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을 선택지는 딱 하나뿐이었어요.” A(28) 씨는 대기업 취직을 목표로 하던 과거를 뒤로 하고 공인회계사 준비에 한창이다.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더라도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A씨의 하루는 오로지 합격을 목표로 계획된다. 최근에는 수면 시간과 식사 시간까지 줄여가며 시험에 매진한다. 전문직에 ‘영끌’하는 것은 A씨뿐만이 아니다.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 청년들은 구직 시장에서 전문직 시험장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청년들을 사로잡은 ‘전문직 열풍’, 그 면면을 들여다봤다.
 

인산인해 이룬 전문직 시험장

전문직 열풍을 보여 주는 것은 역대 기록을 경신하는 응시자 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월 제58회 공인회계사 제1차 시험 응시자는 1만 3733명으로 역대 최다 인원이 응시했다. 이는 현행 시험체제가 처음 실시된 2007년 제42회 공인회계사 제1차 시험 응시자인 4138명에서 약 3배 증가한 수치다. 

수도권 내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는 임효재(21) 씨는 “안정적인 직장은 사라지고 안정적인 직업만이 남을 시기가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이른 시일 내로 공인회계사 시험 준비를 시작하고자 한다”고 이야기했다. 공인회계사와 함께 전문직의 대표 격으로 거론되는 세무사의 인기 또한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실시된 제59회 세무사 제1차 시험에는 5년 전인 지난 2018년 제55회 세무사 제1차 시험 응시자 수보다 3583명 많은 1만 2554명이 응시했다.

의과대학(이하 의대)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 역시 늘고 있다. 지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만점자 3명 역시 전원 의대에 입학했다. 의대를 목표로 하며 학교와 직장을 그만두거나 의대에 합격할 때까지 N수를 이어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고려·연세대의 중도이탈한 자연계 학과 학생은 1421명으로 지난 2020년 893명에서 59.1% 증가했다. 

같은 기간 444명에서 453명으로 거의 변화를 보이지 않은 인문계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사교육계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의대반’도 연이어 개설되고 있다. 주로 수학 과목을 선행 학습하는 고학년 아이들로 구성되며 최근에는 지역인재특별전형을 겨냥해 강남 대치동을 넘어 지방으로도 확산 중이다.

전문직 열풍은 정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당시 공무원 및 국가공인 자격시험 제도 개선 공약을 발표했다. 제58회 세무사 제1차 시험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해 합격률이 16.64%에 그친 데 대한 논란이 일자 전문직 수험생들의 표심을 공략하고자 한 것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의 법학적성시험(LEET) 지원율 역시 기존 수치를 상회했다. 2023학년도 법학적성시험에 1만 3196명이 응시하며 역대 최다 기록을 남겼다.

불확실성이 빚어낸 불가피한 선택

치열한 경쟁과 막대한 비용에도 전문직을 희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고용통계조사 인덱스북 2021」을 보면 구직자의 직업 선택 기준으로 ‘경제적 보상(4.09점)’에 답한 이가 가장 많았고 ‘고용안정(3.97점)’이 그 뒤를 이었다. 현재 취업자의 직업 선택 시 중요 기준 역시 ‘경제적 보상(3.98)’이 최고치로 집계됐다. 고소득과 안정적인 직장이 직업 선택의 우선순위로 자리한 상황에서 고소득을 얻을 수 있는 전문직의 선호도도 함께 올라갔다. 

지난 2019년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사, 변호사, 세무·회계사 등 전문직 19개 직종의 평균 연봉은 약 7천 477만원 수준이었다. 같은 해 직장인 평균 연봉인 3천 708만원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며 대기업 평균 급여인 8천 139만원에는 살짝 못 미쳤다. 

