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국사 21)

대한민국의 3월은 항상 1919년 3월 1일의 역사를 되새기며 시작한다. 행정부의 수장이자 국가의 대표인 대통령 또한 이를 기념하고자 공식 행사에 참석해 연설하곤 한다. 이번 삼일절 연설은 그러한 궤의 연장으로 보이는 삼일절 연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지난해와 달리 유독 장안의 화제로 불타오르고 있다. 길다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대통령의 연설문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다음 문장이다.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됐습니다.’ 연설자는 사과와 배상이 온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일제의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외려 일본을 군국주의 침략자의 거죽을 벗은 ‘파트너’로 명명한다. 

물론 삼일절이 피해자의 역사에 빙의돼, 가해자의 과거를 가진 이웃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자리가 아님은 자명하다. 일각에서는 오늘날 국제정치의 구도 속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언사가 과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중국의 성장과 북한의 위협 속에서 일본과의 협력은 필수적이며, 해당 발언은 역사적 감정을 도약하는 선언으로서 유의미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맞닥뜨린 상황은 십분 이해하지만, 그것이 기미년 3월 1일을 되새기는 일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나아가 연설 말미에서 강조한 ‘기미 독립선언의 계승’이 ‘일본과의 협력’으로 승화될 수 있는가.

이번 삼일절 연설은 언급되어야 할 역사가 묵살당했고, 사과를 요구해야 할 이웃에게 협력을 구걸했다. 세계대전의 끝에서 자주독립을 외치고 시대의 폭력에 저항했던, 100만 명 넘는 시민의 힘으로 쏘아 올린 3·1운동은 고작 두 문장의 언급으로 끝냈다. 3·1 운동의 기치를 이어 활동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정부·조직·단체는 이름 하나 언급되지 않았다. 폭력적·기만적 식민 통치 속에서 삶이 망가진 사람들에게 국가가 어떻게 그들을 대변하고 무엇을 약속할 것인지도 침묵했다. 

역설적으로 ‘불행한 과거’라는 한 마디가 20세기 전반의 한국사를 일축했다.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에게 보내는 구애가 역사를 몰아낸 자리를 차지했다. 과거를 잊지 않겠다면서 현실 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역사를 정치와 외교의 논리로 묵살한 것이 삼일절 연설인가. ‘불행한’ 역사와 그 피해자를 묵살하며 쌓은 한일관계에서, 얼마나 동등한 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일본도, 미국도, 3월 1일 연설의 주인공도 이번 연설에서 한일관계의 해빙을 기대한다. 그리고 강제징용의 판결은 한국의 기업이 제3자로서 떠맡는다는 정부의 해결책이 나왔다. 역사를 묵살한 연설에 이어 스스로 사과와 배상을 포기하는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모쪼록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지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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