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 옷차림으로 여름을 알고 찬 새벽 내음으로 겨울을 알 듯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계절의 지표가 있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봄 노래, 새내기의 설렘이 묻어 나는 풋풋한 교정, 오랜 시간 하늘을 지키는 태양. 무엇보다 꽃잎 날리는 거리에 나들이 온 사람들을 보며 봄이 왔음을 실감하곤 한다. 안온한 봄에 따스한 햇살 아래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서울대공원’이다. 가족부터 연인까지 다양한 이들이 찾은 서울대공원에서 직접 봄을 느껴 봤다.

동물을 마주해 ‘봄’

서울대공원 입구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자 봄을 따라온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는 서울대공원의 명물 ‘코끼리열차’ 매표소가 있었다. 넓은 서울대공원을 온전히 눈에 담기 위해 체력을 비축하며 이동할 수 있는 코끼리열차를 타기로 결정했다. 웃는 얼굴로 맞이한 열차는 호수와 바람, 그리고 벚꽃이 반기는 길을 달려 제1정류장인 서울동물원(이하 동물원)에 정거했다. 

동물원에 입장해 스카이리프트 경로와 겹치는 호랑이길을 거닐었다. 동물원 곳곳에서는 아이들이 부르는 ‘산토끼 토끼야’,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와 같은 익숙한 노랫말이 들려왔다. 10살 자녀와 함께 서울대공원을 찾은 안대환(44) 씨는 “꽃을 좋아하는 아내와 동물을 보고 싶어 했던 아이랑 나들이를 왔다”며 “마스크 없이 가족들과 웃는 얼굴로 마주 볼 수 있어 좋다”고 전했다. 

인파에 자연스레 합류해 동물원 곳곳을 구경했다. 로랜드고릴라, 침팬지 등이 있는 유인원관과 원숭이, 악어, 뱀이 있는 동양관을 지나 맹수사에 도착했다. 맹수사에는 용맹의 상징인 시베리아 호랑이, 검은 매화무늬의 표범, 귀와 꼬리 끝이 검은 스라소니 등이 자리했다. 나무다리 건너기를 반복하던 표범을 제외하고는 맹수사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무색하게 햇살 아래 가만히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동물 소개를 찬찬히 읽으며 맹수사 동물들의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이들은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의 국제 거래를 제한하는 CITES 협약에서 정한 보호 대상 동물이었다. 자연의 질서에 인위를 더한 결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동물원 속 모든 동물에게도 평안한 봄이 찾아오기를 바란 순간이었다.
 

▲ 밥을 먹고 있는 그물무늬기린들
▲ 밥을 먹고 있는 그물무늬기린들

식물을 느껴 ‘봄’

맹수사 관람을 마치고 동물원 안에 있는 식물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1985년 개원한 서울대공원 식물원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인 창경원 식물원의 식물을 1986년에 옮긴 것이다. 2006년에는 국가 주도하에 설립됐다가 폐관된 남산식물원의 식물을 들여오며 우리나라 식물원의 계보를 이었다. 식물원 도처에는 각각의 식물이 언제, 어디에서 온 식물인지를 알리는 푯말이 꽂혀 있었다. 

청계산 자락에 오랜 시간 뿌리 내린 서울대공원 식물원의 전시온실은 식물의 특성과 자생지 환경에 따라 △사막관 △열대1관 △열대2관 △온대관 △식충식물관으로 나뉜다. 키가 크고 잎이 두꺼운 고무나무, 바나나나무, 파파야 등이 즐비한 열대1관에서는 우리나라의 여름을 뛰어넘는 또 다른 계절을 들여다볼 수 있다. 눈앞에 펼쳐진 초록을 헤치며 계단에 올라 중앙연못을 바라보니 마치 정글 한가운데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온대관에는 친숙한 동백나무, 하귤나무, 무화과나무 등이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받고 있었다. 동백나무는 익히 알던 붉은 꽃이 없는 모습이었지만 연한 갈색의 줄기와 가지, 짙은 녹색의 광택이 나는 타원형 잎만으로도 온대 식물의 따스함이 충분히 느껴졌다.  

서울대공원 식물원은 전시온실 외에도 △식물표본전시실 △식물세밀화전시실 △식물도서관 등의 식물표본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 여러 방법으로 식물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심신의 긴장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다. 동생과 식물을 관람하던 김동휘(8) 군은 “초록 식물을 보니까 마음이 편해졌다”는 감상을 남겼다. 서울대공원 식물원 조경과 채영하 담당자는 식물을 관람하는 바람직한 자세에 관해 “호기심을 가지고 존경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며 “식물의 특징과 생태를 적극적으로 알아봄으로써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깨닫고 관람 예절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식물문화콘텐츠 보급을 위해 오는 14일부터 숲해설가를 동반한 식물해설 프로그램을 상시 운영할 에정”이라며 식물원 방문을 권했다.
 

▲ 식물이 우거진 열대1관을 관람하는 사람들
▲ 식물이 우거진 열대1관을 관람하는 사람들

테마가든에 머물러 ‘봄’

동물원 외부에 위치한 테마가든에 가기 위해 벚꽃나무가 화려하게 펼쳐진 낙타길을 내려갔다. 테마가든은 맑은 호수를 배경 삼아 △장미원 △모란·작약원 △휴(休)정원 △고향정원 △어린이동물원을 관람할 수 있는 장소다. 입구 앞에는 커다란 벚꽃나무가 서 있었다. 분홍 꽃잎이 가득 매달린 가지 위를 지나는 노란 스카이리프트와 그 배경이 되는 파란 하늘은 서로 다른 색채를 뽐내며 봄기운을 전했다.

아쉽게도 테마가든의 모란과 작약, 장미 등은 아직 꽃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향정원 벤치에 앉아 향수를 느끼는 노부부,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친구와 연인들, 반려견과 호숫가를 달리는 보호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들은 앞서 방문한 동물원, 식물원과는 사뭇 다른 테마가든만의 고요하고 잔잔한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아들과 동물원을 둘러본 후 테마가든을 찾은 김정훈(39) 씨는 “휴식차 테마가든에 들렀는데 경치가 뛰어나고 느긋하니 좋다”고 말했다. 연인과 함께 낚시 의자에 앉아 호수를 전망하던 A(31) 씨는 “서울대공원의 호수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한적해서 좋다”며 간만에 되찾은 여유에 만족을 표했다.

추억을 선사해 주는 ‘봄’

사람들이 봄을 떠올리는 방법은 가지각색이다. 누군가에게는 나들이에 들뜬 마음 같은 활기찬 시작의 계절이 되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직 꽃 피우지 못한 동백나무 같은 망설임과 인내의 계절이 된다. 또한 봄은 변하지 않고 흐르는 호수 같은 일상의 계절이기도 하다. 다시금 찾아온 봄에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서울대공원에서 추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박찬송 수습기자 
pcs31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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