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티 사 먹고 싶은데 돈이 없을 때 꿀팁’은 카페 용기 하단에 검은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다. 최근 SNS에서 이런 ‘거지방’ 발 절약 유머가 인기를 얻으며 거지방이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일 기준 카카오톡 오픈채팅에 거지방을 검색하면 셀 수 없이 많은 거지방을 찾아볼 수 있었다. 100명 이상이 가입한 거지방부터 10명 남짓한 인원으로 구성된 거지방까지 그 규모는 다양했다. 아이돌 팬덤 거지방, 대학교별 거지방, 지역별 거지방 등 특정 소속의 사람들이 모인 거지방도 있었다. 청년들 사이에서 거지방은 이제 하나의 주요한 절약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소비지상주의에서 절약지상주의로

불과 몇 년 전까지 청년층은 절약과 거리가 멀었다. “한 번 사는 인생 후회 없이 즐기자”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준말 ‘YOLO’와 힙합에서 부를 과시할 때 쓰는 용어 ‘FLEX’가 대표적인 청년의 소비문화였다. 과거 YOLO를 지향했던 김민성(24) 씨는 “20살 때 SNS에 자랑하는 맛으로 비싼 것을 많이 사 먹고 다녔다”며 “아끼기보다는 그 순간 만족하는 것에 아낌없이 돈을 썼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물가의 대폭 상승과 함께 경기 불황이 이어지자 청년들은 절약을 지향하기 시작했다. 이에 구두쇠처럼 인색한 ‘짜다’와 ‘재테크’의 합성어 ‘짠테크’를 활용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특히 고정 지출을 최대한 절약하는 ‘무지출 챌린지’와 외식 지출을 줄이기 위한 ‘냉장고 파먹기’는 큰 인기를 끌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무지출 챌린지와 냉장고 파먹기 해시태그를 가진 게시물은 지난 4일 기준 합계 15만 개가 넘었다. 무지출 챌린지에 도전하고 있는 정성민(21) 씨는 “일하고 있는 식당에서 주는 밥을 챙겨 먹고 남는 식재료를 허락받고 집에 가져와 식비를 절감한다”고 이야기했다.

앱과 재테크의 합성어인 ‘앱테크’ 사용도 증가했다. 특히 매달 30만원까지 자유롭게 저금하고 연 최고 5%의 금리를 적용받는 토스 뱅크의 상품 ‘굴비 적금’의 인기는 대단했다. 토스 뱅크에 따르면 굴비 적금 누적 계좌 개설 수는 출시 이틀 만에 5만 6천 계좌를 넘어섰다. 

▲ ‘서울시립대학교 거지방’ 오픈채팅 참여자들이 이모티콘 지출을 말리고 있다.
▲ ‘서울시립대학교 거지방’ 오픈채팅 참여자들이 이모티콘 지출을 말리고 있다.

또한 걸음 수와 과제 수행으로 하루 최대 140원을 받을 수 있는 ‘토스 만보기’는 지난 2021년 8월 46만이었던 누적 사용자 수가 지난해 5월 기준 4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흥행했다. 기프티콘 거래 앱도 앱테크로 적극 활용된다. 앱을 통해 판매자는 선물 받은 기프티콘을 일정 조건에 맞춰 현금화할 수 있었고 구매자는 원하는 기프티콘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2월 온라인 쇼핑 동향」에 따르면 기프티콘 거래 앱 ‘이쿠폰서비스’의 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약 30% 증가했다. 

청년 소비자는 가격 대비 성능 효율이 좋은 ‘가성비’ 상품을 찾고 있다. 지난해 6월 홈플러스가 출시한 ‘당당치킨’과 9월 롯데마트가 선보인 ‘비빔밥 도시락’ 등 유통업계는 가성비 상품들을 줄줄이 선보이고 있다. 특히 가성비가 좋다는 뜻의 신조어 ‘혜자스럽다’를 만든 GS25의 ‘김혜자 도시락’이 지난 2월 6년 만에 재출시됐다. 김혜자 도시락은 재출시 이후 약 두 달 동안 누적 판매량 400만 개를 넘어섰다. 김혜자 도시락의 인기와 함께 GS25 도시락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70% 증가했다. 우리대학 인근 GS25 점주 A(45) 씨는 “젊은 사람들은 김혜자 도시락처럼 가성비가 좋거나 할인 혜택을 적용받는 상품을 많이 산다”고 전했다. 

청년 소비자 사이에서 절약이 대세가 되자 자연스럽게 절약에 관해 소통하는 커뮤니티 ‘거지방’이 생겼다. 인하대학교 문화콘텐츠문화경영학과 백승국 교수는 “과거에도 서적을 통해 절약에 대해 공유하곤 했지만 매체 발전에 따라 더 공개적이고 소통하기 편한 채팅 커뮤니티로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거지방을 톺아보자

각각의 거지방은 지출과 관련된 규칙이 존재했다. 여러 거지방에서 공통으로 보인 규칙은 프로필 옆에 지출 금액을 적는 것이었다. 지출을 계산하는 범위는 일주일부터 한 달까지 각 거지방마다 조금씩 달랐다. 또한 대부분의 거지방에서 사람들은 상품과 가격을 적어 지출을 보고했다. 몇몇 거지방은 지출 인증 사진을 올리는 규칙도 있었다.

거지방 속 대화는 다른 사람의 지출에서 시작됐다. 사람들은 과소비한 사람을 향해 장난 섞인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누군가 “파리바게뜨 빵-2400”이라고 지출을 알리자 “부르주아다”, “죽빵이나 먹어라”라는 재치 있는 잔소리가 잇따랐다. 아직 소비하지 않았지만 소비 욕구를 드러낸 부분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실제로 “호텔 욕조에서 목욕하고 싶다”는 말에 “빨간 고무 대야 사서 목욕하세요”라는 농담이 이어졌다. 이처럼 거지방이 인기를 얻었던 이유는 유머 넘치는 잔소리였다. 

지출에 대해서 실없는 농담만 오간 것은 아니었다. 지출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팁을 공유하기도 했다. 대용량 식재료로 식비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거나 청년내일저축계좌 등 청년 대상 혜택을 알려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서적을 무료로 읽을 수 있는 사이트를 공유하는 등 다양한 부분에서 절약할 수 있는 팁이 나왔다. 서울시립대학교 거지방에서 활동 중인 B(20) 씨는 “몰랐던 절약 팁이나 혜택을 알 수 있어 유용하다”고 평가했다. 

청년들이 거지방에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800명 이상의 대규모 거지방에서 활동하는 문서진(25) 씨는 “평소 소비가 많다고 생각해 절약의 필요성을 느끼던 중 거지방에 대해 알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소기의 목적을 가지고 거지방에 들어가는 청년도 있었다. 직장인 거지방에 속한 이정수(29) 씨는 “빚이 조금 있어 하루빨리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경각심을 가지고자 입장했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거지방에서 절약을 중심으로 연대하고 있다. 단국대학교 심리치료학과 임명호 교수는 “거지방은 힘든 현실에 놓인 청년층의 자구적인 노력을 보여주는 문화 행동”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거지방은 절약의 부담을 덜 수 있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진지하게 절약에 대해 논의하기보다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부담을 유쾌하게 더는 역할을 한다.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이은희 교수는 “거지방은 마치 챌린지처럼 절약의 부담을 조금 가볍게 받아들이게 하는 놀이문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절약 자체가 주요한 소비문화가 된 지금 청년들은 앞으로 어떤 새로운 문화적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정재현 기자
kai714@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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