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품에 안겨 잠들고 싶어라…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당신만 있으면 돼~” 트로트 가수 임영웅의 ‘보금자리’는 강미숙(58) 씨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다. 강 씨는 신나는 박자에 트로트 특유의 바이브레이션 창법과 솔직한 가사에 마음이 이끌렸다. 쇠락하는 줄만 알았던 트로트는 지난 2019년 [미스트롯]으로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2020년 [미스터트롯]에서 최고 시청률 35.7%를 기록하면서 인기가 극에 달했다. 현재까지도 트로트 프로그램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TV 시청률 분석 기업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현재 방영되는 [미스터트롯2]는 이번달 둘째 주 종합편성 주간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어느새 우리의 일상에 스며든 트로트, 그 이모저모를 살펴봤다. 

오랜 역사를 지나온 트로트의 매력

프로그램이 흥행하면서 트로트 가수들도 인기 아이돌 부럽지 않은 인기를 끌고 있다. 송가인과 임영웅은 트로트 팬층을 넘어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막대한 인기를 자랑하며 케이팝 아이돌처럼 자신만의 팬덤을 형성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임영웅과 같이 [미스터트롯]에서 인기를 얻은 이찬원은 지난달 20일 정규 앨범 ‘원(ONE)’을 발매했는데, 발매 이틀 만에 음반 판매량 50만 장을 돌파하며 팬층이 두터운 아이돌도 힘든 기록을 세웠다. 

매체의 영향과 더불어 트로트만의 특색도 인기에 한몫했다. 지난 2020년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의 조사에 따르면 트로트의 매력으로 10대와 50대 모두 ‘친근한 멜로디’를 30.6%, 37.8%로 가장 많이 선택했다.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듯한 익숙한 멜로디는 트로트가 오랜 기간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였다. 
 

어르신들이 경로당에서 트로트 가사지를 들고 즐겁게 트로트를 부르고 있다.
어르신들이 경로당에서 트로트 가사지를 들고 즐겁게 트로트를 부르고 있다.

우리를 웃게 만드는 트로트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듣거나 등산길이나 산책길에 트로트를 틀며 운동하는 어르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트로트는 노년층의 일상에 녹아든 지 오래다. 우리대학 인근에 있는 답십리 세양청마루아파트 경로당에 방문하니 노인들이 트로트를 신명 나게 즐기고 있었다. 경로당 회장 A(64) 씨는 “신나는 트로트를 부르면 너무나 즐겁고 슬픈 트로트를 부르면 삶의 슬픔이 씻겨 나간다”고 트로트의 매력을 소개했다. 경로당이나 노래 교실에서 친구들과 트로트를 듣고 부르는 것은 노인들의 큰 즐거움이었다.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김영범 교수는 “노래를 부르며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효능감을 느낄 수 있고 트로트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1일 임영웅의 콘서트 실황 영화 [아임 히어로 더 파이널]이 개봉됐다는 소식에 많은 트로트 팬들이 영화관을 찾았다. 영화 포스터 앞은 임영웅의 팬 영웅시대로 가득했다. 공식 색인 하늘색 티셔츠를 입고 밝은 미소로 사진을 찍거나 가방, 키링, 포토카드 등 다양한 굿즈가 눈에 띄었다. 응원봉을 구매하거나 음원 스트리밍을 하는 젊은 층의 문화라고 여겨지던 덕질 문화가 중·노년층에서도 향유되고 있었다. 

백석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김승용 교수는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새로운 노년을 보내며 우울증을 이겨냈다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며 “덕질을 통해 삶의 활력을 얻고 팬들이 네트워크도 구축하면서 긍정적인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로트의 흥행은 중·노년층뿐만 아니라 청년층에게도 변화를 가져왔다. 영화관에서 판매하는 임영웅 굿즈를 구경하고 있는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조유민(14) 씨는 “처음에는 트로트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자주 접하다 보니 고정관념이 깨졌다”고 전했다. 다양한 매체에서 트로트가 다뤄지며 과거에 비해 트로트에 대한 젊은 층의 진입 장벽이 낮아진 것이다.
 

임영웅 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의 의미를 담고 있는 가수 임영웅 씨의 시그니처 포즈 ‘건행’을 취하고 있다.
임영웅 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의 의미를 담고 있는 가수 임영웅 씨의 시그니처 포즈 ‘건행’을 취하고 있다.

트로트 인기의 어두운 그림자

트로트의 흥행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경로당 회장 A씨는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트로트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데 보낸다”며 “뉴스나 드라마보다 자주 시청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조사한 「2021년 국민여가활동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가장 많이 참여한 여가활동으로 60대는 86.4%, 70세 이상은 93.4%가 TV 시청을 꼽아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결과를 기록했다. 

김승용 교수는 “노인복지관은 이번해 기준 전국에 332개소, 서울에는 51개소가 있으며 이는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전국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라며 “부족한 복지로 인해 노인들은 TV 시청으로 대부분의 여가시간을 보낸다”고 노년층이 즐길 수 있는 사회적인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미스터트롯]의 성공으로 유사 포맷의 오디션 프로그램이 속출하면서 비슷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면서 ‘또 트로트다’의 줄임말인 ‘또로트’라는 말이 생겼고 시청자는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TV조선의 이번달 넷째 주 편성표를 보면 TV조선, TV조선2, TV조선3에서 방영하는 트로트 방송 횟수는 총 110회이다. 

타 방송사의 방송 횟수까지 합하면 언제 트로트 프로그램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반복되는 트로트 프로그램에 대해 윤현서(국사 22) 씨는 “지난 명절 방송사와 프로그램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형식의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몇 시간이고 방송됐다”며 “똑같은 주제더라도 다양한 콘텐츠를 내보여야 흥미가 생기는 데 오히려 반감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트로트 열풍과 더불어 트로트 인기를 모든 세대 간의 취향 화합으로 보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실제로 트로트 관련 기사에서 ‘모든 연령층이 사랑하는’, ‘젊은 층을 사로잡은’ 등 세대를 관통하는 문구는 자주 언급됐다.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젊은 세대도 즐길 수 있는 장르가 된 것에 집중하기보다 촌스럽다고 취급되던 트로트가 어떻게 한 자리를 차지했는지 탐구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방향”이라며 인기 문화 현상을 일반화하는 것보다 원인을 분석하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방예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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