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부산광역시에서 30대 남성이 귀가하던 여성의 뒤통수를 가격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이 발생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성범죄 관련 혐의를 추가해 징역 35년을 구형한 상태다.

한편 지난달 강남에서 한 남성이 여성에게 연락처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여성을 폭행하고 달아난 일명 ‘번따 거절 폭행’ 사건도 일어났다. 갈수록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의 빈도가 늘어나고 있으나 관련 통계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범죄 양상을 파악하고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자세를 모색해봤다. 
 

▲ 우리대학 후문 자취촌의 한 골목, 가로등 없이 어두운 모습이다.
▲ 우리대학 후문 자취촌의 한 골목, 가로등 없이 어두운 모습이다.

사그라들 기미 없는 ‘묻지마’ 범죄

지난 2016년 5월 강남역의 공용화장실에서 묻지마 범죄가 발생했다. 일면식 없는 여성을 살해한 범인은 “여자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랬다”고 진술한 바 있다. 지난달 17일 서울여성회를 비롯한 34개 시민사회단체는 사건 7주기를 맞아 추모제를 개최했다. 사건으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과연 한국 사회 내 묻지마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얼마나 마련됐을까.

지난해 1월 경찰청은 묻지마 범죄의 공식 용어를 ‘이상동기 범죄’로 명명했다. 이상동기 범죄는 스토킹, 데이트 폭력, 존속살인 등 타 여성대상 범죄와 달리 이렇다 할 가해자와 피해자 간 관계와 범죄 동기가 전무하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내 사건 구분에 이상동기 범죄 확인란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재까지도 KICS 포털에서 관련한 정보는 검색되지 않는다. 이번해 알려진 이상동기 범죄만 해도 열 건이 넘지만 지난 5년간 조사된 정확한 통계 자료조차 미미한 상황이다. 

명확한 개념 정립이 동반되지 않은 채 묻지마 범죄와 이상동기 범죄라는 명칭이 굳어지는 현상이 문제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 활동팀 유호정 활동가는 “언론과 대중이 무책임하게 묻지마 범죄라는 단어를 남발하면 폭력 발생의 사회 구조적인 원인을 말하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단순히 개인의 일탈이나 병리화된 개인에게만 초점이 맞춰서 폭력이 보도된다”고 덧붙였다. 언론에서 보도되는 단어의 사용과 내용도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대학에서 [여성학의 이해] 수업을 가르치는 이현재 교수는 대중이 사건을 시각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포르노그래피적 기사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전했다. 그는 “언론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것보다 담백하게 사안을 소개하면서 제대로 성찰할 수 있게 전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피해자의 신상이나 가해자의 터무니없는 범죄 동기에 과하게 주목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 후문 앞 여성안심귀갓길, 노면 표식과 바닥조명으로 표시됐다.
▲ 후문 앞 여성안심귀갓길, 노면 표식과 바닥조명으로 표시됐다.

가해자의 심리와 동기는 정당화일 뿐

이상동기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의 심리는 무엇일까. 성폭력 전문 이은의 변호사는 “이상동기 범죄의 대상이 반드시 여성은 아니지만 물리적 약자인 여성과 노인, 아이가 대부분이다”며 “물리적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를 골라 공격하는 한심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최근 이해하기 힘든 범행 동기를 가진 여성대상 이상동기 범죄는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번따 거절 폭행’과 ‘부산 돌려차기 사건’ 범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범죄 동기는 ‘전화번호를 요구했더니 거절했다’거나 ‘욕설을 하는 환청이 들렸다’는 이유였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범죄 발생률을 줄이는 것은 피해자의 몫이 아님을 주장한다. 

유호정 활동가 또한 “범인들이 동기를 밝히는 발화 자체가 여성을 동등한 동료 시민이 아니라 본인보다 더 낮은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이 내포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현재 교수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미리 조심하라는 건 활동 반경을 완전히 줄이는 것”이라며 “여성의 조심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 휘경파출소 여성안심귀갓길에 속하지만 바닥조명 표시가 일부 끊긴 골목
▲ 휘경파출소 여성안심귀갓길에 속하지만 바닥조명 표시가 일부 끊긴 골목

대학가 여성대상범죄 대책 현황

대학가도 여성대상범죄에 있어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해 7월 인하대학교에서 남학생 A씨가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창밖으로 떨어뜨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살인 고의성이 없을 때 적용하는 준강간치사죄로 검찰에 송치했다. 

