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 2가 1억 2359만의 누적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리스트 TV 비영어 부문에서 2주 연속 1위에 올랐다. [더 글로리] 전 회차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는 복수, 즉 사적 제재다. 이 외에도 TV 드라마 [모범택시2], 디즈니+에서 영상화될 예정인 웹툰 ‘비질란테’ 등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콘텐츠는 무수히 공급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리스트에 오른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리스트에 오른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출처: 넷플릭스)

여러 콘텐츠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사적 제재는 콘텐츠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소재로 자리 잡으며 강렬한 충격을 선사하고 있다. 사적 제재를 다룬 콘텐츠에 대중적 관심이 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법의식을 반영한 해소제, 사적 제재

국가 형벌권에 의한 처벌은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헌법』 제27조 3항에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명시했지만 인력의 한계로 인해 재판은 물론 사건 처리 과정조차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20년 경찰에 1차적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이 이전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수사부서의 업무가 과중해지자 수사부서 기피 현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수사인력 부족 문제는 사건 처리 일수가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민 전반의 법의식 역시 부정적이다. 한국법제연구원의 「2021년 국민법의식조사연구」에 따르면 실제 법 집행에 관한 정서를 묻는 항목에서 ‘법은 분쟁을 해결한다’(61.3%)가 응답 비율이 가장 높았지만 ‘법은 힘 있는 사람의 이익을 대변한다’(60.7%)가 근소한 차이로 그 뒤를 이었다. 또한 현재 처벌 수준에 대해 대부분이 ‘처벌이 약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박천웅 교수는 “대중문화 콘텐츠 속 사적 제재가 인기를 끄는 것은 지연되고 제약된 사회 정의 실현에 대한 갈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사적 제재를 다룬 콘텐츠를 시청한 이들은 각자의 법의식이 반영된 반응을 보였다. 김동현(도사 22) 씨는 “법이 해결해 주지 못한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방식이 사적 제재라고 생각한다”며 “콘텐츠 속 인물들의 가해 및 피해 여부가 확실한 상황에서 가해자에게 속 시원한 복수를 행하는 것을 보며 일종의 대리 만족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가을(경영 21) 씨는 “콘텐츠에서 소재로 등장한 사건·사고를 볼 때 실제 사례가 많이 떠오른다”며 “우리나라의 범죄 처벌 수위가 낮다고 생각한 상태에서 콘텐츠를 보니 솔직히 통쾌한 느낌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했다”는 감상을 전했다.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소비자들에게 만족을 준 것이다.

사적 제재 콘텐츠는 규제의 대상?

현실과는 동떨어진 사적 제재 콘텐츠로 인해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고대사회에선 살인을 범한 자에 대해 사적 보복을 가하는 것이 법개념에 가장 부합하는 관습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국가에 형벌권이 이전됨에 따라 개인이나 사적 단체에 의한 형벌이나 제재가 금지됐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12조 1항과 『헌법』 제37조 2항 등을 통해 적법한 법률에 의해서만 처벌이 가능하다고 명시했다. 정의를 위한 것이었던 사적 제재가 사회적, 국가적 차원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행위로 변모된 것이다. 

박천웅 교수는 “사적 제재를 다루는 콘텐츠가 수용자에게 법치주의에 의한 정의를 지루하거나 지연된 정의로 간주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김지현 교수는 “사적 제재를 다룬 콘텐츠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사회 시스템을 실제보다 부조리하게 인식하거나 법적 체제에 대한 신뢰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다.

그럼에도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을 우려해 사적 제재 콘텐츠를 규제하기엔 한계가 있다. 사적 제재 자체는 위법이지만 사적 제재를 소재로 한 콘텐츠는 위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법치 실현에 대한 미디어 콘텐츠의 영향이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 김 교수는 “오늘날처럼 다양한 미디어에 노출되고 개별 미디어의 효과가 이전보다 줄어든 상황에서 미디어가 수용자들에게 특정 사상을 가르친다는 이론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송효종 교수 역시 “국가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전제하에 사법 체계가 미디어의 영향에 의해 붕괴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과도한 우려”라며 “실제로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욕망을 다루는 것이 예술 및 문화 콘텐츠의 역할”이라고 주장했다. 이가을 씨는 “일련의 사건들을 재구성해 사람들이 놓치고 있던 사안에 집중하게 하고 경각심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콘텐츠라고 생각한다”며 같은 의견을 전했다.

해결은 비판적인 수용으로부터

사적 제재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박천웅 교수는 “법사회학엔 ‘법은 사회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굽어진다’는 말이 있다”며 “자신이 생각하는 법의식에 비춰 정의로운 관심을 유지하는 것이 사법에 대한 신뢰를 견인할 수 있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송효종 교수 역시 “중요한 것은 대두된 문제의식이 콘텐츠로 휘발돼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형사사법체제의 부족한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합리적이고 적법한 노력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적 제재 콘텐츠의 사회학적 가치를 결정하는 주체는 콘텐츠 자체가 아닌 수용자다. 법적인 절차대로 정직하게 이야기를 풀어 간 TV 드라마 [로스쿨]은 ‘진실과 정의를 오로지 법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바 있다. 소재화된 사적 제재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진실과 정의를 법으로 좇겠다는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찬송 수습기자 
pcs31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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