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밝은 화면 속 오가는 수십 번의 대화. 끝도 없이 움직이는 스크롤을 보고 있으면 그 시작이 어딘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디지털을 맛본 시대에서 편지지를 찾는 이는 드물고 엽서를 구하는 이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는 화면 안에 마음을 넣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럴 때면 기자는 엽서 위에 느린 마음을 적어 보내고는 한다. 펜촉에 짙은 마음을 눌러 담아 보낸 엽서는 그 속의 글씨를 한껏 번지게 하지만 마음은 번질수록 더 향기로워진다. 엽서의 크기, 모양, 그림은 모두 제각각이어도 퍼지는 마음의 향기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약 3200장의 엽서가 모인 곳, 연희동에 위치한 엽서 도서관 ‘포셋’에 방문했다.

포셋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연희동 우체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엽서의 공항인 우체국은 엽서의 집 포셋을 한층 특별하게 만들었다. 도착하자마자 작은 키의 얄따란 입간판이 보였다. 피로하지 않은 노란색 배경과 굵고 선명한 검은색 글씨는 공간의 담백함을 그대로 전해 주는 듯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곳에는 숱한 엽서들이 가지런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서관에 가득한 책들이 엽서로 바뀌는 상상으로부터 시작된 공간’이라는 설명이 딱 들어맞는 장소였다. 여느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사서도 상주하고 있었다. 엽서가 빼곡히 채워진 여러 개의 선반은 푸른 빛이 도는 은색으로 시원한 느낌을 자아냈다. 
 

▲ 기자가 고른 전서구 작가의 엽서 두 장
▲ 기자가 고른 전서구 작가의 엽서 두 장

이는 큰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엽서가 지닌 평온한 기운, 그리고 그곳에 머무는 여러 따스한 마음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졌다. 엽서뿐만 아니라 더 길고 깊은 마음을 담을 수 있는 편지지도 비치됐다. 한편에는 글을 쓸 수 있는 1인용 책상 5개와 기록과 추억이 되는 모든 것을 보관할 수 있는 기록보관소가 마련됐다. 기록보관소는 대여할 수 있는 한 달 동안 오롯이 개인의 것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작은 보관함의 문을 열 수 있는 이가 오직 그것을 간직한 사람뿐이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공간을 한차례 둘러본 후 엽서로 시선을 옮겼다. 선반을 가득 차지한 엽서는 겹치는 것 없이 저마다의 특성을 내보였다. 비슷해 보이는 엽서일지라도 미묘한 차이를 그려 내고 있었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곳에서 느긋이 엽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가 마침내 눈가에 머문 두 장의 엽서를 집어 들었다. ‘전서구’라는 예명을 가진 김관우 작가가 디자인한 ‘사계의 향기’와 ‘사랑의 형태’였다. 청록 배경에 띄워진 하얀 돛단배가 보이는 사계의 향기는 잔잔한 봄과 청량한 여름, 고요한 가을과 서늘한 겨울을 단번에 떠오르게 했다. 계절이 품고 오는 고유한 향기를 좋아하는 기자로서는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튤립의 형상이 보이는 사랑의 형태는 곡선으로 표현한 꽃과 직선으로 그린 잎을 통해 둥글고도 각진 사랑이란 감정을 잘 담아낸 듯했다. 

엽서를 구매한 후 책상에 앉아 펜을 쥐었다. 책상 위에 놓인 메모지에 고민의 흔적을 남기며 한참을 보낸 끝에 작가의 마음 위에 기자의 마음을 포개어 향기를 더했다. 두 겹의 마음이 담긴 엽서는 귀갓길에 포근한 잔향을 더해 줬다. 기자에게 닿는 향이 엽서를 받게 될 이에게도 온전히 전해지기를 바라며 걸음을 이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이 향하는 어느 날 포셋에 방문해 보기를 권한다. 빠르지 않아도 되는, 잔잔한 마음도 있으니 말이다.


박찬송 수습기자 
pcs31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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