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의 서재

과학기술의 발전은 질병이나 장애 없는 몸, 갈등 없는 세계 같은 긍정적 미래를 꿈꾸게 한다. 포스텍에서 화학을 공부한 작가 김초엽은 과학이론과 SF적 상상력을 결합하여 미래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펴냈다. 

7편의 소설을 통해 작가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구현될 미래의 시공간을 열어젖혀 독자를 초대하고, 그곳에서 ‘지금 여기’를 돌아보게 한다. 마치 우주선을 타고 외계 행성에 도달한 인류가 그곳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것처럼. 

미래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지금 여기’의 현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잘 보이지 않는 우리의 현실이다. 작가는 우리가 꿈꾸는 갈등 없는 매끄러운 세계의 이면을 끈질기게 응시하고 일상에 잘 등장하지 않는 누군가를 환상성을 통해 드러낸다. ‘환상성’은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는’ 것을 보이도록 만드는 장치라고 철학자 로지 잭슨은 말한다. 그러면, 분명히 있지만 감춰진 존재, 우리의 세계에 갈등과 불편을 불러오는 존재, 그들은 누구인가. 

작품 속 중심인물들은 장애인, 이주민, 비혼가족 등 우리 사회의 타자적 존재들이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 어떤 방식으로 가려지고 드러나는지 보여준다. 이주민이자 장애가 있는 여성과학자는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다음 세대를 결함 없는 인류로 구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신인류의 탄생은 세계를 신인류의 공간(중심)과 그곳에서 밀려난 인간들의 공간(주변)으로 나눌 뿐이다. 「스펙트럼」의 주인공은 우주 탐사 중 조난을 당한 행성에서 최초로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지만, 그 행성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 함구한다. 확장욕망에 들뜬 지구인들에게서 외계생명체를 보호하고 싶기 때문이다.

 「관내분실」에는 한 인간이 평생 동안 남긴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재구성하여 보관함으로써, 죽은 후에도 그들의 생각(마인드)을 간접적으로라도 만날 수 있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등장한다. 주인공의 엄마도 죽은 후 ‘도서관’에 ‘마인드’가 보관되지만, 생전에 우울증과 가족에 대한 집착을 보였던 엄마를 가족들은 찾지 않는다. 주인공은 임신으로 인해 사회에서 자리를 잃어가게 되자, 비로소 엄마의 우울, 곧 엄마를 존재의 소멸로 몰아간 것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감정의 물성」은 감정을 대하는 현대인들의 태도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부정적 감정을 신속히 처리해야 할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감정이 없는 삶은 과연 인간적인 것인가.

이렇게 이 책 속에는 타자에 대한 다양한 질문이 담겨있다. 작가는 목소리 없는 타자들을 우리의 일상 위로 끌어올리고, 그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우리의 시선까지 함께 드러낸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 프로젝트로 가족들을 모두 새로운 행성(슬렌포니아)으로 보낸 노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많은 지구인들이 당시 가장 가까운 외계 행성으로 알려진 슬렌포니아로 이주해 정착했지만, 다른 우주와 더 빨리 접속할 수 있는 방법이 발견되자 행성 간 교류는 곧 중단된다. 지구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우주로의 확장뿐이었기에 더 효율적인 방법이 발견되자, 슬렌포니아와의 접속은 끊기고 그곳의 이주자들은 잊힌다. 

노 과학자는 영원히 중단된, 슬렌포니아로 가는 우주선을 끈질기게 기다리는 삶을 살아간다. ‘그만 잊으라’는 권고에도 끝내 이주자들을 기억하려는 그녀의 몸부림은 지구인들을 불편하게 하고, 급기야 그녀는 지구인들에게 ‘치워져야 할’ 존재가 된다. 

노 과학자를 향한 지구인들의 시선은 우리 사회의 일면과 놀랄 만큼 닮아있다. ‘이제 그만 잊자’는 목소리. 잊지 못한 이들을 향해 쏟아지는 ‘지겹다’는 반응. 그러나 누군가는 그녀처럼 끝끝내 말할 수 없는 이들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세월호 9주기, 4.19, 장애인의 날을 지나며 4월이 가고 5월이 왔다. 다시 찾은 활기찬 봄, 이 책을 통해 타자의 목소리에 한 번쯤 귀 기울이는 봄날이 되면 좋겠다.


제목|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저자| 김초엽
출판| 허블, 2019 
중앙도서관 청구기호| 813.7 김884ㅇ 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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