시호옥책』 등 국가지정문화재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의궤 속 그림으로 복원한 궁중 연향 복식 약 460점을 전시했다. 본래 입장료가 있는 전시지만 지난 2011년 11월 23일 타계한 고 박병선 박사를 기리며 지난달 21일부터 27일이 추모 기간으로 지정됐고 기자는 이 기간에 방문해 무료로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외규장각처럼 꾸며놓은 전시장 입구로 들어가자 본격적인 전시가 시작됐다. 

첫 번째 전시 공간은 ‘왕의 책, 외규장각 의궤’로 어람용 의궤 실물을 만나볼 수 있었다. ‘눈길을 사로잡지만 결코 과하지 않은 화려함, 일부러 내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우아함’이라 적힌 소개 문구는 본격적으로 어람용 의궤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렸다. 한 쪽 벽에 어람용 의궤와 분상용 의궤의 요소를 세세하게 비교한 표가 있었다. 분상용 의궤 역시 중요한 국가 기록물이다. 하지만 종이, 글자, 표지, 그림 등 모든 부분에서 어람용 의궤는 분상용 의궤와 격을 달리할 정도로 고귀했다. 표지의 청록색 비단과 놋쇠 장식 그리고 붉은색 변에 정갈하게 쓰여진 글자는 조선 왕실 문화의 품격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어람용 의궤의 아름다움에 매료될 때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외규장각 의궤 보관 서가에 도착했다. 5m 정도의 서재에 전시된 외규장각 의궤들을 보니 실로 마음이 겸허해졌다. 조선이 기록문화의 정수를 꽃피웠다는 이야기가 헛된 말이 아니었다는 걸 느꼈다. 한편 외규장각 의궤들에 붙어있는 프랑스 관리 스티커는 이것이 해외로 반출됐다가 돌아온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게 했다.

다음 전시 공간은 ‘예로써 구현하는 바른 정치’로 구체적인 조선 예법의 실행 과정을 담은 의궤를 돌아보며 조선의 품격과 통치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스크린에 사용된 디지털 기술은 전시의 몰입도를 높여줬다. 가장 인상적인 디지털 전시물은 1631년부터 1849년까지 의궤 18책에 담긴 사신(四神)이 변화하는 모습이었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변하는 사신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관념적인 존재인 사신의 모습도 달라진다는 점을 느끼게 했다. 외규장각 의궤 중에는 궁궐과 종묘 등 건축공사와 관련된 의궤인 ‘영건의궤’도 있었다. 『서궐영건도감의궤』는 순조 때 경희궁을 재건하며 기록한 의궤로  신하와 국왕 간 논의과정까지 담겨있어 의궤는 단순한 결과 보고가 아니라 국가 주요 사안의 추진 원리와 지향점을 보여주는 국가 경영 지침서임을 알 수 있었다.
 

▲ 대형 스크린에 『기사진표리진찬의궤』가 재현되고 있다.
▲ 대형 스크린에 『기사진표리진찬의궤』가 재현되고 있다.

디지털로 재현된 예와 의례

마지막 전시 공간은 ‘질서 속의 조화’로 의례를 통해 구현하려 했던 예를 통한 정치가 실현되는 왕실 잔치에 주목했다. 조선 왕실은 신하와 백성 등 다양한 사람이 모여 의례절차를 따르며 예를 실천하려 했다. 왕실 혼례에 사용된 ‘모란도 병풍’과 궁중 악기 ‘편경’도 놓여 있었다. 고귀하지만 흥겨웠던 왕실 의례는 왕뿐만이 아니라 신하와 백성까지 함께하는 의식이었다. 전시의 마지막에는 순조가 할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위해 연 연회를 기록한 『기사진표리진찬의궤』를 소개한 글이 적혀있었다. 끝난 줄 알았던 전시에 혜경궁 홍씨의 의례과정을 담은 애니메이션이 벽 하나를 가득 메운 화면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초대형 화면에서 300년 전 혜경궁 홍씨의 의례가 시작되자 관람객들은 눈을 뗄 수 없었다. 

전시 공간을 나오니 자연스럽게 대한제국 전시관으로 이어졌고 대한제국에서 의궤를 계승했다는 설명이 적혀있었다. 복원한 의복을 함께 둬 앞서 본 영상이 철저한 고증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외규장각 의궤와 함께 여러 귀중한 문화유산을 봤던 소중한 1시간이었다.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전시까지 다채로운 구성이 이어져 눈과 귀가 즐거웠다. 조선의 통치체제를 상징하는 ‘예’와 그 예를 수행하는 의례를 재현한 이번 전시에서 ‘그 고귀함의 의미’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최윤상 기자 uoschoi@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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