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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우리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을까. 더 이상 세상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21세기의 우리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완전히 같은 사람일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다. 『고요한 우연』 속 대부분의 서사는 온라인에서 흘러가지만, 이야기 속 인물들은 불안과 고독을 극복하고 끝내 오프라인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만남과 선의가 우스워진 현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배척하며 살아가는지 물음을 던진다. 김수빈 작가는 그 선연한 의문과 인간의 가장 당연하고도 강한 힘인 다정함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편집자주-

함께 있어도 외로운 우리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어느새 한 달이 넘었다. 다들 함께인 것 같지만 우리는 정말 함께 있는 걸까. 눈앞에서는 친절한 모습의 관계가 뒤를 돌면 다른 모습으로 변해버릴지 두렵지는 않은가. 『고요한 우연』은 이런 관계들을 서술한다. 모두와 사이가 좋지 않은 ‘고요’와 그를 동경하는 ‘수현’은 SNS를 통해 친구가 된다. 

현실에서 고요는 수현에게 모질게 대하지만 메신저를 통해서는 한없이 다정하고 여리며 솔직하다. 수현은 학교에서도 그와 우정을 쌓고자 하지만 달의 앞면과 뒷면처럼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이는 고요와의 관계는 결코 하나로 통일되지 못한다. 고요는 들키고 싶지 않던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던 이가 수현임을 알게 되자 화를 내며 우린 가까워지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매개체가 아닌, 또 다른 세상으로 도약하고 있다. 오프라인과의 단절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나를 꾸릴 수 있는 세계 말이다. 두 세상의 공통점은 우리 모두 따뜻함을 찾아 헤맨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우리가 있는 모든 곳은 인정받지 못하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을 전시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위로를 찾아 도처를 방황하는 유랑자들로 가득하다.

48분과 달의 뒷면

지구인들이 평생 볼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달의 뒷면이다. 우리는 보통 달에 착륙했던 아폴로 11호의 탑승자로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을 떠올린다. 하지만 탑승자가 3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수현은 고요를 좋아하는 듯 보이는 ‘우연’과 점점 가까워진다. 시작은 SNS를 통해서였지만 함께 괴롭힘을 당하는 고요를 도와주며 현실에서도 친밀감을 느낀다. 

수현은 우연의 SNS를 통해 아폴로 11호의 조종사였던 마이클 콜린스를 알게 된다.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동안 마이클은 우주선에 남아 달의 궤도를 돌며, 오롯이 혼자서 달의 뒷면을 바라봤다고 한다. 궤도를 도는 48분 동안 마이클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역사 속에서 마이클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궁금해졌다. 

이야기 속 수현은 이런 마이클과 무척 닮았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아닌 ‘평범한’ 학생으로 아무 데도 속하지 않는다. 수현은 신념과 욕망은 분명하지만 실천할 용기는 적다. 대신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도록 마음을 쏟는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라고 말하며 말이다. 고요를 괴롭히는 무리와 공개적으로 싸우지는 않지만 매일 아침 가장 먼저 등교해 더럽혀진 고요의 자리를 치운다. 자신이 누구보다도 평범하다고 말하지만, 수현의 ‘평범’은 결코 작은 마음으로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은 결국 평범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한다. 반짝반짝 빛나서 눈에 띄는 것들에 시선을 빼앗겨 이목을 끌지 못하는 것들 말이다. 어쩌면 정말 특별한 것은 너무 당연시되는 솔직함과 다정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냉소주의의 시대에서 사랑을 지키려면

인간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것이 필연이든 우연이든 말이다. 가족, 연인, 친구 등 많은 사람이 우리의 인생을 스쳐 지나간다. 모든 관계의 시작은 관심과 호기심, 그리고 사소한 선의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특별하지 않은 아주 보통의 마음들이 서로 맞닿는 순간은 그저 우연일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길고양이와 고요에게 전하는 선의가 겹쳐 우연과의 관계가 형성됐다. 둘의 관계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분명한 의도와 행동에 의해 차곡차곡 이뤄졌다. 온라인에서 연결된 친구들과의 경험을 통해 수현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용기를 배운다. 도달하려는 목표의 상실로 힘들어하던 우연이 사라진 날, 수현은 모든 것을 집어던지고 무작정 우연을 찾으러 간다. 그리고 도착한 하얀 백사장에서 수현은 우연을 만난다. 그리고 손을 잡는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서로를 마주한 둘은 지금까지 서로가 내비쳤던 결핍과 성장통을 수용하며 함께 일상으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냉소주의의 시대다. 길거리에서 낯선 사람이 건네는 말들을 차단하고, 옆집 사람의 조그만 소음도 참지 못한다. 이웃 간 정은 사라지고 사생활이 침해당하는 건 아닐지 걱정한다. 상대에게 쉽게 실망하고 또 미워하고, 다그치기도 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태양일 것이다.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시키는 것 또한 사랑과 다정이다. 사람은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발전한다는 말을 믿는다. 

언 땅이 녹고 싹을 틔우는 봄이다. 인간관계에 상처받고 모든 것을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밤, 특별하지 않은 마음들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 조용히 알려주는 『고요한 우연』을 읽어보면 어떨까. 외로움에 시달리고 냉소주의에 슬퍼하는 이들의 성장통에 수현의 평범한 따스함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신연경 기자 
yeonk486@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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