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사람들을 산 채로 묻은 무덤입니다.” 지난달 2일 튀르키예 방송사 CANLITV의 앵커는 대지진이 일어난 가지안테프 지역 아파트 붕괴를 보도하던 중 울분을 토했다. 지진 발생 2분 만에 건물 측·후면이 통째로 쓰러졌고 입주민 상당수도 매몰됐다. 해당 아파트를 비롯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선 최소 26만 4천 채의 건물이 파괴됐다. 사망자만 최소 5만 명으로 짐작할 뿐 실종자 수는 집계조차 못하고 있다. 그러나 비극을 피한 곳도 있었다. 튀르키예 소도시 에르진은 진앙과 20km 떨어진 거리였지만 단 한 채의 건물도 무너지지 않았고 사상자도 없었다. 내진설계가 사람과 건물의 운명을 가른 순간이었다.
 

내진, 면진, 제진 구조 비교도 (출처: 한국방진방음)
내진, 면진, 제진 구조 비교도 (출처: 한국방진방음)

오해부터 설계까지, 내진설계 면면

내진설계란 건물 붕괴와 인명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진동을 견디도록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내진설계를 위해서는 시간과 비용, 재료, 공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내진설계를 해서 붕괴를 막았더라도 지진으로 건축물 내부에 손상이 갔을 수 있기에 지속적인 점검과 보강이 필요하다.

지진은 진동만으로도 치명적이지만 교통이나 통신, 전력이 마비되면 더 큰 피해가 발생한다. 주택이나 상가 같은 건물은 물론 교통시설과 전력·발전시설, 가스·수도시설, 방송·통신 시설에도 내진설계가 적용되는 이유다. 건축물의 중요도와 높이가 높고 수용량이 많을수록 엄격한 내진설계를 요구받는다. 관청과 원자력발전소, 초고층건축물, 대형 종합병원 등이 이에 속하며 방송국과 데이터센터도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며 최우선적인 내진설계 대상에 포함됐다. 

거대한 건축물에 어떻게 내진설계를 할까. 먼저 건설지역에서 발생했던 지진들의 세기와 발생 시간을 조사한다. 이를 바탕으로 일정한 시간 동안 규칙적으로 강약이 반복되는 가상의 지진을 설정한다. 이러한 가상의 지진을 버티도록 시뮬레이션해 건축물에 내진설계를 하는데 지진 패턴이 탄성을 받아 튀는 공 같아 탄성설계라 한다. 탄성설계는 과거 지진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최근에는 시간과 세기가 불규칙한 실제 지진 패턴을 직접 입력하는 성능기반설계가 사용되고 있다. 단국대학교 건축학부 엄태성 교수는 “성능기반설계는 시뮬레이션에 요구되는 계산을 안정적이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해석기법 및 컴퓨팅 기술이 필요하다”며 “최근 이러한 기술적인 난제가 조금씩 해결되면서 국내외에서 성능기반설계가 확산하는 상황이다”라고 밝혔다.

견디거나 상쇄하거나 띄우거나

내진설계는 지진이 구조물에 작용하는 힘인 지진하중으로부터 어떻게 건물을 보호하는지에 따라 내진, 제진, 면진구조로 나뉜다. 내진구조는 구조물의 단면을 넓혀 구조물 자체를 강화해 지진하중에 견디도록 설계하는 방법이다. 까치발을 하고 선 사람이 잘 넘어지듯 구조물도 지면과 대기에 접한 단면이 작을수록 외부의 충격에 취약하다. 대각선 방향으로 콘크리트를 댄 브레이스나 철근 심지를 바둑판처럼 넣어 만든 내진벽이 구조물의 단면을 늘리는 데 사용된다. 내진구조는 가장 기본적인 설계구조이며 비용도 저렴해 저층 건물에 주로 사용된다. 그러나 지진 발생 시 건축물의 구조부재 상당수가 손상되며 사후 복구도 어렵다. 단면이 증대될수록 건축물의 중량과 사용되는 자재도 증가하므로 100m 이상 건축물을 지을 시 오히려 면·제진구조보다 경제적 효율이 떨어진다.

