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훈(국사 19)

최근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이하 전씨)의 행보가 화제가 되고 있다. 조부 전두환과 일가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에 많은 시민이 그를 응원했다. 더 눈여겨볼 점은 5.18 민주화운동(이하 5.18) 유가족과 광주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무릎 꿇고 사죄하는 전씨에게 유가족은 포옹으로 화답했다. 묘역 참배에 나선 전씨가 옷으로 묘비를 닦자 한 시민이 수건을 건네주기도 했다. 지난 2월 특전사동지회와 일부 5·18 공법단체가 화합 행사를 열겠다고 선언했을 때 광주 시민사회가 끓어올랐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이 달랐는지는 가해자의 행동에서 찾을 수 있다. 전씨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을 통해 지속해서 사죄의 뜻을 밝혔다. 광주에 도착한 후 “제 할아버지 전두환 씨가 5·18 학살의 주범”이라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히 명시하며 사죄했다. 필요할 경우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와 5·18 기념식 등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면 특전사동지회와 일부 5·18 공법단체의 화합 행사의 경우 책임과 사과가 부재했다. 진행한 행사의 제목은 ‘포용과 화해, 용서’로 화해와 용서에 있어 가해자의 사과가 아닌 피해자의 포용이 더 강조됐다. 가해자로서 책임은커녕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특전사 역시 피해자라는 논리가 튀어나왔다.

전씨와 특전사동지회를 향한 유가족과 시민들의 반응이 달랐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임을 인정하고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하겠다는 진솔한 사죄가 유가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점을 생각하며 우리 사회가 겪은 많은 아픈 순간을 돌이켜보면 한 가지 깨닫는 점이 있다. 많은 경우 사건 해결의 초점은 배상 문제에만 집중되는 경우가 많다. 진상 규명과 책임소재를 따져 정의가 실현되길 목소리에 일부 시민은 ‘지겹다’ 답한다. 더 심하게는 ‘더 많은 배상을 바라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동시에 피해자에게 용서와 망각이 강요된다. ‘이제 피해를 언급하지 말고 과거에 묻자’는 의미다. 이렇게 이뤄진 용서는 가해자에게는 면죄부와 함께 ‘죄를 망각할 자유’를 주지만 피해자에게는 또 다른 상처를 줄 뿐이다.

정의, 배상, 진실은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다. 유엔 인권이사회에 주제별 인권 침해 사례를 조사해 보고할 권한을 가진 전문가 중 ‘진실, 정의, 배상 및 재발 방지 보장 특별보고관’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안이다. 정당한 피해자의 권리보장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가해자가 책임을 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민들에게도 한 가지 의무가 있다. 가해자의 잘못과 피해자의 아픔, 즉 과거에 발생한 진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기억의 의무가 이행될 때 가해자는 책임을 피할 수 없고 피해자는 권리를 위해 계속 싸워갈 힘을 얻는다. 가해자가 책임을 다하고 피해자의 권리가 지켜질 때 ‘책임 있는 사과와 화해, 용서’가 이뤄질 수 있다. 그날이 올 때까지 함께 기억의 의무를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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