반면 검찰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에 해당한다며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다만 지난 1월 공판에서 재판부는 “범행 전 A씨는 피해자와 일상적 대화를 했고, 피고인이 중한 형벌을 감수하면서까지 피해자를 살해하려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A씨는 범행 당시 주취상태에 있어 인지력과 판단력이 떨어진 상태로 소지품을 두고 가는 등 범행을 은폐하려고 한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적용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는 인정하지 않고 준강간치사 혐의만 인정해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여성 1인 가구도 위험 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달 16일 경기도 부천의 한 빌라에 혼자 거주하던 여성은 ‘신원 미상의 남성이 무단 침입을 시도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피해자가 공개한 당시 영상에는 철사를 문틈 사이로 밀어 넣어 도어락 손잡이를 내리려 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우리대학 자취촌에서는 여성대상범죄가 어떻게 대비되고 있을까. 후문 자취촌에는 휘경파출소 여성안심귀갓길이 조성됐다. 동대문경찰서 홈페이지에서는 우리대학 후문부터 삼육서울병원 앞 교차로까지를 여성안심귀갓길로 규정하고 있다. 후문으로 나가면 곳곳에 비상벨과 여성안심귀갓길 노면 표식, 바닥조명 등이 있다. 길이 460m에 CCTV 6개, 비상벨 6개, 보안등 28개, 그림자조명 2개, 안심반사경 1개 등이 설치됐다. 

다만 바닥조명이 일부구간에만 존재해 여성안심귀갓길임을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 또한 비교적 넓고 밝은 골목이 여성안심귀갓길인 반면 좁고 어두운 샛길 골목은 해당하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대학 정문과 쪽문 자취촌 근방은 여성안심귀갓길로 지정되지 않았다. 지난 2020년 경찰청 공식 블로그에 따르면 여성안심귀갓길 및 여성안심구역은 △적은 유동인구 △낮은 조도 △112 신고 다발 구역 △지역 특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된다. 지난 4월 기준 여성안심귀갓길은 전국 1942개, 서울특별시 362개, 동대문구 11개인 상태다. 

유호정 활동가는 “CCTV나 여성안심존 등의 대응은 실효성이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원인이 사회 구조에 있는 만큼 임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이현재 교수도 “이상동기 범죄의 경우 가해자들 마음이 근본적으로 좌절과 분노로 가득 차 있다”며 “안전장치에 의존하기보다는 사회적 관계로부터 소외돼 자존감이 하락하는 사각지대를 줄여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자취하는 여성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방범에 신경을 쏟고 있었다. 우선 1층과 반지하는 지양하고 2층 이상으로 자취방을 구하곤 한다. 

이후 현관문에 추가로 이중장치를 달거나 창문에 방범창 혹은 창문 스토퍼를 설치해 외부인 침입 가능성을 낮춘다. 남성 속옷이나 신발을 비치하고, 택배 수령자를 남자 이름으로 적는 등의 대처도 기본이 됐다. 택배와 배달은 비대면으로 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대학 주변에서 자취하는 이하경 씨(21)는 “배달을 대면으로 받을 시 목소리와 얼굴이 노출될까 두렵다”며 “최대한 내가 살고 있는 공간과 나를 숨기는 것이 상책”이라고 이야기했다. 

법적 처벌 넘어서 분노와 혐오 줄여야 

여성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이상동기 범죄에 대해 법적 처벌이 약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 2019년 30대 남성 C씨가 20대 여성을 뒤쫓아 주거침입을 시도한 신림동 사건은 주거침입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1년이 선고됐다. 주거침입강간 및 주거침입강제추행 등 성범죄 혐의에 대해서는 고의와 폭행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가 확정됐다. 

다만 법적 처벌 수위는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의 변호사는 “동기에 있어 참작할 여지가 없을 때 처벌 수위를 더욱 높여야 한다”면서도 “이런 범죄 발생률을 줄이는 건 사회적 인식과 반응”이라고 주장했다. 이현재 교수는 “처벌 수위가 낮은 것과 이상동기 범죄의 증가가 관계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상동기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은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으며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다는 특성이 있다.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로 인해 오랫동안 형량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더라도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이 교수는 “형량을 높이기보다는 국가 차원에서 개인의 불안과 분노를 줄일 복지 체계”와 “자존심이나 정서적 문제를 케어해주는 정신적 상담 프로그램 설계”를 통해 근본적인 사회·정서적 치료 기반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연경 기자 yeonk486@uos.ac.kr 
정시연 기자 jsy4344381@uo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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