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고용노동부는 『근로자의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및 유연화 법안』(이하 개편방안)을 입법예고했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장관 브리핑에서 “이번 개편은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근로자 건강권 보호 강화, 휴가 활성화를 통한 휴식권 보장, 유연한 근무방식 확산이라는 원칙 하에 추진된다”고 밝혔다. 개편방안은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늘려 유연한 근로를 가능하게 하고 장기휴가를 활성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발표 직후 노동계에서 반발과 우려가 거세게 일어나며 법안은 재검토 수순을 밟게 됐다.

“몰아서 일하고 길게 쉬자”

이번 발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주 120시간 노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필요한 경우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한 뒤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주일 168시간 중 48시간을 제외한 120시간 동안 일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말에 당시에도 큰 파문이 일었다. 이후에도 윤 대통령은 노동개혁을 강조하며 노동 부문에서 첫 번째로 근로시간 유연화를 공약했다. 지난해 7월 고용노동부는 노동시장 개혁의 우선 추진과제로 근로시간 제도 및 임금체계 개편을 강조하며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발족했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12월 발표한 권고문은 개편방안의 큰 틀을 제시했다. 해당 권고문은 근로시간 관리 단위를 주에서 월, 분기, 연으로 늘리고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를 강조했는데 이러한 기조가 실제 개편방안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 2018년부터 시행된 일명 ‘주 52시간제’에 의하면 기본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며 연장근로시간은 주 12시간으로 제한된다. 이번 개편방안이 실제 법 개정으로 이어진다면 1주당 12시간으로 한정된 연장근로시간 상한선이 늘어나 주 6일 기준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된다. 우리대학 법학전문대학원 노상헌 교수는 “1주 근로시간을 명시적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다만 정부는 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시간을 월 52시간으로 두는 근로시간의 유연화이므로 총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몰아서 일하고 길게 쉬자’를 강조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SNS에 공개한 ‘연장근로 가상 근무표’는 개편방안 실현 시 근로 예시를 보여준다. 예시 상 1주에는 주중 10.5시간, 토요일 9.5시간으로 총 62시간을, 2주에는 주중 9시간, 토요일 8시간으로 총 53시간 일한다. 3주에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일 8시간 근무하고, 목요일과 금요일은 휴가를 사용했다. 4주에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일 8시간 일하고 금요일에 휴가를 썼다. 고용노동부 SNS 계정에는 ‘주말에 쉬는 것도 휴가로 세나’, ‘현실적이지 않다’ 등 비판이 빗발쳐 해당 내용은 결국 삭제됐다. 

한편 지난 14일 윤 대통령은 고용노동부의 개편방안과 관련해 “입법예고 기간 중 표출된 근로자들의 다양한 의견, 특히 MZ세대의 의견을 면밀히 청취해 보완할 점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16일에는 “연장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며 “근로시간에 적절한 상한선을 제한하지 않은 것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발언하며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또다시 어긋난 노사 입장

근로시간 개편방안에 대한 노사 반응은 팽팽하게 엇갈렸다. 경제단체는 환영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 온 낡은 법 제도를 개선하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며 정부 개편방안을 지지하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정부가 근로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노사의 근로시간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 평했다. 전국경제인엽합회는 “이번 개편안이 기업의 업무효율을 높이고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반면 노동조합(이하 노조)을 위시한 노동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16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로사를 조장하는 노동개악이자 무책임의 극치”라며 개편안을 맹비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20일 개편방안 폐지를 요구하며 전면 투쟁을 선언했다. “과로사 인정 기준을 넘는 노동시간은 살인예비나 다름없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 고발도 예고했다. 

양대노총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하며 기업과의 상생을 강조한 MZ세대 역시 69시간 근로제에 대해선 행동을 같이했다. 만 15세부터 39세 노동자가 구성원인 청년유니온은 미래노동시장연구회와 고용노동부의 발표 후 논평과 규탄 성명을 제출했다. 24일 고용노동부와의 간담회에서는 개편방안에 대한 우려안과 요구를 제출했다. 청년유니온 김지현 정책팀장은 “국내 과로사 인정 기준이 주 63시간이다”라며 “과도한 연장근무 속에서 견딜 수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될지 직접 겪지 않아도 알 수 있지 않나”라고 한탄했다.

고용노동부가 근로시간 연장 보완책으로 내건 장기휴가 보장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우세하다.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도 공무원을 대상으로 못 쓰고 남은 연가를 최대 3년 동안 33일까지 사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종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A씨는 “33일은커녕 3일만 쉬어도 담당 업무가 사실상 마비되고 상부에서 눈치를 준다”며 “공무원도 함부로 못 쓰는 장기휴가를 사기업에서 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30인 미만 사업장 속 노동자와 실직 위기에 처한 취약노동자와 관련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기존 노동법과 52시간 근로제에서도 사각지대였던 이들을 보호할 장치가 전무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노사 간 합의로 근로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단결할 조직조차 부재한 이들에겐 사실상 그림의 떡이다. 김 팀장은 “300인 이상 기업의 노조 조직률은 49.2%지만 30인 미만 사업장은 0.2%에 불과하다”며 근로자대표자 제도에 대한 세부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실질적 ‘선택권’이 확보될지 의문”이라 우려를 표했다. 노상헌 교수는 “이번 개편방안은 노동계의 의사가 배제된 것으로서 노동계의 반대가 크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노동정책에서 노사 합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경제적으로도 비효율, 제도적 보완 필요

노동자 권리뿐만 아니라 노동경제학 관점에서도 이번 개편방안의 한계가 포착된다. 우리대학 경제학부 송헌재 교수는 “근로시간 유연성으로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는 정부의 설명은 이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라면서도 “산업 분야와 노사 관계에 따라 효용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일례로 제조업 분야에서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이 계절성을 가질 때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시기별로 다르게 적용하는 게 효율적이다. 

계절성 없이 꾸준한 생산량과 업무가 정해져 있다면 이번 개편방안은 크게 도움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어 송 교수는 “근로시간은 늘어나는데 늘어난 시간에 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유인이 없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기본 근로시간 40시간을 초과한 연장근로시간에 대해 기업은 추가수당을 지급해왔는데, 이번 개편방안은 근로자 입장에서 현재의 추가수당과 포괄임금제가 개선되지 못한 채 근무해야 하는 시간만 늘어났다는 평가다. 

고용노동부가 목표로 하는 근로자 삶의 질 제고와 기업의 혁신 성장 지원을 위해서는 이번 개편방안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까. 노상헌 교수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 문제가 최대 쟁점”이라며 “장기근로는 있는데 장기휴가는 없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비해 근로 현장에서 근로자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는지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리대학 경영학부 이춘우 교수는 “근로시간 문제를 갖고 다투며 생산활동에 지장을 주는 것은 기업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떨어뜨린다”며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사 간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 교수는 “정부의 역할은 안전 규제를 만드는 것”이라며 “노동시장 경직성 해소는 필요하지만 근로시간 연장 시 발생하는 위험 요소를 대비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장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대통령이 MZ세대 반발을 고려해 법안 재검토를 지시한 점이 유의미하다”라며 “청년 노동자와 직결된 이번 이슈에 관심을 갖고 대안을 제시하거나 비판하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해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임호연 기자 
2022630019@uos.ac.kr 

정시연 기자 
jsy4344381@uos.ac.kr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