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의 변 - 서울시립대신문 제64대 편집국장 권한대행 정시연

서울시립대신문 제64대 편집국장 권한대행 정시연
서울시립대신문 제64대
편집국장 권한대행 정시연

“주여, 제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용기를 주시고, 그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문 ‘평온을 비는 기도’의 일부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앞두고 모든 이들에게 전할 말이 각기 달라 어떤 말로 요약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오만하지 말라고. 누군가에게는 입 밖으로 말을 하라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말을 조심하라고. 개중 하나만 전하면 누군가는 나아지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오히려 나빠질 수 있으니 어떠한 말 대신 이 기도문을 전합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길 바라고, 바꿀 수 없는 것은 구별하고 받아들이길 바랍니다. 

위 기도문은 다음과 같이 바뀌어 퍼지기도 합니다. “제가 할 수 없는 일은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할 수 있는 일에는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하소서.” 대부분은 바꿀 수 있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여전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변화를 긍정하기 때문에 신문사에서 문제를 끄집어내고, 사안을 다른 관점으로 보고, 누군가의 성장을 고대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정말로 불가능한 것도 있으니 이를 구별할 지혜가 있으면 좋을 듯합니다. 불가능을 인정하지 않아 계속해서 실패를 마주한다면 내적 동기가 바닥나 오히려 변화를 부정하게 될 테니까요. 

변화를 긍정하는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혐오와 배척, 이기주의가 모여 낙관보다는 비관이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태도로 인식되는 요즘에는 특히 그렇습니다. 변화는 희망에 기반하고 절망에 가로막힙니다. 희망은 불확실하고 믿기지 않습니다. 반면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쉽게 가질 수 있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적당히, 어쩔 수 없이···. 고작 이런 말로도 절망이 합리적이라 포장하고 희망을 없애버리곤 합니다. 절망에 빠진 사회에서는 모두가 부정당하기 일쑤입니다. 

이러한 비관론의 대척점에서 변화가 가능하다고 낙관적으로 말하는 주체 중 하나는 언론입니다. 언론은 사회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하며 관여하는 조직이기 때문입니다. 보도하는 소재가 더없이 절망적이더라도,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찾아 전달합니다. 이러한 기사를 만드는 기자도, 신문을 읽는 독자도 마음 한켠에 절망 대신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부디 신문사를 이끌어갈 후배 기자들이 변화에 대한 희망을 품길 바랍니다. 


정시연 기자 
jsy434438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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