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무원 대신 지하철역에서 안전문 수리를 했던 사회복무요원, 복지관에서 고강도 업무에 너무 고통스러워 잠도 못 잤던 사회복무요원, 이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노예입니까?” 노동자의 날 하루 전, 노동자지만 노동자가 아닌 이들이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이하 병무청) 앞에서 부조리를 고발하고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소리를 높였다.
 

▲ 노조원들이 사회복무요원 10대 요구사항 판넬을 들고 발언을 이어나가고 있다.
▲ 노조원들이 사회복무요원 10대 요구사항 판넬을 들고 발언을 이어나가고 있다.

상황 개선 노력에도 돌아온 건 ‘사회부적응자’ 낙인

지난달 30일 사회복무요원 노동조합(이하 노조)이 주최하는 ‘제1회 사회복무요원의 날’ 기자회견이 병무청 앞에서 열렸다. 기자회견은 병무청 경내에서 진행 예정이었으나, 병무청은 물리적 충돌이 우려된다며 불허했고 청사 앞에는 경찰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노조 하은성 사무처장은 “사회복무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부조리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병무청이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며 “업무가 없는 휴일에 진행하므로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없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건조물침입죄에 해당하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병무청 직원부터 경찰, 취재진과 시민까지, 긴장된 분위기에서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노조 전준표 위원장은 “사회복무제도는 어떤 정당성도 없으며 싼값에 남성들을 동원하겠다는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발언했다. 이어 “복무 스트레스로 원래도 좋지 않던 건강이 더 나빠지거나 없던 정신질환이 생기기도 한다”며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 봐도 돌아오는 것은 사회부적응자라는 꼬리표뿐”이라며 현실을 꼬집었다. 

사회복무요원은 구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판정검사에서 신장·체중 이상과 척추질환, 우울장애 등 신체·정신적 사유로 신체등위 4급 판정을 받은 자를 뜻한다. 사회복무요원은 사회 서비스가 필요한 곳에서 사실상 노동자로 일하며 현역 입대 대신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다.

노동자지만 노동자가 아니다

사회복무요원들은 앞다투어 복무기관에서 생긴 부조리를 증언했다. 부조리의 양상은 열악한 노동환경부터 기관장의 갑질까지 다양했다. 면사무소 근무자 장민수 씨는 “매일 2시간 반 이상의 출퇴근이 너무 힘들어 결국 하루 8천원을 내고 찜질방에서 출퇴근하고 있다”며 “병무청 복무지도관은 권한이 없다며 월급 60만원에서 해결하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고 ‘정신질환이 아니라 정신병이 있는거냐’는 망언을 했다”고 하소연했다. 

행정기관 근무자 이진훈 씨는 “제대로 된 휴식시간 없이 강제적으로 잡무를 담당하고 권한 밖의 업무까지 해야 했다”며 “병무청 복무지도관에게 상담을 요청하자 다른 요원의 자해 사진을 보여줘 심각한 정신적 타격을 줬다”고 털어놨다. 지역아동센터 근무자 김성환 씨는 “30명 안팎 아동이 이용하는 시설에 직원이 두 명 남짓으로, 금전 출납, 급식 배부, 사회복지 실습생 관리까지 전반적인 업무를 맡았다”며 “센터와는 무관한 교회와 상업시설까지 청소해야 했다”고 호소했다. 

사회복무요원의 부당한 노동환경에 대해 공인노무사인 하은성 사무처장은 “부조리가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은 요원들이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라며 “현행법상 사회복무요원의 법적 지위가 불명확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근로기준법』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회복무요원은 노동단체를 조직할 수 있는 단결권도 제한받고 있다. 노조는 지난해 3월 고용노동청에 노동조합 설립을 신고했다. 

그러나 ‘사회복무요원은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며 ‘공무원에 준하는 공적 지위를 가져 단결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려당했다. 『헌법』 33조에 따르면 근로자는 단결권을 가지며 공무원과 방위산업체 근로자의 경우에만 예외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노조 반려 처분 취소소송 대리인인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강은희 변호사는 “사회복무요원을 공무원에 준하는 지위라 해도 현재 공무원도 노동조합을 조직해 활동하고 있어 『헌법』과 『노동조합법』의 단결권을 부정할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노동조합법』은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해 생활하는 자로 정의한다. 

두 법률에 따르면 사회복무요원은 공무원과 방위산업체 근로자가 아니며,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지급 받는 근로자에 해당한다. 강 변호사는 “사회복무요원의 병역의무 이행은 명백한 근로의 제공”이라며 “노동이 법에 의해 강제되고 복무기관 재지정 허가 없이 근무지를 바꿀 수 없는 등 취약한 상태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조 결성 필요성을 강조했다.

“가고 싶어도 못 가 20대를 날려 먹고 있다”

지난 28일 노조는 서울특별시 일부 자치구에서 다음해부터 일반행정 사회복무요원을 미배치할 계획을 담은 내부문서를 입수해 보도자료로 공개했다. 시청과 주민센터 등 행정기관은 상대적으로 업무강도가 낮아 사회복무요원이 선호하는 근무지다. 자치구들은 사회복무요원 월급이 인상되고 지난해부터 복지시설 배치 인원만 국비로 지원하게 된 것을 원인으로 밝혔다. 이번해 전체 소집 기관 중 일반행정 비율은 24.81%를 차지하는데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서울시처럼 행정기관에 다음해부터 사회복무요원을 미배치할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사회복무요원 적체와 부조리가 가중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사회복무요원 소집대기자는 약 3만 2천 명이지만 복무기관 자리는 약 2천 개 부족했다. 지난 5년간 부족한 복무지 수를 더하면 약 4만 명에 달한다. 신체검사 완화로 소집대상자가 늘어난 반면 복무 기관 수요는 제자리라 복무를 신청해도 배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대학생 A(23) 씨는 “주변 동기들이 전역해 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아직도 사회복무요원을 가지 못하고 있다”며 “병무청의 수요 조절 실패로 학업과 취업 준비에 차질이 생겨 20대 초반을 날려먹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은성 사무처장 역시 “병무청은 적체 심화를 막기 위해 행정 분야 신규모집 폐지로 발생한 공백을 사회복지분야 신규 복무기관으로 대체할 것”이라면서 기존의 부조리 사례가 사회복지시설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들어 각종 부당대우·부당업무 지시 사례가 증가할 것을 우려했다. 

현역보다는 낫지 않냐는 사고 벗어나야

최근 유명 연예인과 구의원의 불성실한 사회복무요원 복무태도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복무요원에 대한 시선이 나빠졌다.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 복무기관 출퇴근이 가능하고 민간에서 근무한다는 이유로 ‘그래도 현역보다는 낫지 않냐’는 조롱이 쏟아진다. 

하은성 사무처장은 “권리를 저울에 달아 무게를 달 수는 없다”며 “권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회복무요원을 더욱 괴롭게 한 것은 정상적인 몸이 아니라는 사회의 차별적 시선”이라고 말했다. 노조는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며 노동환경 개선과 행정기관 미배치 방침 철회를 담은 10대 요구안을 발표했다. 이어 노조는 복무환경 실태조사와 국회 입법 투쟁도 사회복무요원 처우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행동을 예고했다.


최윤상 기자 
uoschoi@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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