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현 문화부 정기자
정재현 문화부 정기자

‘스스로를 비웃다’라는 뜻을 가진 ‘자조’는 요즘 청년을 잘 표현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댓글과 주변에서 종종 들리는 농담들은 자기 비하를 함유하고 있다. 

외모가 잘난 소수의 사람을 보며 제 외모를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하며 성공한 소수의 사람을 보며 제 처지를 희화화한다. 자신의 외모적 콤플렉스, 부족한 재력을 농담으로 만들어 유쾌하게 넘기고자 하는 것이다. 기자가 소속된 국어국문학과는 “미래는 없다!”라는 표어를 새내기 배움터에서 내걸었다. 인문학 전공 학생의 취업이 타 전공보다 힘든 문제를 자조한 것이다. 

또 군인 처우 관련 문제로 논란이 일자 군인들은 스스로 노예라 부르며 자조했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거지방’도 마찬가지다. 청년들은 진짜 거지가 아님에도 스스로 거지라 낮잡아 부르고 과장되게 궁상떨며 자조한다. 

이처럼 자조는 문제를 유쾌하게 만든다. 유쾌함은 사안이 가진 무게를 줄인다. 누군가는 문제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약간의 가벼움조차 없다면, 문제가 주는 불안은 너무 무거워진다. 

과도하게 무거워진 불안은 좌절과 무기력을 유도한다. 유구한 인간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포기의 대가는 대부분 몰락이었다. 청년은 스스로 깎아내리는 한이 있더라도 조금의 가벼움을 찾으려 한다. 어깨를 짓누른 불안의 무게에 눌려 무릎 꿇지 않기 위해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노력하고 고민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청년이다. 그러나 자조가 실패의 합리화가 되면 안 된다. 유쾌한 가벼움과 무책임한 가벼움은 판이하다. 현세대의 청년은 과연 어느 행보를 밟을지 궁금해진다. 

여태 그래왔던 것처럼 한 단계 더 올라설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주저앉을 것인가? 현실에 부딪혀 미끄러져 버릴 것인가. 기자도 한 명의 청년이기에, 우리 사이에 만연한 자조가 유쾌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고 있다.


정재현 문화부 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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