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한 전자책 작가는 도서정가제 위헌을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제출했다. 전자책이 도서정가제의 제재를 받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지난 7월 20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은 ‘도서정가제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합헌 판단을 내렸다. 도서정가제의 헌법소원은 처음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4월에도 도서정가제 위헌 각하*를 결정했다. 도서정가제가 무엇이길래 수년간 끊이지 않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까. 
 

▲ 서점에 책들이 가득 들어 찼지만 손님이 없이 텅 빈 모습이다.
▲ 서점에 책들이 가득 들어 찼지만 손님이 없이 텅 빈 모습이다.

도서정가제, 21년간 우리와 함께해

도서정가제란 출판사가 정한 도서 가격을 서점이 임의의 할인을 적용해 판매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제도다. 이는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2조에 따라 2003년 2월부터 약 6번의 개정과 함께 계속됐다. 처음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2003년에는 『출판 및 인쇄진흥법』에 따라 온라인 서점에 한해 출간 1년 이내 서적의 경우에만 최대 10% 까지 할인할 수 있도록 제한을 뒀다. 

그러나 2007년 해당 법안은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으로 바뀌었고, 온라인에만 적용되던 본 제도는 오프라인 서점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또한 기존 1년이었던 기간을 18개월까지 연장해 제한의 폭을 넓혔다. 이어 지난 2014년 개정안을 통해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조 3항에 따라 간행물은 예외 없이 정가의 10%만을 할인할 수 있게 하고 포인트 적립 등 간접할인도 최대 5%로 제한해 총 15%의 할인만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도서정가제의 영향을 받지 않던 군부대나 교도소, 도서관 등 공공 및 단체 차원의 구매도 해당 개정안으로 인해 예외가 될 수 없게 됐다. 2020년에 도서정가제 폐지가 논의됐지만 결국 무산됐고 21년째 적용 범위를 확대시키며 지속돼 오고 있다.

도서정가제의 목적은 그림의 떡

도서정가제는 책값 인하 경쟁에 따른 도서 출판이 위축되는 것을 막고 대형서점들의 과도한 할인을 막음으로써 동네 서점의 경쟁력은 살리고 소비자들의 구매 권리는 보장하고자 실시됐다. 그러나 도서정가제는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되자 되려 피해를 호소하는 이들이 증가한 것이다. 서울에서 독립서점을 15년째 운영 중인 자영업자 김용민(52) 씨는 “도서정가제가 시민들과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는 이야기하지만 높아진 책값에 매출이 부진해진 것이 현실”이라며 “책이 팔리지 않게 되면 돈은 돈대로 재고는 재고대로 더 어려움을 겪게 되고 이는 결국 적자로 이어진다”고 토로했다. 

서점에서 책을 둘러보다 빈손으로 서점을 나선 김희주(38) 씨도 “어릴 적엔 책을 온전히 좋아하는 마음에 구매하는 데 자체에 의의가 있었지만 요즘엔 가격이 부담된다”며 “자꾸 돈과 책 사이 손익을 따지게 되고 그 결과 점차 소비가 줄게 되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도서정가제를 찬성하는 출판업계도 모두가 이득을 보는 상황만은 아니다. 중소형 출판업계에 종사하는 박종훈(56) 씨는 “도서정가제 찬성은 대형 실물 책 출판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라며 “도서정가제를 등에 업은 대형 출판사의 힘은 중소형 출판사를 어렵게 만들뿐만 아니라 신인 작가들의 파이를 뺏는 등 또 다른 문제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첫 작가로서의 활동을 준비 중인 한민준(27) 씨도 “책 출판을 위한 절차의 마지막이라고 볼 수 있는 가격 협정은 결국 전부 출판사들을 위한 출판사들에 의한 결정”이라고 발언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생각은 달랐다. 재판부는 지나친 가격 경쟁으로 인한 간행물 유통질서 혼란 방지, 독자의 도서접근권 확대 등 출판산업과 독서문화를 상호작용해 출판문화산업 생태계를 보호 및 조성하려는 심판대상조항의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바라봤다.

넓어지는 도서의 범주, 바뀌어 가는 도서 소비 형태

도서정가제는 실물 책을 넘어 전자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도서 범주는 영상형 독서 콘텐츠나 오디오북 등 다양한 모습으로 넓어지고 있다. 한국출판산업문화진흥원의 「2021 출판사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실물 책 매출액은 연평균 0.8%씩 줄어드는 추세를 보인다. 

반면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는 지난 2015년 1258억원에서 2020년 4619억이라는 가장 큰 금액을 달성하며 5년 동안 약 3.7배 성장했다. 오디오북 시장 또한 규모가 300억원을 넘어서며 매년 약 25%의 성장률을 보이는 중이다. 전자책도 도서정가제를 피할 수 없다. 박종훈 씨는 “실물 책과 달리 전자책들은 도서 시장에서 충분히 불리한 상황”이라며 “특정 시간 동안 짧게 소비되는 특징을 가진 전자 콘텐츠들은 가격 규제에 더욱 치명적”이라고 전했다. 

이에 도서정가제의 규제를 받지 않는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한 도서 대여·구독 서비스가 성행 중이다. 웹소설 작가 김태환(32) 씨는 “웹소설과 같이 실물 책이 아니지만 도서에 해당하는 것들은 소비자에게 구매보다 대여의 개념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대여는 활발하게 이뤄지는 반면 오프라인 구매의 영역에서는 이득을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평소 책을 즐겨 읽는 강유진(23) 씨도 “당장 주변만 봐도 책을 직접 사서 읽는 사람보다 대여 플랫폼을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한 권의 책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한 달 동안 원하는 책뿐만 아니라 오디오북, 잡지, 나아가 독점 도서들도 볼 수 있어 애용하게 된다”고 전했다. 실제로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가 공개한 IPO(Initial Public Offering)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누적 회원 수는 약 550만 명에 달했다.

도서정가제는 3년마다 제도 개선 및 폐지 검토를 거치고 있다. 그러나 도서정가제의 병폐에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는 매번 묻히고 있다. 돌아오는 정기 심사는 오는 11월에 진행된다. 완전정가제 시행이냐 도서정가제 폐지냐를 결정하기 전에 피해를 입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각하: 무익한 고소나 고발사건의 남용을 막기 위해 범죄 혐의가 없거나 고소 혹은 고발인이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사건 자체를 종결하는 것


이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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