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규칙을 꺼진 신호등처럼 방치한다. 잠든 규칙은 권력이 공격받을 때 선택적으로 호출된다.” 웹툰 ‘송곳’ 속 대형마트 푸르미가 파업을 벌인 비정규직에게 법적 대응을 예고하자 주인공 이수인 과장이 내뱉은 말이다. 강제 해고와 임금체불을 자행한 사측은 침묵하던 규정과 법을 동원해 ‘소비자의 불편’과 ‘자유 경제활동 방해’를 이유로 노동자에게만 정지 신호를 줬다.

‘공정과 상식’을 구호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은 ‘송곳’ 의 푸르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민과 노동자, 약자에게는 엄정한 정지등이 켜졌다. 형편없는 처우에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과 운송업자가 파업에 나서자 정부는 국기문란 행위라며 양대 노총을 압수 수색했다. 추모 공간 설립이 요원해진 이태원 참사 유족들이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두자 서울시민이 불쾌해한다는 구실을 대며 강제 철거 방침을 밝혔다. 통과였던 신호가 정지등이 되기도 했다. 대선 후보 시절 간호법 통과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던 윤 정부는 지난 16일 국민의 건강 불안감이 우려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반면 제국주의 역사의 과오를 제대로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은 일본에 윤 정부는 언제나 통과 신호를 줬다. 전범 기업에 대한 구상권 청구는 없다고 단언한 윤 정부는 지난달 24일 ‘일본 무릎’ 발언으로 홍역을 앓았다. 무릎 꿇을 필요가 없다는 주어가 일본이 아니라고 했지만 인터뷰를 진행한 외신 기자가 원본을 공개하자 ‘전 국민 읽기 평가’라는 비난이 일었다. 최근에는 시찰단장을 제외한 후쿠시마 오염수 조사단원을 전부 비공개 처리하고 기자들을 피해 긴급 출국시켰다.

도로 전반을 통제하는 신호등이 고장나면 그 사실은 눈에 금방 들어온다. 고장 난 신호등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전원은 차단되고 또 다른 신호등으로 교체된다. 정기 대통령 지지율 여론조사와 우리대학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공약 평가 설문조사 결과가 말해주듯 절반이 넘는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을 수리가 불가능한 신호등으로 간주하고 있다. 잘못된 신호를 멈추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도, 정부의 전원도 얼마 못 가 꺼져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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