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 통증이 심할 때는 일도 못 하고 누워만 있었는데 침 때문에 그나마 버팁니다.” 대학생 양해영(22) 씨는 매주 수요일이면 한방병원에서 동작침 치료*를 받는다. 평일 낮임에도 한의원 대기석에는 대학생과 직장인이 4~5명 앉아있었다. 작업복을 입은 외국인 노동자도 눈에 띄었다. 국가통계포털의 의료기관종별 환자 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한방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은 환자 수는 약 49만 명으로 2016년 약 20만 명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한의학을 둘러싼 여러 논란이 지속되고 있지만 한의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한의학의 어제와 오늘을 살펴봤다.
 

▲ 환자에게 침을 놓은 채 움직이게 하는 동작침 치료를 시연 중인 한의사(출처: 중앙일보)
▲ 환자에게 침을 놓은 채 움직이게 하는 동작침 치료를 시연 중인 한의사(출처: 중앙일보)

한의(漢醫)에서 한의(韓醫)로

한의학은 고대 중국의 통치자인 황제가 인간의 생사를 적은 『황제내경』, 동식물의 독과 약을 맛보고 정리한 신농의 『신농본초경』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두 책은 진위와 출판년도가 불분명해 실질적으로는 한(漢)나라 장중경이 저술한 치료서 『금궤요략』과 『상한론』을 한의학의 시작으로 본다. 두 도서는 중국 전역의 민간요법과 약재를 정리하는 한편 음양오행 사상을 통해 생로병사를 분석하기도 했다. 이후 혈자리를 다루는 경혈학, 약초를 연구하는 본초학, 몸의 상태로 정신을 분석하는 장상론 등으로 한의학의 세분화가 이뤄졌다.

한반도에 한의학이 도입된 시점은 삼국시대지만 자립화가 이뤄진 건 조선시대였다. 세종은 국내와 중국, 인도 의서를 집대성한 『의방유취』를 편찬했다. 266권의 『의방유취』에는 90가지 질병에 대해 중국과 구분되는 조선만의 치료법, 예방법을 서술해 독자적인 한의학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의학이 결실을 맺은 것은 광해군 시기 허준의 『동의보감』이었다. 『동의보감』은 급체와 성홍열, 당뇨 등 개인 질환부터 천연두 같은 전염병과 그에 대한 방역 대책까지 다양한 질병과 치료법을 명기해 청과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국립중앙도서관 봉성기 학예연구사는 “동의보감은 약재의 명칭을 한글 병기하고 쉽게 접하면서도 효과가 좋은 약재를 소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평가했다. 19세기에는 이제마가 사람을 체질에 따라 태양인과 태음인, 소양인과 소음인 네 종류로 나눈 사상의학을 창안해 효과적인 치료를 가능케 했다.

일제의 침탈은 한의학의 시련이었다. 1913년 조선총독부는 『의생규칙』을 발표해 한의사를 의학생에 해당하는 의생으로 격하시켰다. 의생들은 조선 총독의 허가를 받아야 의료행위가 가능했고 일본 전통 의술을 제외한 한의학 교육 과정은 폐지됐다. 태평양전쟁 중인 1944년에는 사실상 의생 제도를 폐지해 민족 말살을 꾀했다. 

그러나 엄혹한 탄압 속에서도 한의학은 그 명맥을 이어갔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풍파에도 한의학은 1970년대 의료보험 도입 전까지 대다수 국민에게 열려 있는 유일한 의학이었다. 이러한 여론에 부응해 1951년 『국민의료법』이 통과되며 한의사제도가 부활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오늘의 한의학

현대의 한의사 교육과 선발 과정은 1955년 개교한 동양의약대학에서 대거 영향을 받았다. 동양의약대학의 교과과정은 기초과목과 임상과목으로 나뉘었다. 전공필수과목에는 내·외과나 소아과 같은 양의학 과목도 포함됐다. 한문과 동양 철학 등 한의학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문학 수업도 이뤄졌다. 초기엔 4년제 대학이었지만 미국 의과대학을 참고해 예비과정 2년, 한의학 과정 4년의 6년제 동양의과대학으로 개편됐다. 

동양의과대학은 1965년 경희대학교와 합병해 경희대학교 한의대로 재편됐으며 현재는 전국 11개 대학에 한의대가 존재한다. 이외에는 4년제인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이 있다. 남북한의 한의대와 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이에게는 한의사 국가시험 응시 자격이 주어지며 합격 시 한의사 면허가 부여된다. 지난 1월 13일 실시된 제78회 한의사 국가시험에서는 총 823명의 응시자 중 811명이 합격해 한의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양의학이 주류가 된 현재 한의학의 실태는 어떨까. 이번해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2년 한방의료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방 의료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71.0%로, 최근 1년 이내에 이용했다는 비율도 35%에 달했다.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을 찾는 목적으로는 근골격계통 질환이 74.8%로 가장 많았으며 침(94.3%)과 뜸(56.5%), 부항(53.6%)을 이용한 치료가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안산 단원구의 한방병원에서 근무 중인 정성호 한의사는 “장시간 책상에 앉아있는 청소년, 직장인들이 많이 방문하는 편이다”며 “약물치료에 비해 침과 부항이 효과가 단시간에 나타나 인기가 좋다”고 밝혔다. 실제로 한방진료서비스에 대해 만족했다고 답한 비율은 외래환자와 입원환자 각각 90.3%와 79.2%를 기록하며 높은 만족도를 보여줬다.

과학과 신뢰의 산을 넘어야

최근 한의학은 초음파 진단기기 등 현대 의료기기를 둘러싸고 양의학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 현재 한의사는 『특수의료장비 설치·운영 규칙』에 따라 엑스레이(X-ray)나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등의 사용이 금지돼있다. 그러나 한 한의사가 해당 법에 명시되지 않은 초음파 의료기기를 수년간 사용한 사례에 대해 대법원은 정당한 의료행위라고 지난해 판결했다. 대법원 판결에 양의학계는 섣부른 의료기기 허용이 공중 보건위생상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하게 우려했다. 

반면 한의학계는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X-ray 등 영상기기에 대해서도 허가가 내려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정성호 한의사 또한 “한의대에서 의료기기 사용법을 배웠는데도 치료에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한의학의 신뢰성를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음양오행과 기(氣)라는 철학적 사상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모호하다는 이유다. 혈맥이나 기만으로 암이나 유전자 질환 같은 각종 질환을 발견,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된다. 신민재(전전컴 23) 씨는 “잊을 때마다 가짜 약재와 사이비 치료법에 대한 한의학 뉴스가 튀어나온다”며 “첨단 의료 장비로도 못 고치는 병이 수두룩한데 방송에서 약재나 홍보하고 있으니 신뢰가 안 간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한의학계 역시 중국의 식품용 빈랑**과 의약품용 빈랑을 구분해야 한다고 발표하는 등 정확한 의료 정보 전달을 통해 신뢰성 제고에 나서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한의학에 관한 국민 불안과 혼란을 막기 위해 올바른 의학 정보 전달이 필요하다”며 “국민 건강증진과 질병 치료를 위해 안전하고 효과적인 한의학 치료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의견을 표했다.


*동작침 치료: 통증이 있는 혈자리에 침을 놓고 환자를 움직이게 해 통증을 해소하는 치료법
**빈랑: 빈랑나무의 열매로 암을 유발하지만 말려서 먹으면 위와 치아 건강에 좋다.


임호연 기자 
2022630019@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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