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연(국사 21)

이 글은 『법정의 얼굴들』에 기반함을 알린다. 피해자나 유족들이 정말로 원하는 게 가해자의 징역살이일까. 다음은 데이트폭력의 피해자 여성의 어머니의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살인 사건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의 어머니가 너무나도 부럽다. 교도소에서 평생을 살아도 자식 얼굴을 볼 수 있지 않냐. 나는 딸을 볼 수 없다. 차라리 내 자식이 살인자였으면. 왜 착하게 살라고 했는지, 후회스럽다” 

가해자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해도 이미 죽은 딸은 볼 수 없다. 너무나도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 법은 무기력할 뿐이다. 그런 사람들을 곁에서 보며 판결문으로밖에 위로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의 판사도 법의 무력에 공감하지만 무력에 폭력까지 더해지지 않도록 최대한 그들에게 공감하고자 노력한다. 산업재해 판결문을 쓸 때 노동자의 죽음을 애도하고 공감하기 위해 직접 현장에 가보며 피해자가 겪었을 죽음의 공포를 더듬어 보고 울어도 보며 세상에 기억되길 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이 그렇고, 그래왔고, 그럴 듯이 수많은 노동자가, 아이들이,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피해자가, 하나의 판결로만 남은 채 그렇게 잊힌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해왔던 가장 큰 폭력이 무관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피해자나 피해자의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이 가해자의 징역살이도 아니라면, 그들의 슬픔을 위로해줄건 결국 공감과 관심과 기억이다. 피해자의 복수극은 결국 우리가 손에 꼭 쥔 기억의 조각들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의 조각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잘 만들어 내는 이 책의 판사가 ‘귤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귤이 없다는 걸 잊어버리는’ 만큼 공감의 영역 그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한 사람뿐만이 아닌 사회 전반의 작고 다양한 삶을 결정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어 존경심을 넘어 경외심까지 든다. 

이 책의 판사가 주지하듯, 법은 딱딱할 필요가 없다. 긴즈버그 판사의 말처럼, 법도 문학적이어야 한다는 말에 공감한다. 법은 결국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간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것의 핵심은 공감이다. 고통과 공감은 나눌수록 좋다. 판결문보다 그 사람의 상황에 더 자세히 공감할 수는 없다. 

그 판결문에 또다시 공감하며 쓰는 이 글도 하나의 공감이고, 그런 공감들이 모여 또 하나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자 노력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수려한 문장과 미사여구로 짜인 글과 달리 덤덤하지만 누구보다 사랑과 연민에서 나오는 진심을 담은, 그래서 매번 코끝이 찡해지는 박주영 판사의 판결문의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생을 포기하려 한 이의 깊은 고통을 우리는 제대로 공감조차 하기 어렵다. 이해하기 힘들지만 밖에서 보기에 별 것 없어 보이는 사소한 이유들이 삶을 포기하게 만들 듯 보잘 것 없는 작은 것들이 또 누군가를 살아있게 만든다. (중략)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일은 혼잣말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서울시립대신문사는 독자 여러분의 투고를 기다립니다.
신문사 홈페이지(http://press.uos.ac.kr)로 접속하세요.
글이 채택되신 분에게는 원고료를 드립니다.
 

저작권자 © 서울시립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