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JAPAN” 지난 2019년 7월 일본 경제산업성이 대한민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하며 우리나라에서 ‘일본 불매운동’이 일었다. 지난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은 일본제철에게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명령을 판결했고 2019년 5월 대법원에서 해당 기업의 국내 자산 압류와 매각 명령을 신청했다. 이후 두 달만인 7월에 수출 규제가 발표돼 보복성 규제 논란이 터지며 우리나라 국민의 공분을 산 것이 일본 불매운동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당시 뜨거웠던 불매운동의 열기가 무색하게 현재 한국에서는 일본 문화 열풍이 불고 있다. 일본 감성을 그대로 재현한 카페와 음식점이 생겨났고 일본 애니메이션도 청년세대와 기성세대를 아우르며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일본 문화 열풍의 중심, 애니메이션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약 30년 전 대한민국을 농구 열풍으로 이끌었던 만화 『슬램덩크』가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로 돌아왔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지난 7일 누적 관객 수 약 390만 명을 기록하며 국내 개봉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흥행 1위를 차지했다. 지난 2021년 개봉한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도 누적 관객 수 약 210만 명을 끌어모으며 코로나19로 침체된 극장가에서 두드러지는 성과를 보였다. 
 

2016년 크게 흥행한 [너의 이름은]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지난 8일 차기작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돌아왔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개봉 직전 예매율 51.5%를 기록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성공적인 행보를 보였다. 성상민 대중문화평론가는 [스즈메의 문단속] 국내 개봉 2일 전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국제 경쟁 부문 후보에 들며 작품성과 상업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작품이라 국내에서도 흥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신카이 감독은 한국 관객들을 위해 지난 8~9일 내한 무대인사를 진행했다. 평일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21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상영관이 90% 이상 채워진 상태였다. 몇몇 관객은 직접 그린 팬아트를 보여주며 현장 분위기를 달궜다. 감독은 직접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하는 등 관객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했다. 영화의 주제의식과 모티브 요소 등 제작 의도와 숨겨진 배경을 감독에게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관객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관객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질의응답 시간에 감독의 친필 사인이 그려진 특전 포스터가 제공되자 관객들은 손을 번쩍 들며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30분가량의 짧지만 뜨거웠던 무대인사가 끝나고 감독이 극장을 나가는 순간 관객들도 빠르게 그 뒤를 따랐다. 메가박스는 한정판 오리지널 티켓을 발매하고 CGV는 필름 마크를 관람객에게 증정하는 등 다양한 특전을 제시했다.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실감 나는 현장이었다.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이 이전보다 흥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 평론가는 “인터넷 짤, 웹툰, 애니메이션 굿즈 상점 등으로 만화가 대중들의 일상에 많이 녹아들었다”며 “[너의 이름은]의 대성공 이후 애니메이션도 대중의 선택지가 됐다”고 흥행 이유를 분석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흥행에 따라 우익 성향 작가의 발언과 작품 내 묘사는 항상 논란이 됐다. 『슬램덩크』 작가는 자위대를 칭찬하는 글을 작성했으며 『진격의 거인』은 결말이 전쟁범죄를 옹호한다는 논란을 낳아 결국 수정됐다. [귀멸의 칼날], [주술회전]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에서 욱일기는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한국과 중국 팬들은 지속적으로 작가에게 항의 메일을 보내거나 잡지사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유사한 사례는 계속되고 있다. 평소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김도운(21) 씨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욱일기가 나오고 작가가 우익 발언으로 논란될 때마다 일본의 부족한 역사의식이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풍으로 물든 거리를 맛보다