반면 제진구조는 진동에 맞춰 건물을 적당히 흔들리게 해 지진하중을 분산, 흡수한다. 여기에는 제진 댐퍼라는 기둥이 사용되는데 무게추에 고무처럼 점탄성을 가진 물질을 넣어 진동 시 역방향으로 흔들린다. 건축물 곳곳에 설치된 제진 댐퍼가 흔들리면 진동에너지가 흡수되고 건축물에 가해지는 진동은 줄어든다. 기계장치로 비슷한 세기의 진동을 건축물의 반대 방향으로 발생시켜 진동을 상쇄시키는 능동적 제진 기술도 활용되고 있다. 제진구조는 강진뿐 아니라 강풍 대처에도 효과적이라 고층 건물에 주로 사용된다. 건축물로 가해지는 충격이 감소해 지진 발생 후 복구도 용이하지만 진동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기에 가구나 장식 등 건축물 내부 자재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타이베이 101에 설치된 제진장치 중 무게추 (출처: 포스코)
타이베이 101에 설치된 제진장치 중 무게추 (출처: 포스코)
한국의 면진설계가 도입된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출처: Klook)
한국의 면진설계가 도입된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출처: Klook)

면진구조는 건물과 지반을 분리함으로써 진동의 전파라는 원인 자체를 차단한다. 건물과 지반 사이 기초 부분에 면진 장치를 삽입해 면진층을 형성하고 건물로 전달되는 진동을 저감하는 것이다. 면진층에는 모양이 쉽게 바뀌는 건축자재를 사용하는데 주로 고무를 베어링이나 블록으로 제조해 사용한다. 면진 장치가 진동에너지를 완화하기 때문에 건축물에는 흔들림이 거의 전달되지 않는다. 건축물 부재와 설비 피해, 사후 복구 비용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 구조 중 가장 공사 비용이 높아 일반 건축물보다 데이터센터나 원전, 초고층건축물 설계에 주로 활용된다.

미국, 일본, 튀르키예… 한국은?

내진설계 기술과 체계를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은 1933년 내진설계 기준인 UBC를 도입했고 지진구역도로 각 지역의 지진 현황을 분석해냈다. 장비와 시설의 설치기준 역시 미국연방비상관리국(FEMA)에 의해 상세히 구분된다. 엄태성 교수는 “한국의 내진설계기술은 모두 미국의 영향을 받았으며 일본, 대만 등도 미국과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며 미국의 위상을 설명했다. 

일본은 1923년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내진 기준을 도입했고 1981년 진도 6~7 지진에서 붕괴하지 않을 것을 목표로 하는 ‘신 내진기준’을 발표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에는 면진 기술을 실용화하고 마감재나 내부설비의 내진 기준을 강화하는 등 보강에 나서고 있다. 튀르키예 역시 1999년 이즈미르 대지진 이후 건축규제를 강화하고 6조원에 달하는 지진세를 걷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으로 도시에 인구가 집중되며 내진설계 논의는 신속한 주택공급 요구에 밀려났다. 내진설계를 무시한 건축업자들도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만 받은 채 석방됐다. 결국 튀르키예 전체 건물 중 절반이 위반건축물인 지경에 이르렀고 이번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봤다.

한국은 6.25 전쟁과 급격한 경제 성장으로 내진설계 도입이 늦어졌다. 1978년에야 홍성 지진을 계기로 논의가 시작됐고 1986년 건축법에 내진설계를 의무화했다. 시작은 늦었지만 한국은 철강과 케이블 등 내진용 강재, 규모 9.0 강진도 견디는 롯데월드타워나 두바이의 부르즈 할리파 등 초고층건축물 내진설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교통 인프라 분야에서도 우수함을 인정받아 한강을 잇는 고덕대교 건설현장에 일본국제건설기술협회가 내진설계 기술을 참고하려 방한하기도 했다. 하지만 낮은 내진율은 극복해야 할 문제다. 

내진설계 기준이 강화됐어도 이전에 지어진 건물에 소급 적용되진 않는다. 서울시 지진안전포털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규모 6 지진을 견딜 수 있는 서울의 내진율은 19.5%에 불과하다. 공공기관인 의료시설(49.1%)과 교육·연구시설(30.5%)의 내진율 역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정부가 내진보강 비용을 지원하고 있지만 지원 비율이 20%에 불과하며 이번해 지원금액도 14억 5700만원에 불과해 참여가 저조한 실정이다.

도움만큼 절실한 ‘대비’

기상청이 지난달 15일 발간한 「2022 지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한반도에서 발생한 규모 2.0 이상 지진은 77회로 1999년 이후 연평균보다 7회 많았다. 규모 4.1의 괴산 지진은 수도권까지 진동의 여파가 미쳤다. 정부는 2025년까지 전국 공공시설물 내진율을 81%로 끌어올릴 예정이며 민간건축물도 지속적으로 내진성능을 향상할 계획이다. 1999년 대지진을 잊은 튀르키예의 비극이 말해주듯 지진이 났을 때만 반짝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닌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내진설계 계획과 강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임호연 기자 
20226300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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