공무원에 준하는 고용안정성 역시 전문직 열풍의 또다른 이유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작성한 「정년제도의 정책과정: 한국과 일본의 비교 사례 분석」에 따르면 이번해 직장인 평균 퇴직 시기는 49.3세로 2012년 53세보다 4년 앞당겨졌다. 반면 완전히 노동활동을 그만두는 연령은 평균 72.3세로 집계돼 퇴직 연령과 20세 이상 차이가 났다.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노동 환경이 불안해지면서 면허만 있다면 장기적이고 유연한 노동이 가능한 전문직의 장점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우리대학 경제학부 송헌재 교수는 “직업 선택의 다양성은 높아졌지만 고용 안정성, 평균 소득 등 직업의 안정성은 그만큼 낮아졌다”며 “전문직을 바라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불확실성 속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영위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업시장 트렌드 변화도 전문직 열풍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장기간의 경제 침체로 대기업이 신입 공채를 줄이고 경력직을 모집하는 것으로 채용 방향을 변경하자 입사 난이도는 더욱 상승했다. 지난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2022년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을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대기업 중 62%는 하반기 신규채용 계획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신규채용 인재에서도 35.8%는 경력직을, 67.9%는 이공계 졸업자를 고용하겠다고 밝혀 경력과 계열에 따른 채용 편중 현상이 두드러졌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 신종 고소득 플랫폼 직장마저 이공계 위주로 구성되는 상황이다. 중소기업은 어떨까. 통계청의 「2021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에 의하면 중소기업 평균소득은 월 266만원으로 대기업 평균소득인 월 563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평균소득의 전년 대비 증가율 또한 대기업은 6.6%였지만 중소기업은 2.9%였다. 즉 양질의 일자리에서 소외된 신입·비이공계 인재들이 전문직의 문을 두드린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논문 「청년기 일자리 특성의 장기효과와 청년고용대책에 관한 시사점」에 의하면 대졸자의 경우 첫 일자리의 기업규모, 고용형태, 하향취업 여부는 향후 개인의 노동시장 성과에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즉 경력 초기에 쌓은 낮은 수준의 업무 경험이 인적자본 축적에 큰 도움이 되지 않거나 이직 가능성을 낮추는 오점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면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공인노무사 시험을 준비 중인 우리대학 학부생 B(25) 씨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전전하고 싶지 않다”며 “현재로서는 합격만이 살길”이라고 말했다.

전문직 광풍의 그림자

이러한 ‘전문직 열풍’을 두고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문직 시험의 내용이 AI 등장 등 급변하는 사회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기에 합격하지 못한다면 수험 지식의 활용도가 낮다는 주장이다. 송헌재 교수는 “합격하지 못할 경우 수험 기간에 쌓은 지식을 사용할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며 “활용되지 못할 지식에 큰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 지식마저도 후일에는 감가상각돼 가치가 감소하니 수험생 입장에서는 위험 부담이 높은 선택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전문직 준비로 정상적인 생활이나 노동이 어려워지는 것 역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측면에서도 큰 손실이다. 지난 2016년 헌법재판소는 2016헌마47 결정 등에서 변호사시험의 응시 기간과 횟수를 제한하는 『변호사시험법』 제7조가 위헌이 아님을 밝혔다. 변호사시험에 무제한 응시함으로 발생하는 인력 낭비, 응시 인원의 누적으로 인한 시험 합격률 저하 및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육 효과 소멸 등을 방지하고자 하는 공익이 더 중대하다는 근거였다.

전문직 열풍으로 인한 사교육 과열로 교육시장이 왜곡될 위험도 존재한다.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로 밝혀진 지난해 사교육비 총액은 약 26조원으로 이는 지난 2021년에 비해 약 2조 5천억원 증가한 것이다. 인당 사교육비도 41만원으로 집계돼 23만 6천원이었던 10년 전보다 거의 2배 상승했다.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은 약 2900만원에서 4200만원으로 70% 상승해 소득수준에 비해 과열된 사교육 시장 상황을 보였다.

‘온전한’ 직업선택의 자유

전문직 열풍으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직업 선택이 다양해질 수 있도록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개인 역시 전문직 열풍에 휩쓸려 비판적 사고 없이 시험에 뛰어드는 일을 피해야 한다. 

송헌재 교수는 “현재 전문직 시험 선발 정원이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춰 봤을 때 적절한지 파악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의 책임을 강조했다. 동시에 “전문직이 진정 스스로에게도 메리트가 있는 것일지 한 번쯤은 의심해 보고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야 한다”며 청년들에게도 현명한 선택의 필요성에 대해 조언했다. 노동시장의 균형점을 되찾기 위해 개인과 사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찬송 수습기자
pcs312@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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