오늘날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 청년 세대의 필수 SNS에는 최신 유행을 따라가기 위한 게시물이 가득하다. 특히 인기 게시물에서 여행지와 음식에 관한 해시태그는 필수다. 최근 일식과 일본풍 여행지, 숙소에 관한 게시물이 많은 ‘좋아요’를 받고 있다. 텐동, 스키야키 등 일식당과 일본식 호텔인 료칸은 예약이 가득 찰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평소 일식을 즐겨 먹는 이해리(21) 씨는 “한국 음식과 달리 면 요리가 많고 간도 잔잔해서 좋다”며 일식에 대해 애정을 드러냈다. 일식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일식은 예전부터 국내 선호도가 높은 음식이었다”며 “한식과 달리 국물 문화가 적고, 고소한 맛을 내는 요리 방식이 국내와는 달라 인기를 얻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간판이 가득한 홍대의 한 거리
일본 간판이 가득한 홍대의 한 거리

기자도 일식을 즐기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 일식집이 유난히 많은 홍대의 한 거리는 얼핏 보면 한국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다. 일본어 간판을 걸고 일본식 양갈비를 판매하는 한 음식점에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랏샤이마세”라는 외침이 크게 들려왔고, 식사를 주문하자 직원들이 일본어로 소통하며 음식을 전달했다. 일식당을 방문한 대학생 윤현서(21) 씨는 “분명 한국인데도 일본어가 자꾸 들렸다”며 “굳이 주문과 인사를 일본어로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본토의 문화를 즐기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는 여행객 수도 늘고 있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에서 공개한 「인천공항을 통한 일본 여행객 수 추이」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출국자가 약 10만 명인 데 비해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10월 출국자는 약 30만 명으로 급증했다. 지난달 일본정부관광국은 지난 1월 일본 방문 외국인 관광객 총 149만 7300명 중 37.7%인 56만 5200명이 한국인이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김 평론가는 “한국인들이 코로나19로 억압받던 여행 욕구를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 표출하러 가는 것”이라며 “일본을 찾는 이유는 음식과 물건, 가구 등이 아기자기한 특유의 분위기에 매료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대학 도시행정학과 오동훈 교수는 사람들이 일본 문화를 찾는 이유로 “국내와 다른 문화적 특색에 대한 궁금증”을 꼽았다. 이어 그는 “외국 도시에 차이나타운이 있듯 거주자 수요나 관광 수요가 있다면 한국 내에서도 일본식 상점이 모인 거리 등이 있을 수 있다”며 “서울의 서래마을이나 남해의 독일마을, 동두천의 니지모리 스튜디오 또한 그런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바른 문화적 공존을 위해

일본 문화 향유가 과해지면 국내 문화를 경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경주 황리단길에는 일본 음식점과 카페들이 생겼고, 전주 한옥마을 내에는 외국 음식 판매장이 들어섰다. 단순히 외국 문화를 즐기는 걸 벗어나 외국 문화가 국내 역사 관광지 내 주요 관광 요소가 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대학 국사학과 박준형 교수는 “양국 간의 활발한 문화 교류 자체는 전혀 나쁘지 않다”며 “다만 적절한 공간인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들어선 외국 문화는 결국 고유한 지역적 특색을 사라지게 한다”고 우려했다. 우리대학 도시행정학과 송영현 교수 또한 “타국의 특색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우리나라 특색을 해치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전했다. 

일본 문화가 국내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문화적 애정이 국가나 일본 정책 전반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중앙일보와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에서 공개한 「한국인의 국가별 호감도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 대한 신뢰 비율은 지난해 22.4%를 기록했지만, 불신 비율은 75.7%로 절반을 넘는 수치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일본 문화 열풍이 일본 자체에 대한 애정이라는 정치적 해석은 지양해야 한다”며 문화와 정치를 연계해 바라볼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박 교수 또한 “일본에 대한 이중적 감정과 혐오 감정을 깨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문화 교류와 역사 인식의 제고가 필요하다”며 “양국 간의 교류를 차단하기보다는 서로 얼마나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지 인정한다면 상호 간 장벽을 허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다. 


신연경 기자 yeonk486@uos.ac.kr
정재현 기자 kai71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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